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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다

소설,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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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7월 06일
쪽수, 무게, 크기 259쪽 | 128*188*20mm
ISBN13 9791197808746
ISBN10 1197808744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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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0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흰 고양이가 높은 테이블에 사람처럼 앉아 있다. 뒷발 하나가 허공에 떠 있다. 앞발로는 쉼 없이 무언가를 쓰고 있다. 자기가 집필한 책에 직접 사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인 옆에는 자신의 손도장도 잊지 않는다. 검정 스탬프 패드에 앞발을 쿡쿡 찍어 그 형상을 책의 첫 장에 남긴다. 제목은 ‘저는 편의점 앞 고양이입니다’. 제목을 잘 뽑았다는 생각과 함께 줄을 선 인파가 눈에 들어온다. 거기에는 고양이도 있고 사람도 있다. 그리고 나도 있다. 다희도 있다. 사인을 받은 나는 녀석의 뭉툭한 손을 잡고 악수를 한다. 나는 한 번 더 녀석에게 패배감을 느낀다.
---「마케터 고씨」중에서

책상 한쪽에 놓인 자퇴 동의서가 보였다. 지수는 그날 내가 있는 힘껏 짓이겨버린 종이를 정성스럽게 펴서 그 위에 사인했다. 문득 나는, 나 스스로 바깥과 안의 경계를 끊어내려 시도한 적이 있던가 떠올려 보았다.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 모든 것도 다 지나갈 일’이라며 진실을 외면하는 쪽을 택한 나의 시간들은, 그야말로 다 지나가 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모든 것들이 지나가는 동안 내가 정말 무기력했다는 것도. 어쩌면 그렇게 흩어지도록 내버려 두지 말아야 했는지 모른다.
---「라탄 바구니」중에서

입원은 고등학교 때 맹장 수술한 뒤로 처음이었다. 병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오후 햇살에 눈이 부셨다. 봉태는 고개를 틀어 실내를 둘러보았다. 온통 팔이나 다리에 깁스하고 있는 환자들뿐이었다. 맞은편 병상에는 팔에 깁스한 젊은 환자가 있고 그 곁에는 단발머리 여성이 앉아 있었다. 환자와 마주 보고 도란도란 얘기하는 모습이 슬쩍 보기에도 사이가 좋아 보였다.
---「아빠는 바담풍」중에서

유한의 연구보고서는 꽤 좋은 호응을 받았다. 이후 유한은 에파타의 가족을 이루는 관계성과 사회성에 대해 중점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에파타는 먹이가 부족할 때에도 모두 공평하게 나눠 먹었다. 또 가족 중 하나가 아프거나 치료가 필요할 때는 간병을 하듯 한 마리씩 돌아가며 아픈 가족을 지극히 돌봤다. 그들은 마치 사람과 흡사한 어쩌면 사람보다도 더 단단한 가족 간의 애착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제자리」중에서

머리를 묶은 새미는 훨씬 더 어려 보였고, 얼굴이 작아서인지 머리를 묶기 전보다 더 작아보였지. 방향이 틀어진 새미의 턱을 교정해 주려 할 때였소. 당신은 믿지 못할 거요. 세상에 아주 살짝 건드렸을 뿐인데 그 순간 새미의 몸이 무너져 내리듯 주저앉았다오. 턱에 괴고 있던 바이올린도 떨어뜨렸지. 나는 한 손으로는 바이올린을 다른 한 손으로는 새미를 잡았고, 바이올린과 나와 새미는 짧은 순간 한 덩어리가 됐소. 그때도 새미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계속 몸을 뒤틀며 꼼지락거렸지. 바닥에 떨어질 뻔했던 바이올린을 잘 수습하고 새미 몸에서 손을 떼고 새미가 진정할 때까지 기다렸소. 찰나의 접촉에도 간지럼을 참지 못하고 몸 전체가 자지러지듯 반응하다니…. 당신도 바이올린이 예민한 악기라는 건 아마 알 거요. 새미는 내가 연주해본 그 어떤 바이올린보다 훨씬 더 예민한 악기였소. 순간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걸 굳이 부인하지 않겠소.
---「바이올린 튜닝」중에서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이 책에는 아홉 편의 단편 소설이 들어있습니다. 대체로 온기와 희망을 품고 있는 작품이 많습니다. 신선하지만 가볍지 않은 시선이 좋았고, 패기와 열정도 느껴졌습니다. 신인 작가들의 건강한 문체와 맛있는 이야기를 배룰리 먹었습니다. 아홉 개의 기대를 품습니다. 소설 쓰는 일이 즐겁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될 무렵, 포기하기엔 이미 늦었다는 것 또한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인내한 시간과 소위 말하는 창작의 고통은 반드시 선물을 안고 왔습니다. 출간은 선물이자 공식적인 보상이기도 합니다. 아홉 번의 축하를 남깁니다.
- 이은정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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