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거나 아플까 봐 발에 신겨주는 신발처럼, 때로는 우리 마음에도 부드럽지만 튼튼한 신발을 신겼다 벗겼다 할 수는 없을까 생각해봅니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 무심한 눈길에 상처받아 엄청난 내상으로 고통스러울 때가 많으니까요. 아무리 자주 경험하고 수시로 마음을 다져도 상처를 예방하기는 참 힘듭니다.
이처럼 우리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고 가장 가깝게 느끼지만 제일 잘 모르는 것이 내 마음입니다. 내 것이면서도 내 것이 아닌 듯 다른 이들이나 상황에 휘둘리고, 타인에게 상처를 준 뒤에도 더 아픈 것이 내 마음이기도 합니다. 이런 마음을 잘 들여다보거나 보살피지 않으면 몸도 정신도 같이 아파 우울증 등 각종 질병은 물론 때로는 극단적인 결말을 맞기도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우주를 품는 막강한 능력이 있음에도 꽃잎보다 여리고 쉽게 상처받습니다. 이러한 마음에 대해 전문가들마다 풀어내는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우리 마음은 우리의 것이고, 아픔과 슬픔도 기쁨처럼 힘이 된다는 것, 무엇보다 마음은 우리가 마음먹기에 달려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대한민국 최고의 전문가들과 본격적인 대화를 통해 ‘나와 만나는 시간’을 향유하시기 바랍니다. 나와 만나는 순간, 또 다른 세상이 문을 엽니다.
- 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들어가는 말〉 중에서」중에서
저는 “부지런한 게으름뱅이도 있고, 바쁜 게으름뱅이도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흔히 바쁘면 부지런하고 활동량이 적으면 게으르다고 생각하는데요, 제가 말하는 ‘게으름’은 정의가 좀 다릅니다. 부지런함의 기준은 활동량이 아니라 방향성과 능동성이어야 합니다. 설사 지금 내가 바쁘지 않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능동적으로 휴식을 선택한 결과라면 게으른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쉬면 안 돼, 여기서 멈춰 서면 안 돼’라는 생각 때문에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고 힘든 상황까지 내모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정도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 계속 열심히 살아야 해’ 하면서 스스로를 돌보지 않다가 돌연사하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돌연사’는 거의 없습니다. 이유 없이 피곤하고 머리 아프고 소화가 안 되는 등 여러 신체 증상이 나타나는데도 계속 ‘채찍질’하다가 임계점을 넘어버리는 거죠.
---「문요한, 〈자율성: 남의 욕망이 아닌 나의 욕구에 집중하세요〉」중에서
우리에게는 경험을 처리하고 감정을 다룰 수 있게 하는 자원들(resources)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우리의 경험과 감정을 담아내는 그릇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 그릇이 큰 사람은 경험에 대한 감정들이 그릇에 모두 담기고, 그 결과 감정이 넘치지 않아 조절을 잘합니다. 반면에 그릇이 작은 사람은 감정이 넘쳐나기 때문에 당연히 조절이 되지 않습니다.
우여곡절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살면서 우리는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는데, 감정을 담는 그릇이 큰 사람은 기쁨뿐 아니라 슬픔, 괴로움 등 모든 감정을 견디고 소화해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힘든 일을 겪더라도 대체로 참을 만한 경험이라고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트라우마 환자나 감정 조절이 잘 안 되는 사람은 그 그릇이 작아서 작은 감정적 동요에도 많이 힘들어합니다.
---「권혜경, 〈감정 조절 능력: 감정을 담아내는 그릇이 작을수록 더 아프다〉」중에서
우리는 모두 부지불식간에 마음 관리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심리학을 배우지 않았다 해도 말이죠. 과거에 우리가 많이 사용했던 마음 관리법은 ‘조정 전략(control strategies)’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하기 싫더라도 내일을 열심히 준비하자”라고 스스로의 마음을 조정하고 관리하는 전략입니다.
조정이란 무척 의미 있는 관리법입니다. 어쩌면 인류가 발전해온 것은 우리 마음속의 조정 전략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매우 의미가 있고,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게 돕는 효율적인 전략이지요.
하지만 너무 빈번하게 조정 전략만 쓰다 보면 문제가 생깁니다. 조정은 우리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기법이거든요. 조정 전략만 쓰는 것은 에너지를 마구 쓰기만 하고 충전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과 같아서 결국 방전되고 맙니다. 현대인들의 필수품인 스마트폰도 아주 효율적인 기기이지만, 제때 충전하지 못하면 방전돼 결국 꺼지게 마련이잖아요. 그럴 때 우리에게 ‘소진증후군’이 찾아옵니다. 영어로는 ‘번아웃 신드롬(burnout syndrome)’이라고도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조정 전략에 익숙해져 있느냐 하면, 방전이 되었을 때 “괜찮아. 열심히 살았잖아” 하고 칭찬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열심히 하자”며 자신을 조정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현대인들에게 소진증후군이 찾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윤대현, 〈소진증후군: 충전하고 싶다면 마음의 연민 공장을 돌리세요〉」중에서
심리적인 고통이 있을 때 정신과 의사를 바로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살면서 감옥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을 안 하는 것처럼, 내가 살다가 정신과 의사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대부분 하지 않습니다. 굉장히 극단적인 상황이라고 보니까요.
그래서 저는 심리적 고통을 겪는 사람과 전문가 사이에 편안하게 공감을 잘해주는 ‘중간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중간자’가 많아질수록 일상에서 겪는 심리적 문제 가운데 90퍼센트는 해결될 거예요. 치유의 본질이 그것이니까요.
달나라에도 가고 인공위성도 쏘아 올리는 최첨단 과학기술 속에서 살아가지만, 실제로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술은 ‘최첨단’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아프리카 아이들에게는 멀리 떨어진 우물에서 물을 길어 돌아올 때 머리에 이는 대신 땅 위에 굴릴 수 있는 물통을 만드는 ‘적정기술’이 그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꾸어놓습니다. 심리학에서도 말하자면 ‘적정 심리학’이 필요합니다. 그 핵심이 공감이라고 봅니다.
---「정혜신, 〈공감: 충고나 평가하기를 멈추세요, 그 순간 치유가 시작됩니다〉」중에서
사람들은 처음 만난 사람에게는 나를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합니다. 반면 부부, 연인, 자식과 부모 사이는 관계가 오래될수록 더 고민이 많습니다. 실제 이와 관련한 실험 결과도 있습니다. 부부들 중 신혼을 기준으로 5년차, 20년차, 50년차 세 그룹으로 나누어 각각 결혼생활에서 있었던 일들을 질문해보았습니다. ‘가장 즐거웠던 때는?’, ‘가장 힘들었던 때는?’ 같은 질문을 던지고 상대방은 그 사람이 답할 때 보이는 감정을 읽게 해봤습니다. 오래 함께 살수록 서로 잘 알 것이라는 가설을 증명하려는 이 실험에서 예상 밖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커플일수록 서로를 잘 이해했고 오래된 부부일수록 의견이 달랐습니다. (중략)
오래 안다고 해서 서로 잘 아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서로를 충분히 잘 알고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실망도 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가진 관계 데이터베이스는 안 고칩니다. 같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꾸준하게 정보를 업데이트해야 하는데, 한번 데이터베이스가 완성되면 그 사람에 대한 기대는 높아지고, ‘직렬연결’되기만을 바랍니다.
---「하지현, 〈소통: 상대를 바꾸려 하지 말고 스스로 달라져 보세요〉」중에서
무엇보다 회복과 성장의 지름길은 ‘남을 돕는 것’입니다. 하버드 대학에 도서관을 지어준 엘리너라는 여성은 아마 우울증에 걸리지 않았을 겁니다. 누군가를 돕는 일은 다른 사람을 위한 선행으로서도 의미가 있지만 나에게도 놀랄 만한 힘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타인에게 긍정적인 관심을 갖고 배려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심신이 안정되면서 몸 안에서 행복 에너지가 나옵니다. 자신만의 문제에 매달려 몰두하고 괴로워하는 사람은 점점 더 우울해지지만, 반대로 타인의 아픔에 연민을 갖고 선행을 베풀다 보면 자신이 유익한 사람이라는 자신감이 생기고 자기효능감을 느낍니다. 슬픔과 무기력감이 아닌 활동감과 목표성이 우리 삶을 유익한 방향으로 이끌어줍니다. 이처럼 남을 돕는 일은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의미 있는 삶 속에서 성장할 수 있게 합니다.
---「최성애 〈회복탄력성: 아픔과 고통을 극복하는 힘, 회복탄력성〉」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