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역사의 전환점이다. 이것은 장제스의 20년 반혁명 통치가 발전에서 소멸로 넘어가는 전환점이다. 이것은 100여 년을 이어온 중국에서의 제국주의 통치가 발전에서 소멸로 넘어가는 전환점이다.” 마오쩌둥의 이 글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역사의 큰 변화와 전환을 …… 중국의 각 계급·당파·집단·가정·개인에게 제시하고서는 그들에게 선택을 강요했으며, 당시로서는 예측하기 어려웠던 그 선택의 후과(後果)까지도 감당케 했다.
--- p.38
마오둔은 …… “혁명을 끝까지 하여, 우리의 아들, 손자들이 더 이상 피 흘리지 않고 땀만으로 신중화민국의 위대한 건설에 종사할 수 있기를!” 축원했다. …… 민족국가의 이익을 지상으로 여기는 이런 이상은 많은 지식분자에게 이 역사의 전환점에서 혁명을 선택하고 받아들이게끔 했다. 또 한편으로는 유혈혁명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이것이 최후의 유혈이기를 희망했는데, 이것은 전형적인 지식분자의 이상주의이기도 하다. 그들은 한 번의 유혈을 받아들이게 되면 반드시 두 번, 세 번의 유혈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 p.39
1948년에 이르러서는 정권의 교체에 따라 ‘우리’가 권력과 결합한 질서와 체제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질서로서 숭고한 이상을 체현하고 있었고 어떤 정신적인 매력도 여전히 지니고 있었지만, 복종이라는 절대적 요구도 수반하고 있어서 개인 생명의 자유를 알게 모르게 억압했다. …… 혁명의 승리로 (당을 가장 대표로 삼는) ‘우리’와 ‘우리’체 언어가 머잖아 사상과 문화상의 주도적 지위를 갖게 되었을 때, ‘비판’이 가장 중요한 위치로 부상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 “사상투쟁은 문예운동의 가장 중요한 일환”이었다.
--- p.69~70
대규모 비판의 더욱 심층적인 영향은 이후에야 나타났다. 이것은 …… 사상투쟁(사상비판)을 공화국 문화와 문예를 발전시키는 가장 중요한 임무와 근본적인 길로 삼았음을 의미한다. 이 선택과 결책(決策)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에 상당히 철저하게 관철되었고,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한 심각한 결과도 낳았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로서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오히려 …… “어떤 이상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은 그 이상의 실현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당연히 가장 적극적으로 비판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완전히 새로운 문화와 문학의 창조를 갈망한다면, 한시도 지체하지 말고 모든 낡은 문화, 낡은 문학과는 분명하게 선을 그어 철저히 결별해야 했으며, 적어도 그것과는 절연해야 했다.
--- p.75
중국의 자유주의 지식분자들은 날로 고조되는 미국을 반대하는 민족주의 열기 앞에 이미 대단히 수동적일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 미국 당국이 희망을 그들 쪽으로 돌리니 그들의 입장은 더욱 난처해졌다. 많은 자유주의 교수들은 이리하여 반미로 전향했으며, 친미 입장을 견지하던 교수들은 고립되고 말았다.
--- p.123
반항아이면서 정신 탐구자였던 마오쩌둥으로서는 샤오쥔이 분명 마음에 들었지만, 마오쩌둥이 새로운 사회질서를 확립하고 이런 질서를 유지하고자 할 때에 샤오쥔 같은 영원한 반항아를 더 이상 용인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샤오쥔이 옌안에 있을 때 일어났던 여러 가지 충돌의 근본적인 원인은 아마도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 p.168
지식인의 역할을 과장하던 동시대의 자유주의 지식분자와 비교하면, 주쯔칭의 자기 평가는 냉정하고 객관적이었다. 그는 강대한 물질적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외 반동세력 앞에서 지식분자의 나약함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민중의 기본적인 생존 요구마저도 충족시킬 수 없는 지식인의 근본적인 한계도 직시했다. …… 그래서 그는 지식분자들이 5·4 시기에 가졌던 지도자의 지위를 지금의 중국에서는 이미 상실했다는 사실에 직면할 충분한 용기도 있었다.
--- p.188~189
지난 몇십 년 동안 개조를 거친 지금, 우리가 당시의 이런 두 가지 해석을 보면, 마오쩌둥의 본뜻에 부합하거나 가까운 것은 비판자들(사오취엔린 그들)이지, 절대로 후펑과 그의 친구들이 아니라는 것은 논증할 필요도 없이 바로 단정 지을 수 있을 것이다. …… 그러나 비판자들이 이런 ‘대항’은 자각적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대항자들이 주관적으로는 여전히 마오쩌둥을 진정으로 옹호하고 심지어 수호하려 했다는 점은 말하지 않았다. 지지와 옹호에서 출발한 이런 대항은 이 책이 역점을 두어 토론하고자 하는 공화국 문화의 복잡성을 충분히 말해주고 있으며, 그 자체가 바로 엄청난 비극이었다. 후펑과 그의 친구들은 이렇게 자신의 주관적 의사와 배치되는 상황 속에서 이처럼 특수한 방식(심리, 언어 등등)으로 이론상 마오쩌둥에게 공개적으로 대항하는 지식분자의 역을 맡아 하게 되었다.
--- p.227~228
모든 것은 결국 변하게 되어 있다. 거시적으로 바라보면 중국이 머잖아 참신한 시대로 접어들게 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글을 쓰는 사람이 자신의 글이 가치 있고 쓸모 있기를 바란다면, 전통적인 창작 방식과 사회적 태도에 대해 엄격하고 진지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고, 다소 선택을 해야 한다. 과거의 것들은 버리고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배워야만 한다. …… 그들은 이런 변화에 대해 결코 반대하거나 저항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고 “공평하고 합리적인 새로운 사회의 조기 도래”를 기대하고 있었으나, 그들은 자신들이 적응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물러남’을 선택해야 했다.
--- p.307~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