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끊자 주방에서 시혁이 나오고 있었다.
“누구 전화야?”
“호야요.”
“호야?”
양순은 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다시 소파에 던져두고는 시혁을 끌고 주방으로 향했다.
“응, 어제 외박했다고 죽일 듯이 소리치는 거 공주가 간신히 말렸어요.”
양순의 말에 시혁은 아무 말 없이 웃기만 할 뿐이었다. 아마도 양호의 심정을 이해하는 것이리라. 자신도 누나인 시은이 매형과 외박을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양호처럼은 길길이 날뛰지는 않았지만 화를 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거 우리 아침이에요?”
식탁 위에는 갓 구운 노릇노릇한 토스트와 양순이 가장 좋아하는 달콤한 향의 김이 모락모락 나는 코코아, 보기에도 싱싱한 야채들로만 만들어진 샐러드가 먹기 좋게 놓여 있었다.
“아침을 잘 먹지 않아서 냉장고가 텅 비었어.”
“좋아요. 오늘만 봐줄게요.”
“고맙군.”
양순은 아침을 꼭 챙겨 먹기에 아침 식사를 빵으로 때운다는 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배가 너무 고파서 돌이라도 씹어 먹고 싶은 심정이었다. 의자에 앉자 시혁이 제일 먼저 따뜻한 코코아를 양순에게 건네주었다.
“그런데 시혁 씨 코코아 안 먹잖아요? 어떻게 집에 코코아가 다 있어요?”
시혁이 건네주는 코코아잔을 받아 들어 후후 불어 가면서 홀짝이던 양순은 평소 쓰디쓴 커피만 마시던 시혁을 잘 알기에 어떻게 그의 오피스텔에 코코아가 있는지 의아해했다.
“네가 좋아하잖아.”
“그럼 나 때문에 일부러 사 놓은 거예요?”
시혁은 양순의 말에 부끄러운 듯이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이며 갓 구운 토스트를 먹기 좋게 잘라 양순에게 건네주면서 딴청을 부렸다. 그의 작은 배려에 또 한 번 감동했다. 이 남자,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남자였다. 남들 앞에서는 카리스마니 황태자니 하는 별칭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 앞에서만은 한없이 자상한 남자가 되는 것이다.
“천천히 먹어.”
시혁은 앞에 놓인 토스트는 손도 대지 않고 계속해서 앞에서 우물우물거리면서 맛있게 먹고 있는 양순을 사랑스런 눈길로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자신이 봐 온 여자들과 달리 너무나 복스럽게 먹고 있는 양순의 모습이 시혁의 눈에는 사랑스러웠다. 그러다 문득 이 여자와 함께라면 평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달콤하고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고 함께 잠들고 아침을 먹는 지금의 모습이 너무나 편안한 느낌이었다. 그런 시혁이 무의식적으로 한마디 내뱉었다.
“결혼할래?”
“!”
시혁의 말 한마디로 인해 맛있게 먹던 빵이 양순의 목구멍에 걸렸다. 그런 양순의 비해 시혁의 표정은 덤덤하니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오히려 더욱더 여유로운 표정으로 먹음직스럽게 딸기쨈을 바른 토스트를 양순의 앞에 놓아주면서 말이다.
“컥컥…… 헉!”
시방 이것이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순간 시혁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양순의 표정이 멍하게 시혁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지, 지금 그거 프러포즈예요?”
“그렇게 들렸다면 프러포즈라고 생각해.”
시혁은 한 번도 여자를 보면서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집에서 자신의 셔츠를 걸치고 함께 아침을 먹는 양순을 보는 순간 평생을 이렇게 살아도 행복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불현듯 시혁의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뭐? 결혼을 해? 이게 프러포즈?”
시혁의 덤덤한 말투에 화가 난 양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무리 자신이 무드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건조한 여자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여자는 여자였다. 그런데 일생에 단 한 번뿐인 프러포즈를 이런 식으로 빵 쪼가리를 먹으면서 받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같이 살아도 좋을 거 같아.”
“장난해요? 이게 어떻게 프러포즈야!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어! 내가 아무리 무드 없는 여자라고 하지만 이런 프러포즈 절대 거절이야!”
양순은 억울했다. 그래서 들고 있던 토스트를 던지듯이 내려놓고는 분통을 터뜨렸다. 물론 시혁과의 결혼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얼렁뚱땅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더구나 일생일대에 딱 한 번밖에 받을 수 없는 결혼 프러포즈가 아닌가.
“프러포즈가 그렇게 중요해?”
“몰라, 저리 꺼져요!”
시혁은 양순의 분통에 당황스러웠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주 행복한 표정으로 토스트를 먹던 양순의 모습은 사라지고 눈에 불을 켜고 자신을 노려보는 그녀의 모습에 순간 움찔했다.
“나랑 결혼하기가 그렇게 싫어?”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일생에 한 번뿐인 프러포즈를 어떻게 이런 빵 쪼가리를 먹으면서 받아? 최소한 장미꽃 한 송이라도 주면서 해야지! 잘 생각해서 제대로 해요!”
양순이 시혁을 향해서 제법 앙칼지게 말하고는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젠장, 그래서 결혼을 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방으로 들어온 양순은 자신의 구겨진 옷들을 탈탈 털어서 입었다. 얼굴은 여전히 잔뜩 찡그린 채 말이다.
“그래도 명색에 프러포즈인데 이게 뭐야!”
침대에 털썩 앉아서 신경질을 부리는 양순이었다. 사실 갑작스럽게 결혼하자는 말에 당황했다. 지난번 장난스럽게 같이 살래? 라는 말과 오늘은 달랐다. 그리고 결혼을 하게 되면 평생을 함께해야 하는데 양순은 솔직히 자신이 결혼생활을 잘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아무래도 생각이 많아지는 시간이 될 듯하다.
“결혼……? 내가 잘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