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야, 문 열어.”
그 목소리는 작았지만 신기하게도 남편이었다. 문을 여는 순간 추레하고 깡마른 남자가 서 있었다. “어머머 당신 어떻게 된 거예요?” 하는 사이 남편은 안으로 들어와 나를 와락 껴안았다. 그동안 고생한 것이 떠올라 나는 남편을 마구 때렸다. 그러다가도 탈없이 무사히 돌아온 것이 고마워 껴안고 또 엉엉 울었다. 우린 만남 자체가 반가워 한참을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러다 채권자들에게 고생을 한 생각이 치밀어 남편을 홱 뿌리치며 따졌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집에는 연락을 해야지 진짜로 그렇게 연락을 안 할 수가 있어요?”
“미안해 나도 얼마나 연락하고 싶었는데, 당신보다 백 배는 더 연락하고 싶었지….”
남편은 미안한 얼굴로 먼저 식탁에 앉았다. 남편은 막노동이라도 하여 조금이라도 목돈을 마련해보려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노동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노동을 해서 될 일이 아니어서 여기저기 다니며 마음을 정리한 후 돌아왔다는 것이다. 평생 안 해본 노동을 했든 안 했든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나는 궁금하여 별별 걱정을 다하다가 파출소에 실종신고까지 하지 않았던가. 느긋하게 말하는 남편을 보니 나만 맘을 졸인 것 같았다. 순간 화가 났지만, 깡마른 그도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것이 또 마음을 아리게 했다. 마음이 온갖 변덕을 연출한다. 평소에 우리는 학교 동창이라 그렇게 애틋하기보다는 오히려 너무 잘 알아서 자주 싸웠다. 그러기에 이번처럼 남편의 무사 귀환을 위해 온 힘을 다해 기도한 적도 없었다. 얼마나 몰두했는지 남편의 “나야, 문 열어” 소리가 하나님 목소리처럼 들렸다. 남편이 그렇게 소중하고 고맙다는 것을 그때 처음 느꼈다. 다행히 나도 대학에 다시 강의를 나가게 되었다. 모든 것이 감사했다.
---「나야, 문 열어」중에서
장자의 「소요유」는 앞으로 펼쳐질 사유의 여정을 보여주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다. 사람 사는 세상을 달팽이 뿔 위에서 다투는 것(蝸角之爭)처럼 한없이 좁게 본 그의 가슴은, 나를 우화(羽化)하여 저 높은 하늘 위에서 이 땅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시원한 ‘또 다른 나’를 만들어낸다. 그것이 곧 장자가 나이며, 내가 장자일 수 있는 호접몽(胡蝶夢)의 즐거움이요. 좌망(坐忘)의 깨달음일 것이다. 수필이 체험의 문학이라고 하여 상상적 기법 없이 정직하게 사실 그대로 써온 경우가 많았다. 그동안 수필의 상상력은 거의 자신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과거의 사건을 마음속에 떠올려 현시점에서 재구성하는 것이었다. 장자에 펼쳐진 호방한 그의 담력과 기이한 발상, 기세 넘치는 필력과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조소(嘲笑)의 언어. 그리고 허(虛)를 찌르는 기상천외한 비유는 그의 많은 우화에 너무나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현대판 사이버 세계를 이미 설정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그의 글은 텍스트에서 행간을 읽는 재미와 함께 고황의 일침(一針)으로써, 우리에게 우주 밖의 어떤 세계를 설정하게 한다. 그래서 사이버시대에 우리에게 무한소재를 제공해주는 수원지가 바로 장자의 우화가 아닐까.
---「아포리즘 수필과 장자의 우언」중에서
내가 초등학교 삼학년 무렵, 어느 날 문득 엄마가 낯설게 느껴졌다. 평소와는 다르게 경건해보이며 존경스러운 마음마저 들었다. 깨끗하게 한복을 차려입은 엄마는 머리도 정갈하게 빗고 간절히 기도하셨다. 촛불 하나를 켜놓고 하얀 그릇에 정화수 한 그릇을 떠놓고 기도하는 모습은 사뭇 경건하였다. 나도 좀 떨어진 곳에서 엄마를 바라보며 손을 모으고, 무엇인가를 빌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오직 정성스러운 마음만으로, 천지신명이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자 하는 경이로운 일이었다. 마음은 모든 힘의 근원이다. 인간이 마음을 다해 최선을 다하면, 마음과 마음이 이어져 주변도 변화시킬 힘이 있다. 마음과 마음이 모여 개인의 역사를 새롭게 쓸 수도, 새로운 역사의 물길을 낼 수도 있는 순간이 될 수 있다.
---「마음이 모여」 전문
요즈음 나는 독일의 철학자 니체에 푹 빠져 있다. 그동안은 장자에 심취했었는데, 니체가 ‘서양의 장자’라 불려서 관심을 더 갖게 되었다. 니체는 또 다른 매력으로 나를 흔들었다. 그의 철학사상을 공부하다보니, 이해하기 쉽게 수필 식으로 풀어 써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의 대표작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신은 죽었다”라고 한 것과 함께 그의 사상을 6개의 핵심어로 나누어 풀이해보았다. (중략) 신이 죽은 세상에서 허무주의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니체는 먼저 영원회귀(永遠回歸)를 인정하고 삶을 사랑하라고 한다. 세상은 매일 쳇바퀴 도는 하루의 반복이다. 그 말은 세상 만물이나 인간의 삶도 똑같은 것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것이 니체의 영원회귀사상이다. 그래서 인간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앞으로도 계속 반복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을 무겁게 하여 날지 못하게 하는 것이 중력의 악령이다. 중력은 사물을 땅으로 떨어뜨리는 힘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짊어지고 가는 여러 가지 삶의 무게들이 중력의 악령이다. 세상의 가치와 도덕, 거기에 끊임없는 욕망은 더욱 삶을 힘들게 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우리에게 중력의 무게 중에 가장 무거운 영원회귀라는 무거운 짐을 덜어낼 수 있는 힌트를 주었다. 영원회귀라는 지독한 허무주의의 삶을 극복하는 열쇠는 바로 이 ‘순간’이라고. 지금, 이 순간을 긍정하고 알차게 사는 것이 극복 방법이다. 인생 최고의 순간은 과거도 미래도 아니고,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인생은 순간이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현재에 충실하게 살아, 다시 살아도 괜찮을 인생을 만들자. 평소에 “너의 삶이 다시 살기를 원할 수 있을 정도로 살아서” 생이 영원히 반복되더라도 그것이 삶이었는가? 좋다! 한번 더!라고 말할 수 있게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사랑하라고 말한다. 영원회귀를 인정했다면, 이 쳇바퀴 같은 세상에서 나는 무엇을 위해서, 무엇을 향해 살아가야 할까? 니체는 절대적 가치 대신 ‘나 자신에 주목하라’고 이야기한다. 절대적 진리가 없다는 말은 모든 것이 허용되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나 자신만을 믿고 내가 향하는 대로 가면 나도 모르게 자아를 만들어내고, 내 삶의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니체 철학 쉽게 이해하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