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의 시대, 상생의 사유와 공존의 미학
『융합의 시대: 문학 정신과 공감, 공존, 상생의 미학』에서는 문학 혹은 예술 작품 속에서 우리가 거리를 두고 지양해야 할 문제를 비판적 시선으로 고발함으로써 삶과 인간의 방향성, 즉 참다운 ‘삶다움과 인간다움’의 의미를 모색한다는 점에 주목하여 기획하고자 하였다. 삶에 대한 높고, 넓고, 풍부한 시선 아래 인간의 무례함과 ‘획일성 혹은 동일화’의 논리를 비판적으로 점검하는 것을 문학의 정신이라 정의할 수 있다면, 총 14편의 연구 논문은 이러한 문학과 예술의 지향점을 가리키고 있다. 이는 곧 소수를 되돌아보고 다수의 횡포는 없었는지 성찰하고 상생과 공존의 길을 탐색한다는 함축적인 성격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1부 ‘경계 허물기와 윤리적 공존’에서는 소수자로서 감당해야 할 사회적 억압과 차별을 어떻게 대응하여 개선해야 하는 것인지, 정상과 비정상, 강자와 약자의 ‘편 가르기’를 허물고, 그 경계를 가로지르는 공존의 삶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공동체를 향한 열린 시선은 소수적 약자를 배려하는 문학정신을 함축하고 있다. 또한 타자에 대한 편향되고 성급한 판단이 야기하는 비극,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동일화의 논리 또한 주목할 만하다. 차이를 긍정하고 단일한 정체성이 아닌 주변과 중심을 가로지르고 그 경계를 허물 때 ‘문화적 획일성’의 독단에 저항하는 것임을 이 논의들은 비판적으로 읽어내고 있다.
2부 ‘인간탐색과 공감의 윤리’에서 4편의 논문들은 인간 본연의 선과 악, 희망과 불안, 우울의 정조, 욕망과 욕구의 문제를 탐색하고 분석하고 있다. 이 논의들은 선함과 아름다움 혹은 고상함, 이성으로 평가되고 재단되는 독선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인간에게는 이성과 합리라는 논리적 토대를 마련하고자 하는 의지도 있지만 무의식이라는 무한대의 광활한 욕망의 덩어리가 공존하고 있으며 이는 건강한 분출로 이어질 수 있지만 파괴적이기도 하다. 반면 이러한 인간의 양면성, 즉 이성과 불합리, 선과 악, 고상함과 야만성, 아름다움과 추함이라는 양 극단을 오가는 미묘한 인간본성을 문학과 예술작품에서 매력 있고 흡입력 있게 다루게 된다. 억압된 욕망과 위선의 이중성은 인간본성을 숨기기만 할 뿐 인간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포용하는 데 걸림돌이 되어 왔다. 이러한 지점에 주목하여 논의하고 있다는 점에서 2부의 저작은 흥미롭고 또한 의미 있는 연구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3부 ‘연대와 상생의 사유’에서는 융합의 시대, 4차 혁명의 현재와 미래 및 인류의 안위를 전망하고 예측함으로써 상생과 연대의 중요성을 담고 있는 논문으로 구성하였다. 이들 논문은 우리의 삶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을 예견하면서도 윤리적 문제를 고민하고, 또한 팬데믹으로 고통스러운 최근 2년간의 사회모습 속에서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인지 모색하고 있다. 바이러스 및 위생담론이 특히 현재의 문제이기 전에 시대와 공간을 아울러 인간 보편의 고민이라는 것, 그리고 이러한 문제가 사회, 정치, 특히 통치를 위한 전략 혹은 도구로 전락할 위험이 있음을 경고하는 논의도 있다. ‘이성과 합리’라는 이름하에 자행되는 인간의 이기심과 은폐된 전략은 고통을 수반하기에, 현 시점의 여러 고민 혹은 논란은 상생과 연대의 사유, 비판적 성찰을 통해 개선될 수 있음을 본 연구들은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편협한 사고의 틀 안에 갇혀 있을 때 마주하게 될 위험은 유연한 융합의 사유 속에서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인간이 두어야 할 가치와 목표가 공동체를 향해야 한다면, 이를 위한 실질적인 유용한 체제의 초석과 기틀은 철학적·미학적 고민과 사유 속에 내재하고 있을 것이다. 단, 개념과 사유에만 머무르고 있다면 이는 허구가 될 수 있고, 또한 철학적 사유가 없는 삶은 위태롭고 맹목적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러한 의미에서 삶과 인간에 긴밀하게 연결된 문학은 실천과 행동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인간의 위대한 목표는 지식이 아니라, ‘행동’에 있다.”라고 본다면 이를 위한 다양한 문학과 예술작품의 탄생과 이들에 대한 세심하고 비판적인 연구와 논의는 행동할 수 있는 지성, 상생과 연대에 기반한 공존을 지향하는 소중한 발판이 될 것이다.
총서 발간을 지원해 주신 한국문화융합학회 회장님을 비롯한 학회 관계자 분들, 그리고 원고 작성에 기꺼이 동의하시고 동참해 주신 모든 저자 분들께 진심 어린 감사를 드린다.
---「머리말」중에서
팬데믹 상황 속에서 생산된 다양한 소설 작품들은 장편이 아닌 단편들이 주를 이루고, 이 또한 대부분 앤솔로지(anthology) 형식으로 출판된 경우가 많다. 미국에서 출판된 후 한국어로 번역, 소개된 『데카메론 프로젝트』(2020)나 한국 작가들이 쓴 『쓰지 않을 이야기』(2020)와 SF 소설집 『팬데믹: 여섯 개의 세계』(2020) 등과 같은 팬데믹 앤솔로지들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데카메론 프로젝트』의 출판에 참여한 총 29명의 소설가가 국적과 지역이 미국, 캐나다뿐 아니라 모잠비크, 에티오피아, 브라질, 파키스탄, 칠레 등 출신 지역이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때문에 글로벌한 하나의 공통된 사건으로서 팬데믹을 다양한 지역, 다양한 정치적, 경제적 상황 속에서 어떻게 감응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책의 편집자는 1353년 조반니 보카치오가 25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흑사병을 피해 이탈리아 피렌체 외곽에서 젊은이들이 들려주는 100편의 이야기를 담은 액자소설 『데카메론』에서 영감을 얻어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됐다고 쓰고 있다. 이들 앤솔로지들은 복잡한 서사 구조보다는 단순하고 단선적인 플롯으로 이루어진 짧은 이야기들 위주로 구성돼 있다. 이 때문에 팬데믹 이야기들(pandemic stories)은 사회에 대한 종합적이고 안정적인 내러티브를 제공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한계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팬데믹 이야기들은 여러 국적의 작가들이 자신들의 문화적 위치 안에서 팬데믹으로 인해 변화한 사회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과 정동(affects)을 ‘즉각적으로’ 증언하고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팬데믹 사회를 살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작가들은 팬데믹 사회의 변화를 빠르게 포착해 내고 또 이를 토대로 새로운 미래를 향한 미학적-정동적(aesthetic-affective) 실험을 감행한다. 실제로 팬데믹 앤솔로지들의 기획 의도를 보면, 대부분 팬데믹 상황에 대한 문학적 응전으로서의 의미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는 문학과 사회의 관계를 논할 때 그 의미가 작지 않다고 본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글은 팬데믹 이야기들이 포착하는 감정과 정동들에 주목한다. 팬데믹 현상이 글로벌한 사건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관통하는 공통의 감정구조로 재사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기실 팬데믹 이야기들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감정들은 예상할 수 없었던 사건인 팬데믹을 역사적으로 중언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감정에 대한 분석은 그 자체로 팬데믹 사회의 변화를 성찰할 수 있는 중요한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 팬데믹 앤솔로지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감정들을 분석해냄으로써 팬데믹 사회의 공통 감정을 논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포스트 팬데믹 사회의 윤리와 정치를 생각하는 계기로서도 의미가 있다.
사실 코로나바이러스는 인간의 시력으로는 볼 수 없는 미시적인 실체로서, 바이러스 자체는 인간의 신체감각 장(場) 안에서 포착할 수 있는 대상이 결코 아니다. 아마도 이 점은 세계의 모든 작가들에게 주어진 공통된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들은 이처럼 재현할 수 없는 미시 실체를 마주하면서 글쓰기를 시작해, 어떻게 이토록 작은 실체가 거대한 도시와 인간의 삶을 변형시켜 갔는지 추적함으로써 팬데믹 사회의 진실을 묘파하고자 한다. 실제로 팬데믹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감정 중 하나가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 관한 것이다. 말하자면 팬데믹 이야기는, 재현할 수 없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회와 도시, 일상에 천착해 가면서 자연스럽게 동시대인의 삶과 감정을 증언하고 나아가 팬데믹 사회의 본질을 파악하고자 하는 공통된 실존의 노력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작가들은 유례가 없는 팬데믹 상황을 단순히 어느 날 갑자기 출현한 사건으로 기록하기보다 현실 내부에 이미 자리하고 있었던 사회적 모순들과 결합해 이해하고자 하는 시선을 드러낸다. 이러한 생각 역시 주목이 필요한 부분이다. 사실 팬데믹 이전과 이후를 연결하는 포괄적인 접근 방식은 팬데믹 사회를 관통하는 주요한 사유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방면에서 이미 많은 논의가 진행됐다. 즉, 많은 논자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을 계기로 팬데믹 이전부터 우리 내부에 존재해 오고 있었던 문제들을 더 깊이 사유하는 방식을 택했다. 예를 들어, 인간중심주의로 인한 생태적 위기, 신자유주의 사회의 불안정성(precarity), 계층적 불평등과 연대의 빈약함 등이 팬데믹 사회를 관통하는 정치적·윤리적 물음으로 재사유되고 있다. 이러한 사유의 이면에는 다양한 현대사회의 모순들과 함께 코로나바이러스가 자가 증식하고 있었다고 하는 관점이 자리하고 있다. 가령, 슬라보예 지젝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을 “잠재적으로 병원체가 될 수 있는 바이러스 메커니즘, 산업화된 농업, 전 지구적 경제의 급속한 발전, 문화적 관습들, 국제적 소통의 폭발적 증가 등의 집합체”라고 보았다. 이는 감염병이 “자연적, 경제적, 문화적 과정들이 복잡다단하게 서로 묶여 있는 하나의 혼합체”라는 시각이다(슬라보예 지젝, 2020:142) 따라서 팬데믹 앤솔로지를 분석하는 것은 현 사회의 감정을 분석하는 것을 넘어 우리 시대의 다양한 모순들을 마주하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글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팬데믹 이야기를 관통하는 세계 감정으로서의 공통 감정과 공통적인 사유방식이 무엇인지 말하고자 한다. 주목할 것은 바이러스라는 재현할 수 없는 대상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작가들이 구상하는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이다. 즉, 팬데믹 이야기들을 통해 다양한 사회의 느낌들이 정동적으로 조율(affective attunement)되는 과정이 발생한다. 가령, 앤솔로지에 담긴 다양한 목소리들은 서로 얽히면서 공명하는 문학적 풍경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질적인 차이들에서 출발하는 팬데믹 이야기들이 마치 하나의 모자이크처럼 결합하면서 비록 특정한 실체와 목적을 표명한 바 없음에도 현 사회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에 대한 일종의 공통된 물음들을 던지는 과정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는 브라이언 마수미(Brian Massumi)가 말한 파국 장에서 여러 다양한 목소리들이 조우하면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정동 정치(politics of affects)가 출현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논문은 팬데믹 사회의 공통된 감정구조를 포착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이를 새로운 미적 정동 정치의 가능성으로 읽어내고자 한다.
구체적인 분석 텍스트는 앞서 언급한 2020년 팬데믹 한가운데에서 미국에서 출판된 세계 여러 작가가 참여한 작품집 『데카메론 프로젝트』, 한국에서 출판된 『쓰지 않을 이야기』, 『팬데믹: 여섯 개의 세계』 등 세 권의 앤솔로지를 선정했다. 이들 작품을 분석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팬데믹 이야기들이 아직 팬데믹 상황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 우리가 팬데믹을 어떻게 느끼고 경험하는지를 비교적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본격적인 작품 분석에 앞서 문학과 사회를 연결하는 감정과 정동, 그리고 감정구조의 개념을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문학이 수행하는 정동 정치가 무엇인지, 그 이론적 맥락을 간략히 검토해 보자.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