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좋아서 서울에 온 외국인 게스트를 통해 이곳이 얼마나 매력적인 도시인지, 한글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K-pop이 어떻게 외국인들을 춤추게 하는지, 서울이 얼마나 에너지를 주는 도시인지, 그들이 나에게 알려주고 들려주고 보여주었다. 처음 걱정과는 달리 엄마도 서울홈스테이에 완벽 적응했다. 비록 영어가 안 통해도 손짓, 발짓, 온갖 표정을 써가며 외국인과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었다. 게스트의 눈치를 보는 나와 달리 엄마는 중심을 잡고 홈스테이를 잘 운영해나갔다. 전업주부 엄마가 아닌 서울홈스테이 대표 최순례로서의 새로운 엄마를 발견했다.
서울홈스테이를 시작한 이후로 변화가 생겼다. 그렇게 기다려온 휴가지나 선망하던 외국에서, 그새 서울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시간만 있으면 어디든 떠나려고 했던 내가, 한국만 아니면 모든 것이 좋다던 내가 ‘세상 어디를 가도 서울보다 멋진 도시는 없다.’고 느끼는 서울의 지지자이자 광팬이 된 것이다. 미세먼지와 콘크리트 정글로 현기증이 올라올 것 같다가도 다이내믹한 에너지를 지닌 서울을. 서울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지 말라. 지구 반대편에서 누군가는 미친 듯이 열망하는 이 아름다운 도시, 서울에서 그대는 살고 있다.
엄마: 에어비앤비가 뭔데?
여름: 에어비앤비는 하숙이라고 보면 돼, 엄마 아빠랑 신혼 때 하숙했었다고 했잖아. 그거랑 똑같아. 근데 들어오는 사람이 외국인인 거지. 이게 요즘 되게 유행하는 건데….
엄마: 미쳤어? 무슨 집에 외국인을 들여? 내가 영어 한마디도 못 하는데 무슨 외국인이야. 쓸데없는 소리를 해. 그러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려고.
여름: 여자 게스트만 받으면 되지. 그냥 엄마가 했던 하숙이랑 똑같다니까. 우리 밥 먹는 거에 숟가락 하나만 더 놓으면 되고 엄마 청소할 때 그냥 청소하면서 돈 벌 수….
엄마: 미친 소리 하지 마.
2015년 어느 날. 문득 우리 집 빈방이 내 눈에 들어왔다. 우리 집 안방은 홈스테이하기에 완벽했다. 햇빛이 잘 드는 화장실 딸린 넓은 방, 오래된 집이지만 깔끔했고, 가구 배치만 조금 바꾸면 여행객을 위한 완벽한 방으로 바꿀 수 있는…. 외국인들과 함께 하하하 떠들고 사랑과 활기가 넘치는 우리 집 게스트하우스! 영화 「비긴 어게인」에서 노래를 부르는 그레타를 보며 완벽한 곡을 상상하는 댄이 바로 내 모습이었다.
에어비앤비에 올리기만 하면 연락이 올 거라고 확신했던 내 기대와는 달리 일주일이 지나도 아무런 문의도 들어오지 않았다. 일주일, 이주일이 지나도 예약은커녕 문의조차 오지 않으니 시작 전 불타올랐던 열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슬슬 포기할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합법적으로 숙박업을 할 수 있는 외국인관광 도시민박업은 꼭 집주인이 함께 살고 있어야 하며, 이 외국인관광 도시민박업을 준비하고 있는 호스트라면,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외국에서 살아본 경험이나 여행을 많이 다녀본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는 인지하고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평범한 대한민국의 전업주부로만 평생 살아온 엄마에겐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엄마, 인간관계는 불과 같대요.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거죠. 게스트는 돈을 내고 우리 집에 머무는 거니까, 우리가 정해놓은 규칙을 잘 지키는 한 그냥 무관심하도록 노력해 봐요. 엄마의 좋은 의도도 문화와 언어가 다른 외국인은 오해할 수 있어요.”
“이것 좀 봐봐, 난 항상 우리 게스트들한테 존댓말 하는데(엄마는 게스트들이 한국어를 못해도 항상 존댓말로 한국어를 쓴다), 브렛은 항상 나한테 반말이야.” 무슨 소리지? 브렛은 한국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데…. 영문을 몰라 엄마가 건넨 휴대폰을 보고 난 포복절도하고 말았다. 한국어를 전혀 할 줄 몰랐던 브렛은 엄마와 카카오톡으로 대화하는 게 편했는지 줄곧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말이 대화지 엄마가 보여준 브렛과의 카카오톡은 흡사 사장이 말단 부하직원에게 업무를 하달하는 수준이었다. 아 물론 이 대화에서의 사장은 브렛이고, 엄마는 부하직원이었다.
엄마와 나, 그리고 외국인 게스트. 아니 어느새 우리 가족이 된 도로테. 가족은 단지 핏줄이 아닌, 어디에 있든지 서로 생각해주고 무슨 일이 있으면 함께 이야기하고 고민이 있을 땐 고민 상담을 해줄 수 있는, 이 시대의 모던 패밀리. 엄마와 나, 그리고 도로테. 우리는 한국판 모던 패밀리.
여름에 우리 집에 있는 게스트는 운이 좋다. 옥상은 우리 가족이 삼겹살 파티를 하는 핫스폿이다. 돗자리를 깔고 불판 위에 삼겹살 굽고, 엄마가 직접 담근 마늘장아찌까지! 서울 한복판에서 루프탑 삼겹살 파티를 누리는 외국인, 아니 한국인도 쉽게 경험하기 힘든 한여름 밤의 꿀이다.
우리 집은 설날, 추석에 제사상을 차리기 때문에 명절에 우리 집에 온 게스트는 무척 운이 좋습니다. 함께 전도 부치고 명절 음식 서비스도 많이 주거든요. 매년 김장하는 날은 게스트가 가장 기다리는 날입니다. 김장을 하고 싶다고 체크인하기 전에 물어보는 게스트도 있을 정도예요. 온 가족이 김치를 만들고, 직접 만든 김치와 수육 보쌈을 먹으면 최고죠.
체크인 전에 한국 음식 만들기를 체험해 보고 싶다는 외국인이 참 많아요. 그러니 홈스테이를 한다면, 꼭 한식을 같이 만들어 보세요. 거창한 음식이 아니라 멸치볶음, 콩나물무침같이 평소에 반찬으로 먹는 음식을 가르쳐 달라고 하는 경우가 더 많았어요. 영어를 못해도 손짓, 발짓, 눈짓이면 다 통하니 걱정 말고요!
서울홈스테이는 편견에 맞서는 교육기관이고, 외국인 게스트는 선생님이다. 여긴 엄마와 내가 세상을 배울 수 있는 또 하나의 학교인 셈이다.
고기를 못 먹는 빅토리아가 어느 날 밖에서 너무 맛있는 면 요리를 먹었다며 우리와 함께 꼭 가고 싶다고 했다. 해산물이 많아서 한국 여행을 기대했다는데, 생각보다 해산물을 먹을 수 있는 곳이 많이 없어서 실망한 빅토리아를 유혹한 그 면 요리는 대체 뭘까? 정체가 궁금한 그 식당은 다름 아닌 작고 예쁜 분식집이었다. 그리고 대망의 면 요리는 짜파게티.
아담은 우리 엄마를 아줌마, 이모, 저기요 등이 아닌 ‘엄마’라고 부른 첫 번째 외국인 게스트였다. 나에게는 물론 누나라고 불렀다. 아니, 항상 ‘누나, 야’ 또는 ‘야, 누나’라고 부르며 장난치는 우리 집 막둥이였다. 그런 아담이 아들같이 편했는지 엄마는 장을 보러 갈 때마다 아담을 데리고 다녔다. “아담, 렛츠고”라며 아담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마다, 아담은 싫은 내색 없이 엄마를 따라나섰다. 주렁주렁 알타리를 들고 엄마 옆에 꼭 붙어 다니던 착한 다미!
홈스테이의 매력은 바로 이 부분에서 빛을 발한다. 우리 동네를 외국인 게스트에게 새롭고 비밀스러운 여행지로 소개한다. 서대문구에서만 25년, 같은 집에서 살아온 나는 서대문구를 너무나 사랑하는 구민이다. 한국 음식을 나보다 잘 먹는 게스트에게는 가이드북에 없는 우리 동네 진짜 맛집을 안내하고, 자연을 좋아하는 외국인에겐 전국에서 벚꽃이 가장 아름다울 것 같은 안산 자락길을 소개한다. 역사를 좋아하는 친구에겐 서대문 형무소를 추천하고, 추운 겨울 필수코스로는 우리 동네 찜질방을 함께 다녀온다.
집에 빈방이 있는 정년퇴직하신 분들께 홈스테이를 적극 추천합니다. 다른 어떤 일보다 편하게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퇴직하고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지면 우울감이 오기 쉬운데, 세계에서 온 젊은 친구들과 가족처럼 함께 지내다 보면 우울할 틈도 없고, 시간도 참 빨리 갑니다. 혹시라도 영어를 못한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요즘에는 번역기 앱이 참 잘 되어있어 외국인과 소통에 큰 불편함이 없습니다. 저 역시 영어를 아예 못해서 처음에는 너무 두려웠지만, 딸이 깔아준 번역기를 통해 소통하고, 또 홈스테이에 필요한 간단한 영어문장은 외워서 하니, 의사소통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