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온 질환은 지적 욕구를 자극하는 의학적 미스터리다. 지금으로서는 유전, 감염, 우연(‘산발적’이라고 한다)이라는 세 가지 발병 경로를 모두 취하는 유일한 병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프리온 질환의 가설(아직 모두가 동의하는 표준적인 확진법이 없으므로 ‘가설’이란 용어를 썼다)은 프리온이 생물계에 존재하는 유일한 종류의 감염 병원체, 즉 감염성 단백질이기 때문에 이런 3중의 발병 경로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프리온은 단백질이지만 바이러스나 세균과 똑같이 행동한다. 프리온이 발견되기 전까지 과학자들은 단백질에 이런 능력이 있으리라고 생각지 못했다. 단백질은 우리 몸에서 만들어냈다가 기능을 완수한 후에 폐기시키는 신체 건축용 블록으로 생각했다. 어떤 책에서는 ‘자연계의 로봇’이라는 경멸적인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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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사전을 아무리 뒤져봐도 의사의 증상에 맞는 감염증은 없었다. 그는 단순히 열만 나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불안감에 시달렸고,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말처럼 땀을 흘렸으며, 깊숙한 내부에서 배어나는 듯한 오한에 몸을 떨었다. 극도로 지친 상태에서도 꿈으로 뒤범벅된 얕은 잠에 들었나 하는 순간 깨어났다. 하인들은 그가 창문을 문인 줄 알고 두드려대는 소리를 듣거나, 거머리를 넣어 두는 검은 유리병에 있지도 않은 물을 첨벙거리며 치료용 거머리를 꺼내는 시늉을 하는 모습을 훔쳐보았다. 주인을 깨우러 방에 들어가는 하인들 뒤로 근심 가득한 부인이 뒤따르곤 했으리라. 그는 잠이 무엇인지, 휴식이 주는 느낌이 어떤지 잊은 지 오래였다. “피곤하구나.” 그는 베니스어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하인들이 물러가고 부인만 남은 자리에서는 가장 깊은 공포를 토로하곤 했으리라. “아무래도 미쳐 가는 모양이오.” 정녕 그는 미쳐가고 있었을까? 신이 이성의 힘을 앗아가버린 불쌍한 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세레니시마에서 석호의 가장 후미진 곳에 마련한 시설이 그의 운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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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들은 메리노를 토착종과 교배한 후, 태어난 직계 자손과 다시 교배했다. 한 마리의 메리노 수놈이 어떤 양의 5대조이자 아버지일 수도 있었다. 거듭된 동종교배로 인해 사실상 순종이나 다름없었지만 어쨌든 잡종 메리노라고 불린 후손들은 우수한 형질을 보급한다는 차원에서 다시 다른 지주에게로 보내졌다. 1802년 아서 영은 “영국 거의 모든 지역에” 메리노가 분포한다고 쓸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이 양들에게 지옥 같은 일이 벌어졌다. 누가 영국인들을 탓할 수 있으랴? 5세기 넘도록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려온 그들을. 결과를 신중히 고려하지 않았다고 해도 용서할 수밖에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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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 포레이족은 카마노족에게서 식인풍습을 배웠다. 북부 포레이족을 추앙하던 남부 포레이족 역시 이 풍습을 받아들였다. 어떤 포레이족의 묘사를 보자. “타와지란 이름을 썼던 조상이 … 마법에 의해 죽었을 때 시작되었지요. 그의 시신을 크라완티로 옮겨 요리한 후 모든 지역에 살을 나누어줬어요. 맛을 본 사람들은 다들 좋아했지요. ‘기막힌 걸!’ 사람들은 입을 모았어요. ‘뭐가 문제야, 정신 나갔어? 이렇게 맛난 음식이 있는데, 지금까지 안 먹고 뭐했담.’” 인구증가로 인해 이 풍습은 삽시간에 퍼졌다. 굶는 사람이 없어도 포레이족은 식인을 즐기게 되었다. “포레이족의 식인풍습에 관해 꼭 기억할 것은 인육을 맛있는 음식으로 생각했다는 점입니다. 즐겼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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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시너는 수수께끼의 병원체가 무엇이든 새로운 이름을 붙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들려주기 좋아하는 얘기가 있다. 천체물리학자인 친구가 ‘쿼크quark1◆’처럼 간단하고도 뚜렷한 인상을 주는 단어를 선택하라고 충고했다는 것이다. 경쟁자들의 이니셜을 이리저리 짜맞추는 지루한 회의 중에 프루시너는 생각을 거듭했다. 마침내 ‘프리온’이란 이름이 떠올랐다. 《네이처Nature》는 “‘작은 단백질로 된 감염성 입자’를 의미하는 다소 억지스러운 두문자어頭文字語”라고 평했다. 억지스러울지 몰라도, 인상적인 것은 사실이다. ‘프리온’이란 말은 생화학 용어치고 섹시한 편이다. 마치 물리학자가 발견한 것처럼 첨단 분위기를 풍긴다. 일렉트론(전자), 뉴트론(중성자), 포톤(광자) … 그리고 프리온. 친구들은 ‘프리온’이란 단어가 프루시너의 마음에 든 이유는 발음상 그의 이름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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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리비히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영양부족으로 어지러움을 느끼는 유럽의 모든 여성이 “리비히즈”를 사 먹었다. 노동계급을 위한 쇠고기 에센스를 발명한 지 1년 정도 지나자, 그는 할 일이 남았음을 깨달았다. 단백질을 추출하고 남은 찌꺼기에서도 수익을 올릴 길이 보였던 것이다. 우선 찌꺼기에 소금을 뿌리고, 한 잡지에서 고상하게도 “고기 섬유질 잉여물”이라고 표현했던 것들을 섞어 돼지에게 먹여보았다. 돼지들은 좋아하지 않았지만, 단맛을 내는 물질을 섞어주면 그런대로 참고 먹었다. 곧 농부들은 이 혼합물을 소와 닭에게도 먹이기 시작했다. 말들은 절대 먹지 않았다.
머지않아 두 종류의 동물성 단백질이 동물사료로 쓰이게 되었다. 사람들이 먹지 않는 부위로 만든 ‘미국산 고기 사료’와 병든 짐승의 사체로 만든 ‘독일산 사체 사료’였다. 두 제품 모두 가축의 체중을 급속히 증가시켜 축산업계의 히트상품이 되었다. 병든 짐승으로 만든 사료가 음식 매개성 감염을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없지는 않았지만, 1909년 발표된 한 과학적 지침서는 “회전식 칼날이 장착된 커다란 원통에 초고온 증기를 가하면” 고기에서 모든 감염균을 제거해 안전한 분말을 만들 수 있다고 장담했다. 원래 초식동물인 가축에게 억지로 다른 가축의 고기를 먹인 행위는 결과적으로 이들을 동종포식 동물로 만든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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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258 수치스럽게도 사태는 영국 정부의 손을 벗어나 걷잡을 수 없이 치달았다. 유럽은 영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금지했다. 존 메이저는 이 결정에 ‘놀라움’을 표시했지만, 영국 내에서도 쇠고기 판매량은 바닥 모르게 추락했다. 슈퍼마켓에서는 주문을 취소했고, 가축상들은 소의 구매를 중단했으며, 농부들은 하루아침에 키우던 가축을 몽땅 떠안는 신세가 되었다. 먹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알 수 없는 소들이었다. 한 농업저널은 소 한 마리가 “종말이 가까웠도다”란 표지판을 목에 건 한컷 만화를 싣고 “소들의 묵시록!”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들이 식인풍습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 중요한 이유는 유럽인들이 인종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즈텍 문명을 파괴한 스페인 사람들은 자신들이 학살하는 이 야만인들이 인육을 먹는 종족이므로 관용을 베풀 가치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런 생각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아즈텍인들 역시 식인종의 존재를 믿었다. 사실 식인종의 이미지는 그들의 신화적인 삶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들은 남쪽과 북쪽에 사는 인디언을 식인종이라고 생각했다. 식인풍습 같은 짓을 하는 것은 항상 남이다. 코르테스와 병사들이 침입했을 때도 그들은 새로운 식인부족이 자신들을 공격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스페인 사람들과 그토록 처절하게 싸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결국 그들이 옳았다. 그란돌리나에서 발견된 것은 최초의 유럽인 화석이었다. 그때부터 이미 유럽인들은 서로를 잡아먹고 있었다.
--- p.291
조나선의 치료는 레이첼 포버보다 성공적이었다. 펜토산은 프리온 단백질이 악성 단백질로 전환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부위에 결합해 효과를 나타낸다. 자물쇠 구멍에 가짜 열쇠를 미리 꽂아 두어 맞는 열쇠가 있어도 열 수 없게 하는 것과 같다. 그는 알려진 사람 중에 가장 오래 생존한 프리온 질환 환자다. 잘 살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 레이첼 포버가 거짓말 같은 회복과 급격한 악화의 드라마라면, 조나선 심스는 미미한 호전은 있을지 몰라도 가까스로 죽음을 막는 정도라 할 것이다. 혈압이 정상으로 낮아지고, 체중도 회복되었으며, 삼키거나 잠을 자는 능력이 돌아온 것은 사실이다. 치료를 시작한 지 1년 후인 2004년에는 좋아하는 축구팀의 경기 중계를 듣고 텔레비전을 가리키며 “켜” 비슷한 말을 했다고 보도되기도 했다. 다시 사람들을 볼 수 있게 되었지만, 침대에서 돌아눕거나 혼자 힘으로 식사를 할 수는 없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호전에도 불구하고, 스캔상 뇌는 계속 위축되고 있다. “조나선은 안정적이오.” 2005년 CJD 환자 가족회의에서 만난 도널드 심스는 말했다. “우리 애는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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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병의 예후는 비참하지 않다. 만성적일 뿐이다. 나는 걸을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다. 나는 다리 보조기를 착용한다. 위축된 근육에 전기 자극을 주기 위해 작은 변환기를 사용한다. 샤르코가 개발한 기법이다. 그는 썼다. “우리는 근육에 영양을 공급하는 데 전기 자극이 가장 좋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안다.” 나는 크레아틴이라는 아미노산보충제 분말을 복용한다. 폰 리비히 남작의 발명품이다. 나는 내가 처한 상황에 익숙하다. 무엇에든 익숙해질 시간이 얼마든지 있다는 점에서 참으로 나는 프리온 질환에 걸린 어떤 사람보다 운이 좋다. 진료실을 나설 때, 의사는 1~2년 후 다시 보자고 한다. 나는 때때로 그렇게 한다. 때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때때로 나는 뭔가 더 알아낼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다른 의사를 찾는다. 어쨌든 증거의 부재가 부재의 증거는 아닌 것이다. 언젠가 어디선가 누군가는, 내가 지닌 병이 무엇이든, 치료법을, 최소한 이름이라도, 알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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