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진정 너를 할퀴면서 내가 아프다 소리친 적은 없었던가. 혹은 너의 사랑을 배신이라 이마에 적어놓고 남몰래 서슬 퍼런 독을 키우며 산 것은 아니었을까. 이토록 울혈 진 마음…… 겁내하는 마음…… 그렇게 비겁한 자 되어 마침내 아침이 와도 이렇듯 포대기 속에 숨어 총칼을 껴안고 있어야 하는 마음. ---「배암에 물린 자국」중에서
밤은 파이프오르간 소리를 내며 깊어가고 있었다. 잠시 나는 조기떼 생각을 하고 있었던가. 내 품 안에서 그녀는 죽은 듯 오래오래 소리가 없었다. 저 코발트빛 어둠 속에다 대나무를 꽂고 애타게, 무슨 소리를 들으려 하고 있는 사람처럼. ---「남쪽 계단을 보라」중에서
“사람에겐 모두 감당할 수 있는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야. 그래서 때로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지. 사람이 상처 한번 받지 않고 어떻게 살아가겠어. 다행히 그것도 길들이기에 따라서는 좋은 냄새가 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해. 그 사람의 숨결 속에서 말이야. 과거의 자신을 애써 부인하려고 하지 마. 그때엔 그게 아마도 최선이고 진실이었을 거야.” ---「가족사진첩」중에서
나는 너무 지친 사람들만 만나며 살아왔다. 이제는 몸과 마음이 모두 정갈하고 혼자 있어도 추해지지 않는 그런 사람 곁에 있고 싶다. 나는 너무 상처받은 사람들만 만나왔다. 아니 상처받지 않으면 못 배기는 사람들하고만 술을 마셔왔다. 하지만 상처란 눈에 보이는 그런 게 아닐 것이다. 그건 상처라고 기억되는 것이라기보다는 마음 저 깊은 곳에 숨어 살며 소리없이 영혼을 갉아대고 있는 어떤 짐승의 그림자 같은 것일 게다. ---「사막의 거리, 바다의 거리」중에서
“사막에 백합꽃들이 피고 있어요. 마침내 무도가 시작되려나봐요.” 사막에 피고 있는 백합. 백합이 피고 있는 사막. 나는 눈을 지그시 뜨고 창밖 어둠 속에 눈을 주었다. 눈이 내리고 있는 밤의 사막. 무도가 시작되고 있는 사막. ---「피아노와 백합의 사막」중에서
이 책에 수록된 여섯 편의 단편소설과 두 편의 중편소설은 1994년 봄부터 1995년 봄까지 집중적으로 썼다. (……) 나는 이 시기에 그 화염 같은 열기 속에서 작가로서의 내 운명을 확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후 주기적으로 슬럼프가 찾아왔지만, 지금껏 버텨온 것은 그 ‘화염’에 대한 뿌리칠 수 없는 그리움 때문이었다. 그것이 구심력으로 작용해 내가 소설의 바깥으로 달아나지 못하게 한사코 붙들어주곤 했다. 문장을 바로잡기 위해 전편을 다시 읽어보니, 아날로그 시대의 풍경이 판화처럼 곳곳에 남아 있다. 휴대폰과 인터넷이 상용화되기 전이었으므로 서로 지극히 몸을 움직여야만 가까스로 마음의 주고받음이 가능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는 안 되는 줄 알지만 중편 「피아노와 백합의 사막」과 「지나가는 자의 초상」이 어쩔 수 없이 더 마음에 남는다. 왜냐하면, 사막이 그리우면 결국 사막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이때의 간절함과 간곡함을 되찾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