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도 연습할 때마다 매번 한두 곳을 놓쳐버리는 라흐마니노프의 3번. 그는 정말 악취미를 가진 인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이런데도 도전해 볼 테야 하는 심보로 작곡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특이한 손으로, 피아노 건반의 다음 옥타브 ‘솔’까지 무려 12도를 짚어낼 수 있는, 자신만이 연주할 수 있는 곡을 쓰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그가 미국에 망명해 친구로 지내던 피아니스트 호로비츠가 완벽하게 그 곡을 연주하자, 내 생전 이 곡을 다른 사람이 연주하는 것을 들을 줄은 몰랐다고 하지 않았던가. 따개비처럼 달라붙은 그 곡을 물 흐르듯이 연주하려면 1초에 60번의 날갯짓을 한다는 벌새처럼 손가락이 건반 위에서 날아다녀야 하는 그런 곡이라는 걸 피아노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아픔이 노래가 되는」중에서
산의 침묵, 자연은 침묵의 대화를 나눈다. 내면에 있는 무수한 조각들을 모아 그 모양을 확인하며 가슴 안의 진실을 밝히려 든다. 침묵할수록 더 많은 소리가 들려온다. 밝혀야 할 게 없는데도 압박하는 때가 있다. 침묵의 강이 흐른다. 침묵이 두려울 때가 있다. 히말라야에서 느꼈던 두려움이 그랬었다. 달빛이 산의 등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밤의 고요. 거기서 오는 두려움은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상상할 수 없다. 자연은 자신들만의 언어로 소통한다. 그런 소통을 멈춘 침묵, 그건 두려움과 마주하는 것이었다. 히말라야 14좌 중 여덟 번째로 높다는 마나슬루, 거기서 침묵이 가져오는 고요의 두려움을 느꼈던 기억은 아직도 날을 세워 다가온다.
---「멈춰진 시간의 기억」중에서
우리는 그것을 운명이라 부른다. 운명은 정말 피할 수 없는 것인가? 인생은 그렇게 정해놓은 길을 따라가야만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놓여 있는 철로 위를 달리는 기차와 같은 처지라면 굳이 길을 찾을 고민을 할 일이 없을 거다. 그래도 알고 있는 게 있다면 가는 방향 정도일 거다. 그런 것을 의식이라 한다. 그래 의식이 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별로 없다. 단지 철로 위를 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뿐, 달리 선택할 길은 없다. 엄마와 자신이 살아온 길이 마치 철로 위를 따라가는 것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도, 남편 민수도 다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돌이표가 없는 연주」중에서
오케스트라는 빠르게 연주되었다. 2악장이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같은 현악기의 연주 모습이 확대되었다. 악기를 연주하는 부드러운 손과 현의 섬세한 떨림이 화면에 나타났다가 멀어지면서 ‘프로타콘 F’ 화면으로 바뀌었다. ‘프로타콘 F’에서 이뤄지고 있음을 알리는 영상이었다. 악장은 주요부문만 연주되면서 빠르게 진행되었다. 전달할 이미지 중심이었다. 3악장이 이어졌다. 클라리넷, 바순, 호른 같은 악기들이 노래하듯 안단테로 연주되었다. 화면은 꽃, 새, 폭포, 눈 덮인 산과 같은 자연이 차례로 나타났다. 선명한 색상으로 꽃은 바로 앞에 있는 듯, 새는 금방 날아오르는 듯했다. 폭포의 물방울은 얼굴에 튕겨 오는 것 같은 입체감이었다. 설산은 손이 시린 느낌마저 들었다. 화면은 다시 ‘프로타콘 F’ 안으로 사라졌다. 나는 화면에 잡히는 기자들에 집중했다. 그들은 화면을 보면서 중간중간 눈을 크게 뜨기도 하고, 입을 벌려 놀라움을 표시하는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멀티시대의 초대 방식」중에서
시간을 경매에 내놓을 수 없다는 그들의 말을 다시 생각해 봤다.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직장에 다니는 게 모두 시간 계약이 아닌가. 정규직은 몇 년간의 정해진 기간에 회사를 위해 일하겠다는 것이고, 비정규직은 정해지진 않았지만, 고용주가 시키는 만큼의 시간에 일하겠다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시간을 계약한 것이다. 그러니 시간을 경매에 내놓는다는 게 말이 전혀 안 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회원들은 경매에 내놓겠다는 시간을 아마도 자신들의 시간으로 여겼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경매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하는데 거기다 그들 삶의 시간이 올려진다는 데 기분이 상했을 수도 있었다. 지금까지 열심히 여기까지 왔는데 그렇게 살아온 삶이 지금은 경매에나 부쳐질 정도가 되었나 하는 허탈감이 그날 그렇게 퉁명스럽게 나타났다는 생각이다. 경매라는 게 사실 내놓는다고 모두 팔리는 건 아니다.
---「탁 선생의 경매물」중에서
아침에 일어나자 어제 명자 이야기가 자꾸 떠올랐다. 남편이 일어나면 단단히 따져봐야겠다며 마당으로 내려갔다. 수탉은 여전히 암탉 등에 올라탔다가 내려와서는 암탉의 볏을 쪼아댔다. 순임의 눈에 불이 켜졌다. 이번엔 고무신 대신 빗자루를 들고 내리쳤다. 여전히 비껴갔다. 순임이가 맞힌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이구 이 바보들아, 왜 그러고 있어. 몸뚱이도 주고, 알까지 낳아주는데 그렇게 쪼이면서 말도 못 하냐? 거기다 졸졸 따라다니긴 왜 해. 저놈의 장닭을 내일 당장 내다 팔아야겠다.” 순임이 큰 소리는 안방까지 쩌렁쩌렁했다. 화가 잔뜩 묻은 불평은 수탉이 아니라 남편인 자신한테 하는 것으로 들렸다. 만수는 이불 속으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순임이와 장닭」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