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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물 들었네

풀물 들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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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8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96쪽 | 176g | 135*210*15mm
ISBN13 9791158543709
ISBN10 1158543700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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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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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본질은 고통이다. 고통에 대한 기록이 시이다. 사람은 오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가기도 한다. 우리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지금도 죽어가고 있다. 시는 순간 속에서 영원을 꿈꾸는 것이다. 유한성에 대한 증언으로 세 번째 시집을 묶는다. 이제 강물을 건넜으니 배를 불태울 때다.
---「머리말」중에서

콩나물 김칫국을 새롭게 먹어도
우리는 희한하게 고물이 되어갔다
고물이 고물을 먹어 치우는 배부른 저녁이었다
우리의 저녁은 항상 최후의 만찬이었다
---「1부 ‘만찬’」중에서

왜가리가 한쪽 발로 서있는 이유는
대구역에서 신발 한 짝으로 누워있을
그이를 염려하기 때문일 것이오

신발 잃지 않도록 유념하오
이만 총총
---「1부 ‘겨울 안부’」중에서

한바탕 놀이가 끝나자
베란다 앞마당 목련꽃을 이불 삼아서
졸면서도 두 귀를 쫑긋 세운다
양순이는 죽어서도 귀를 세울런가
목련나무 아래 묻혀서도 경계를 할런가

내가 거실 바닥에 눕자
다가와 얼굴을 핥고 난리다
내 처지를 아는지 양순이는
정성을 다해 내 얼굴을 핥고
나는 양순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뜯긴 화장지처럼 목련이 지는 봄날
죽음이 나와 양순이 곁에서 잠시 놀고 있었다
---「1부 ‘양순이’」중에서

아끼는 마음과는 다르게
아끼는 당신은 너무 일찍 길을 떠났다
아끼는 것은 아깝게 이사 갔다

밥상을 마주하다가
포르릉 떠나가더라도
눈사람처럼 쉽게 녹아내리더라도
아끼는 마음은 당신을 아까워할 것이다
---「2부 ‘아끼다’」중에서

나는 밤새워 일해 땀방울이 되었단다
밥도 안 먹고 아침까지 일한 모양이구나

퉁퉁 눈이 붓고
여러 번 미끄러지면서
아침 지나면 나는 또 일하러 간단다

풀잎의 이마를 쓰다듬어준 후
죽어서도 일하러 간단다

일하러 간 뒤 풀잎 밥상에
눈물 자국 같은 흔적 남아있어도
너희는 울지 말고 밥 먹거라
---「2부 ‘풀잎 밥상’」중에서

새들은 한뎃잠 잔 후
남천나무 붉은 열매를 걸식한다

벌들도 자존심 버리고
벚꽃에게 기대어 종일 빌어먹고
입이 없는 푸석한 흙도
봄비를 덥석덥석 빌어먹는다

내 마음도 진작 빌어먹을 수 있었다면
당신이 건네던 밥그릇을 깨지 않았을 텐데
추운 옥탑방에 살면서도
철근 같은 자존심을 구부릴 수 있었을 텐데
---「4부 ‘빌어먹다’」중에서

그 새는 그림자 한 장 한 장을 이어붙여서
하늘을 영원처럼 날아간 것이다
순간순간을 모아서 영원을 날아간 것이다

한 땀 한 땀 허공에 박음질해서
영원 같은 옷 한 벌 만든 것이다

새가 입은 옷이 빨리 해지는 것은
너무 많은 순간의 옷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4부 ‘새의 옷’」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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