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떠보니 병원이었다. 나는 뼈가 으스러지고 장기가 파열된 채 한 켠에 쓰러져 있었고, 처남댁이 응급차를 불러 병원에 이송했다고 한다. 자살이라는 목적을 이루지 못한 것만큼이나 허망한 일도 없다. 차라리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몸이 아프지는 않을 것을. 죽지도 못하고 몸까지 망가진 상태는 더 절망스러웠다. 그러나 이 모든 괴로움과 난관, 그리고 고통은 다 나에게 꿈이 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꿈이 없었다면, 타피오카도, 에탄올도, 파푸아뉴기니 정부와의 협상도 없었을 것이다. 비록 좌절은 됐지만, 그것은 찬란한 도전이 남긴 영광스러운 흔적들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잃어도 ‘도전하는 나’는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꿈이 시작되는 곳에 난관도 있다」중에서
되돌아보면, 나는 그냥 가만히 있었을 뿐이다.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적도, 은근히 유도한 적도 없다. 하지만 그들은 내 삶에 들어와 도움을 주었다. 그저 ‘우연’이 아니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연만은 아니었다. 마닐라의 쇼핑몰에서 낯선 이와의 대화를 거부했다면, 귀찮다고 생각해 대강 얼버무리며 자리를 피했더라면 만들 수 없는 인연이었다. 내가 그들에게 뭔가를 요청하지도 않았지만, 마음을 닫아 두지도 않았다. “이번에는 나에게 또 어떤 깨달음 주려고 왔느냐!”는 돌발 변수에 대해 마음을 열어두는 자세를 가졌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호기로운 이야기다. 의외의 선택, 새로운 기회, 생각지도 못한 발걸음이 내 인생에서 전혀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방향을 지시해 주었다.
---「마음을 여는 쪽은 나입니다」중에서
내가 홀로 있는 시간을 다루는 방법은 바로 ‘관계 협업’이다. 사실, 관계만큼이나 협업의 기술이 필요한 것도 없다. 행복과 슬픔은 각자에게서 독자적인 방식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관계는 쌍방향이다. 내가 상대방을 위해 주는 마음이 있어야 상대방도 나를 위해줄 수 있으며, 내가 상대방을 미워하기 시작하면 자동적으로 그 사람도 나를 미워한다. 따라서 서로 협력해서 관계를 잘 만들어가려 노력한다면, 외로움이 나에게 범접할 수 없는 든든한 장벽을 쌓을 수 있다. 어딜 가든 협업할 사람을 찾아내고 그를 나의 편으로 만들 수 있다는 믿음, 내가 먼저 다가가서 배려하고 친구로 만들겠다는 자세. 이러한 믿음과 자세는 홀로 있는 시간도 결코 외롭게 느껴지지 않게 한다.
---「외로움, 그 관점의 전환’ 중에서
비즈니스 파트너 중 레바논 사람이 있다. 그 나라 사람들도 한국인들처럼 성격이 급하고 열정적이다. 때로는 ‘끓어 넘친다’고 표현할 정도로 부산스럽기도 하다. 언젠가 그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너의 그 한결같은 태도와 성실함이 좋아. 너랑 일하면 마음이 편해지거든.” 사실 나는 내가 잘 살고자 성실했던 것이지 남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성실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성실함은 나만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것이기도 하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협업에 큰 도움이 된다. 성실함은 실수와 좌절 가운데서도 안정을 되찾아주는 하나의 패턴이다. 그래서 성실함이란 일종의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함께 일하면 마음이 편해지는 이유’ 중에서
내가 경험한 일의 세계는 처음부터 완전히 준비되고, 모든 것이 잘 차려진 후 내가 그것을 선택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지극히 불완전한 상태에서도 할 수 있는 일부터 해나가면서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하는 다이내믹한 세계이다. 일단 일을 시작하면 새로운 기회가 보인다. 무엇을 하든 ‘일단’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런 기회도, 변화도 있을 수 없다. 최소한 자신과 맞는 분야가 있다면 회사 규모는 상관 없다고 본다.내 삶을 되돌아봐도 모든 기회는 ‘현장’에서 생겼다. 내가 건축업을 할 줄은 과거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하루하루 일을 하다 보니 기회의 문이 조금씩 열렸고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일은 마치 하나의 생명체와 같다. 때로는 원하지도 않던 일이 내 삶을 바꾸는 새로운 기회로 다가오고, 거기서 생각지도 못한 인연이 피어나기도 한다.
---「일자리는 나의 변화로부터 온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