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후 나는?
20대의 급격한 다이어트로 요요를 몇 차례 겪은 이후, 나는 한동안 다이어트를 포기하고 살았다. 다이어트를 해야 하겠는데, 내가 아는 방법과 주위에서 선전하는 방법들은 고통스럽고, 그에 비해 효과는 적었다. 30대에 전문의 자격증을 따고 인천에서 처음 병원을 개업했다. 개업의로 생활하면서 갖가지 스트레스로 체중이 80kg을 훌쩍 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는데 갑자기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파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면서도 ‘오늘 진료를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걱정을 하는 동안, ‘아! 이제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몸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살았던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쳤다.
나의 비만 비결은 어릴 때부터 음식을 씹지 않고 빨리 그리고 많이 먹던 습관 때문이었다. 또, 음식이 있을 때 배부르게 먹어야 한다는 음식에 대한 집착이 30대까지 남아 있었다. 인턴과 레지던트 시절, 스트레스를 받으면 ‘먹고 힘내자’는 자기 메시지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면서 먹는 것으로 자신을 위로했다. 그러다 보니 예과 시절보다 체중이 더 늘었다. 아침잠이 많아 매일 아침을 걸렀고, 대신 저녁에 몰아치기로 먹었던 것도 지금 생각하면 결정적인 비만의 원인이었다. 인턴 시절에 힘든 당직을 끝내고 자취집에서 라면 2개에 밥 2공기 말아먹던 것이 지금도 기억난다.
이처럼 대식가였던 나는 다이어트를 진행할 때마다 번번이 식사량을 줄이는 데 실패했다. 먹는 것을 줄여야 한다는 사실을 이성적으로는 잘 알았지만, 나의 뇌에 설정된 포만감 세트 포인트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 당시 나는 포만감이라는 감각에 의존하여 식사량을 결정했고, 빨리 먹는 식습관 때문에 포만감이 오는 시간을 놓쳐서 매번 과식했다. 그럼에도 식곤증을 느끼는 식사량을 나의 정량으로 여겼고, 식곤증을 매우 당연한 식후 반응으로 생각했다.
‘언젠가 뺄 수 있겠지!’라며 미래로 마냥 공을 넘기면서, 언제나 건강할 것으로 생각했다. 개업 후 스트레스가 더욱 쌓여서 과체중으로 무릎과 허리에 무리가 오는 것을 느꼈지만, 나는 애써 ‘그냥 피곤하거니, 잠을 잘 못 잤거니’ 하는 생각을 했다.
허리가 끊어질 것처럼 아팠던 그날, 비로소 꽃다운 20대를 훌쩍 넘겨 30대 중반을 향해 가는 세월의 현실이 냉정하게 느껴졌다. 주마등처럼 허리와 무릎 관절염으로 신세를 한탄하던 할아버지, 할머니 환자들의 모습이 나의 미래와 겹쳐졌다. ‘아! 나도 저렇게 고통받겠구나!’ 하는 생각이 다이어트를 시작한 강한 동기가 되었다. 고통으로 가득 찬 미래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대로 방치하면 더 이상 건강을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았고, 미래의 나에게 너무 큰 부담을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부터 나를 치료해 주자고 결심했다.
어떤 방법을 사용할까 고민했다. 고통스런 기억뿐인 굶거나 적게 먹는 것은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했다. ‘귀차니즘’에 절어 있던 때라 헬스클럽을 끊고서 2~3일 나가고 그 만두기가 일쑤였던 내 모습을 확인하고서, 나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이제부터 시작하는 다이어트는 요요를 만들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1년을 감량기, 1년을 유지기로 보면서 계획을 세웠다. 마침 그때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제니칼’이라는 지방흡수 억제제가 처음 시판되었다. 식사를 1,300~1,400kcal 정도로 계획하고, 지방흡수억제제를 복용하고, 아침저녁으로 동네 3바퀴 운동을 시작해 보기로 정했다. 이 정도면, 내 생활 주기로 볼 때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아니면 다시는 힘들 것 같다는 비장한 마음도 먹었다. 그와 함께 비만에 관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한 주 한 주 내 몸에 나타난 변화가 신기했다. 첫 4주에 80kg의 벽을 무너뜨리니 이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강력한 동기가 되어 나를 이끌었다. 그때 마침, 나에게 강력한 집중거리가 있었다. 싱글로 병원 업무를 마치면 마땅히 할일이 없었던 나는 USMLE(미국의사국사고시)라는 다소 힘든 시험을 뒤늦게 준비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공부라는 집중거리와 삶의 목표가 생겼다. 나의 마음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 열정으로 가득 차 그동안 심심하고 허해서 먹었던 음식들에 대한 집중이 자연스럽게 줄었다.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