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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자 공원국의 유목문명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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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자 공원국의 유목문명 기행

: 신화부터 역사까지, 처음 읽는 유목문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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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8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296쪽 | 448g | 140*210*17mm
ISBN13 9791191766578
ISBN10 1191766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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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지역적으로는 대서양부터 태평양까지, 시간상으로는 고대부터 근대까지, 주제 면으로는 문명 일반부터 유목문명까지 톺아보며 기나긴 기행을 떠날 것이다. 정주문명의 특성과 한계를 이야기할 것이고, 특정 시대의 성과와 한계를 찬미하고 폄훼할 것이다. 유목문명의 잔인함과 관대함을 동시에 이야기할 것이고, 앞으로의 혁신과 전망을 놓고 나름의 의견을 제시할 것이다. 그 끝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위대한 환상’ 대신, 과거 문명의 행적을 바탕으로 실현할 수 있는 ‘작은 환상’을 만드는 것이다.
--- p.23

“하늘과 땅과 모든 살아 있는 것을 떠받치는 이”, 곧 창조자는 서서히 파괴자를 대체한다. 언제나 파괴는 창조 앞에 오고, 창조에 길을 내준다. 유목민은 파괴로 찾아와 창조를 남기고, 다시 맨몸으로 떠난다. 물론 전신 인드라는 전차사이지 기마 전사가 아니다. 그러나 빠르게 움직이는 인드라의 부상과 퇴조는 앞으로 2,000년 이상 이어질 유목민과 정주민의 지난한 갈등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움직이는 이들과 멈춘 이들의 격렬한 갈등과 투쟁 그리고 뒤이은 협상과 융합의 끊임없는 반복 말이다.
--- p.88

나는 러시아의 인류학자 아나톨리 하자노프(Anatoly Khazanov)의 의견을 받아들여 유목사회에 노예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유목사회는 전 집단이 비슷한 노동을 하기에 계급이 잘 분화되지 않는다. 유목생활에 필요한 각종 노동은 성격상 노예가 할 수 없을뿐더러, 초원에서는 노예제를 뒷받침할 감시 기구나 감옥이 없다. 전쟁 포로라 하더라도 대를 거듭하면서 평민으로 바뀐다. 이것은 역사학과 인류학이 거의 공통으로 밝히는 바다. 그러나 헤로도토스는 스키타이의 노예 반란을 기록했다. 무슨 까닭일까.
--- p.109

기억해야 할 바는 한무제가 타자화한 대상은 흉노뿐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이 죽인 적의 수십 배에 달하는 백성을 학살했다. 그에 비하면 진시황의 폭정은 새털처럼 가벼울 정도다. 사서는 “천하 호구의 반이 줄었다”라고 묘사한다. 백성을 철저한 남으로 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많이 죽일 수 있을까.
--- p.131

오래전부터 서구 학자들은 3~4세기 이상 계속된 고온 현상을 유력한 원인으로 보고 연구했다. …… 결론은 338년부터 377년까지 40년 동안, 이 지역에 혹독한 가뭄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곳이 한때 월지가 살았던 초원 언저리다. 훈은 375년 무렵 볼가강을 넘어 동유럽으로 들어갔다. 천산산맥과 알타이산맥 일대의 상황도 그러했다면, 시기상 가뭄은 유목민들의 이동 원인으로 충분히 볼 만하다. 일군의 유목민은 좀더 습한 남쪽으로 향했을 것이고, 그럴 수 없는 이들은 서쪽으로 향했을 것이다. …… 정치적 상황과 자연재해가 얽히고설키며 훈이 서쪽으로 밀려갔다면, 이 무자비한 신의 채찍에게 약간의 연민을 품을 수 있을 듯하다.
--- p.154~155

정복전이 끝나고 반유목민이 문민 통치자로 바뀌는 속도가 적절하지도 창조적이지도 않으면, 그들은 당장 몰락한다. 오호십육국 시절 전진과 북위를 제외한 북방의 수많은 군소 정권이 세워지기 무섭게 사라진 데서 이 법칙의 강고함을 확인할 수 있다. …… 현실에서 정주사회와 유목사회는 선과 악에 고착되지 않고 한계를 극복하며 서로를 끊임없이 배워간다. 그리고 쿠샨왕조와 북위가 그랬듯이, 유목문명의 근원에서 출발한 이들은 가끔 정주문명을 훨씬 뛰어넘는 유연성을 보여주며 인류사에 커다란 자산을 남긴다
--- p.168

(중세에도) 지식은 축적되었고, 사회를 구성하는 몇몇 측면은 분명 발달했다. 하지만 1,000년 이상 인간 사회는 기술적으로 크게 진전하지 못했고, 근본적인 생산력의 한계 때문에 어떤 부분의 발달은 다른 부분의 희생을 요구했다. 그중 특히 발달한 것이 중앙 집권적 통치 기술이었다. 이 기술은 사회의 근간인 생산자와 하층민을 다루는 데 유독 특화되어, 그들을 끊임없이 희생시켰다. 그 결과 서방에서는 마침내 ‘농노(農奴)’가 출현해 강고한 중세가 성립한다. 처음부터 강조했듯이, 문명의 마지막 척도로서 자유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농노의 삶은 문명과 거리가 멀었다.
--- p.171~172

누군가 “칭기즈칸은 위대한가”라고 묻는다면 대답하겠다. 그는 분명 강했지만, 위대한 인간은 아니었다고. 다시 “몽골제국은 위대한가”라고 묻는다면 대답하겠다. 제국은 분명 거대했지만, 제국이 파괴한 것은 그보다 훨씬 컸다고. 제국이 이룬 수많은 성취를 인정하더라도, 그 역사는 길고 거대한 파괴와 그만큼 더디고 어려운 회복의 과정이었다.
--- p.213

카자흐칸국이 러시아(북방)에 존재하던 강고한 농노제 및 우즈베크칸국(남방)에 존재하던 거대한 노예 시장과 선명하게 대비되는 ‘비착취’와 ‘자유’의 특성을 가졌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17세기 이래 차르의 코사크(Cossack) 용병들은 …… 처음부터 부리고 팔 목적으로 공격했지만, 카자흐칸국은 침략을 막기 위해 대응했다는 점이다. 사실 카자흐칸국은 19세기 말까지 절대다수가 가축을 기르는 유목 위주의 사회였으므로 가내 노예는 물론 농노도 필요하지 않았다.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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