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에서 만난 사람은 다들 표정이 좋다. 남탕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여탕은 탈의실에서부터 활기가 넘친다. 아주머니들이 가슴을 내놓은 채 우스갯소리로 흥겨워하는 풍경과 만나면 뜨거운 탕에 몸을 담그기 전부터 온몸이 노글노글 풀린다. 탕 속에도 가지각색 재밌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알몸이 된 사람은 마음도 무방비 상태가 되기 마련이다. 맞선을 본 사연, 매실주 담그는 법, 귀신 본 이야기 등 뭐든 다 나온다. 몇 년 전, 전기탕(저주파 전기가 흐르는 탕으로, 전기 자극으로 몸의 피로를 풀어준다는 속설이 있다. - 옮긴이)에서 만난 할머니가 잊히지 않는다. 그녀의 오빠는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병사였다.
“군대에서는 한 명이 잘못하면 모두가 벌을 받는대. 우리 오빠가 겪은 일인데, 일렬로 서서 손을 잡게 하고는 전기를 흘려보냈다나 봐. 그게 너무 아팠대.” 전기탕에 들어앉아 전기고문 이야기를 듣다니, 묘한 기분이었다.
야스다 고이치 씨와 ‘목욕탕 친구’가 된 건 몇 년 전부터의 일이다. 가끔 만나 동네 목욕탕에 가고 목욕이 끝나면 맥주를 마신다. 차별 반대 운동의 현장에서 분투 중인 야스다 씨와 마시다 보면 아무래도 그쪽으로 화제가 흘러간다. 세상에는 차별을 조장하는 책, 역사를 왜곡하는 책이 넘쳐난다. 심지어 잘 팔린다. 분하다. 어이없다.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녹차하이(일본식 소주에 녹차를 섞은 술 - 옮긴이) 두 번째 잔을 들이킨다.
“혐오를 조장하는 책보다 카나이 씨 책이 훨씬 더 재밌는데.”
“열심히 취재해 만든 작가님 책보다 적당히 짜깁기한 책이 더 팔린다니, 말도 안 돼요.” 이렇게 서로를 위로하지만 어쩐지 책이 팔리지 않아 몽니를 부리는 심정 같기도 하다. 녹차하이 잔에 맺힌 물방울을 손가락으로 훑는다. 가슴 속에서 질타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재미도 있고 팔리는 책을 만들어 맞서면 되잖아!’ 그렇다. 역사수정주의 따위를 걷어차는 재미있는 책을 만들면 된다. 비뚤어져 있을 때가 아니다. 카나이 마키 사마귀가 앞발을 치켜든다.(당랑지부(螳螂之斧)의 사마귀를 본인에 비유한 것. 당랑지부는 사마귀가 앞발을 들고 마차를 멈추려는 데서 유래한 고사성어로, 강한 상대에게 무모하게 덤벼드는 일을 일컫는다. - 옮긴이) 야스다 씨가 웃으며 말한다.
“같이 만들까요?” 둘 다 목욕탕을 좋아하니까 이런저런 탕을 경험해보는 책은 어떨까? 수증기 너머에 있는 역사의 진실을 펼치는 거다. 최고로 기분 좋은 책, 제대로 된 책을 만드는 게 우리의 목표다. 목을 씻고 기다려라, 역사수정주의! 이렇게 카나이 마키와 야스다 고이치는 도끼자루 끝에 목욕 수건을 걸고 길을 떠났다.
---「들어가며」중에서
지글대는 하늘 아래 완만한 오르막을 오른다. 10분 정도 걷자 힌다드 온천으로 들어가는 문에 도착한다. 빽빽한 나무숲 너머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나무 그늘 사이사이 햇빛이 쏟아져 내린다. 계곡물이 흐른다. 수면에 쏟아지는 남국의 강렬한 빛이 현란한 색채의 오아시스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계곡 한편에 온천이 있다. 노천 온천! 계곡에서 솟는 노천탕이다.
--- p.42
이 벤치는 시게 할머니의 고정석이다. 노렌 안쪽에 카운터가 있지만 거기 앉아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매일 이 벤치에 앉아 손님을 맞고, 짧은 수다를 나누고, 목욕비를 받는다. 그리고는 느긋하게 씻고 오라는 말과 함께 안으로 손님을 들여보낸다. 목욕을 마친 손님은 땀이 마를 때까지 다시 또 이 벤치에서 잠시 수다를 떤다. 그런 뒤 “자, 그럼.” 하며 집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시게 할머니와 단골들의 일상적인 풍경이다.
--- p.78
감촉 면에서만 본다면 때밀이와 똑같다. 그러나 원반이 고정되어 있는 탓에 구석구석 때를 밀기 위해서는 상하좌우로 등을 움직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자면 그거다. 에그자일(2001년 데뷔한 일본 남자 아이돌 그룹 - 옮긴이)의 히트곡 「추추 트레인」 도입부에서 멤버들이 단체로 상체를 빙글빙글 돌리는 바로 그 춤. 그걸 혼자서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심지어 배 나온 아저씨가 말이다.
--- p.214~215
“군수 공장 내 운동장에서 이런저런 체조를 하고 해산 명령이 떨어지면 다들 숙소로 흩어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근무하던 제2공장과 제1공장 사람들은 뛸 수가 없었어요. 다른 공장 사람들은 해산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뛰어갔는데 말입니다. 조금만 달려도 기침이 터졌습니다. 기침이 한번 터지면 10분이고 20분이고 멈추지 않았습니다. 폐가 망가졌기 때문입니다.”
--- p.269
국토교통성은 조사를 통해 독이 들어있는 병 11개를 포함, 약 8,000여 개의 맥주병을 현장에서 발견했다. 환경성은 사건이 발생한 이듬해, 그 현장을 구 일본군의 화학 무기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A사안 구역’으로 규정했다. 땅속에 유폐되어 있던 이페리트가 21세기가 되어 다시 등장할 줄이야. 사무카와의 전후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은 채 땅속에 파묻혀 있었던 것이다.
--- p.275
‘오쿠노시마에 첫발을 찍은 그날, 우리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숲처럼 빼곡하던 방대한 수의 독가스 공장 폐허와 잔존물들이었다. 섬에서 평지란 평지는 전부 콘크리트조의 견고한 건축물, 창틀은 죄다 녹슬고 철근은 아무렇게나 삐져나온 섬뜩하고 으스스한 검은 건물들로 점령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바쇼의 하이쿠 ‘여름 잡초여, 무사들의 꿈이 사라진 흔적’ 그대로였다.’
--- p.301
1942년 5월 27일 새벽 4시 반, 일본군은 소지한 적통 모두에 불을 놓아 지하도로 던졌다. 재채기 가스는 공기보다 무겁기 때문에 지하 공간에서 특히 유효했다. 고춧가루와 유황이 뒤섞인 냄새가 지하도를 가득 채웠다. 사람들은 기침과 재채기를 연발했고 호흡 곤란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밖으로 뛰쳐나가려 했지만 입구는 젖은 이불로 틀어막혀 있었다. 해충을 잡는 연막탄을 터트리듯 끔찍스럽게 자행된 그들의 만행... 가스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의 얼굴은 파란색 혹은 자주색을 띄고 있었다.
--- p.328
“그래서 계속 말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피해자로서도, 가해자로서도.” 그는 ‘증언하는 자’의 책임을 자신에게 부과했다. 지금도 요청만 있으면 어디든 달려간다. 그리고 독가스와 전쟁, 그 죄과와 공포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게 저의 임무입니다. 사명이지요.”
--- p.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