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녀
“그렇게 별나고 조숙한 아이는 보다 보다 처음 봐. 방문을 걸어 잠그고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있어.”, “누구들처럼 악쓰고 발버둥 치는 것보다 얼마나 좋으냐. 응석받이로 자라서 온 학교가 들썩거리도록 난리를 부릴 줄 알았더니. 그 아이처럼 제 고집대로 다 하고 자란 애도 없을 테니 말이야.”, “그 애 짐 가방을 열어서 물건들을 정리하다 보니까 나는 죄다 생전처음 보는 것들이더라고. 잘 외투에 어민 외투 하며, 속옷에도 진짜 발랑시엔 레이스가 달려 있어. 언니도 그 애 옷 들 봤잖아. 어떻게 생각해, 언니?”, “꼴불견도 그런 꼴불견이 없지.” 민친 교장이 냉소에 찬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말을 이었다. ---「1장 사라」중에서
“나, 나는, 어, 어, 엄마가, 어, 없어!” 로티는 일단 입을 뗐지만 힘이 많이 빠져 있었다. 사라는 더더욱 차분하게 아이를 바라보았는데 ‘그 마음 나도 안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나도 그래.” 사라가 말했다. 너무나 뜻밖의 말이라 놀라움이 더 컸다. 그리하여 로티는 엉겁결에 다리를 뚝 떨어뜨리고 몸을 한 번 꿈지럭거리더니 가만히 누워 사라를 유심히 보았다. (…) 로티는 다시 한 번 몸을 꿈지럭거리고는 삐죽삐죽 울먹이다가 물었다. “어디 있는데?” 사라는 순간 멈칫했다. 자기 엄마가 하늘나라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두고두고 생각해 보았지만, 자기 생각은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하늘나라에 가셨어. 하지만 난 엄마가 이따금 날 보러 오신다고 믿어. 보이지는 않아도 말이야. 네 엄마도 그러실 거야. 어쩌면 두 분 다 지금 우릴 보고 계신지도 몰라. 이 방에 계실 수도 있어.” ---「4장 로티」중에서
“넌 거지다. 친척도 집도 없고 널 거둬줄 사람도 하나 없는 것 같더구나.” 순간 그 창백하고 홀쭉해진 작은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지만 이번에도 사라는 말이 없었다. 민친 교장이 매섭게 다그쳤다. “도대체 왜 그런 눈으로 빤히 보는 게야? 왜 그렇게 멍청하게 말을 못 알아들어? 세상천지에 달랑 너 혼자고, 내가 자선을 베풀어 여기 계속 있게 허락하지 않는 한 눈곱만큼이라도 널 도와줄 사람 따윈 아무도 없단 말이다.” “압니다.” 사라가 나직이 대답했다. 무엇인가 울컥 치밀어 오르는 걸 꿀떡 삼키는 듯한 목소리로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알아요.” “그 인형.” 민친 교장은 옆 의자에 앉혀 둔 휘황찬란한 생일 선물을 가리키며 소리를 높였다. “그 터무니없고, 얼토당토않게 값비싼 그것 말이다. 그 인형 값은 내 돈으로 치렀다!” 사라가 인형을 앉혀 놓은 의자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건 생애 마지막 인형이에요. 내 생애 마지막 인형.” ---「7장 다이아몬드 광산 뒷이야기」중에서
“그 아이가 날마다 하는 일들을 다 알지요. 언제 나가고 언제 들어오는지, 아이가 느끼는 슬픔과 하찮은 기쁨들, 그리고 추위에 떨고 배고파하는 것까지 모두 압니다. 한밤중까지 혼자 앉아서 책을 읽으며 공부하는 것과 비밀리에 만나는 친구들이 몰래 찾아오면 한결 행복해한다는 것도 알아요. 아이들이 대개 그렇듯이, 아무리 헐벗고 굶주려도 친구들이 찾아오면 깔깔거리기도 하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하지요.”
---「14장 멜기세덱이 보고 들은 것」중에서
“지나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왕 내친김에 마저 하는 게 좋겠어. 내가 언니한테 죽사발이 되는 한이 있어도. 그 아인 똑똑하고 착했어. 그리고 언니가 은혜를 베풀었다면 그게 무엇이든 반드시 보답했을 아이야. 하지만 언닌 그 아이에게 눈곱만큼도 은혜를 베풀지 않았지. 입을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랬다고, 언니가 감당하기엔 그 아이가 너무 똑똑했어. 언니가 그 아일 늘 눈꼴사나워한 것도 다 그것 때문이잖아. 걘 언니나 내 속을 다 꿰뚫어 보곤 했으니까…….”
---「18장 공주처럼 행동하려고 애썼을 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