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치는 임금을 속이고 황금 대들보를 얻었으나, 이로 인해 나라에는 금이 동나게 되었다. 대들보를 팔려고 하면 이를 수상하게 여길 것이므로, 운치는 문득 한 가지 계교를 생각해냈다. 운치가 대들보의 머리를 베어가지고 성안으로 들어가 팔려고 하자, 마침 포교捕校, 포도부장가 보고는 의심하여 물었다.
“이 금은 어디서 났으며, 값은 얼마나 하느냐?”
운치가 대답했다.
“이 금은 출처가 있으며, 값은 오백 금이오.”
이에 그 포교가 말하기를,
“그대 집을 알려주면 내가 내일 돈을 가지고 가겠다”
하니, 운치가 대답했다.
“우리 집은 송악산 남서부에 있으며, 내 이름은 전운치라 하오.”
포교가 운치와 약속한 후 관가에 이 사실을 고하자 태수가 말하기를,
“이는 반드시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이니, 이를 자세히 알아본 후에 그놈을 사로잡는 것이 좋으리라”하고 우선 은자銀子, 은돈 오백 냥을 주어 대들보를 사오라고 했다. 포교가 즉시 남서부로 가 운치에게 은자를 주니, 운치는 은자를 받고 금을 주었다. 포교가 금을 받아가지고 돌아와 태수에게 고하니, 태수가 이를 보고 크게 놀라며 말했다.
“이 금은 대들보의 머리가 분명하니, 우선 잡아다가 그 진위를 알아보고 임금께 장계狀啓, 왕명을 받고 지방에 나가 있는 신하가 중요한 일을 왕에게 보고하던 일 또는 그 문서를 올릴 것이로다.”
태수가 장교 십여 명과 포교 등을 보내니, 장교 등이 남서부에 가서 운치를 잡으려 했다. 운치는 이들에게 음식을 잘 대접하면서 말했다.
“너희가 수고롭게 왔으나 나는 가지 않을 것이다. 너희 태수의 힘으로는 나를 잡지 못할 것이요, 임금께서 명령을 내리시면 그때 잡혀가겠노라.”
이렇게 말하며 운치가 조금도 움직이지 않자, 장교 등이 감히 손을 대지 못하고 돌아가서 태수에게 이 사실을 고했다. 이에 태수가 크게 놀라 운치를 토벌할 병사 오백 명을 보내 운치의 집을 에워싸고 잡아오라 명하는 한편, 이 사연을 임금께 아뢰었다. 임금께서는 크게 화를 내며 모든 신하들을 불러모아 의논하시고, 운치를 의금부義禁府, 임금의 명령을 받들어 중죄인을 신문하던 관아로 잡아들이라 명령하셨다.
이때 운치는 은자를 얻어 음식을 준비해 어머니께 드리는데, 갑자기 서울에서 운치를 잡아들이라는 명령이 내리니 이를 듣고 곰곰이 계교를 생각했다. 때맞춰 금부도사禁府都事, 의금부에 속하여 중죄인을 신문하는 벼슬와 포교 등이 병사를 거느리고 와 운치의 동정을 살피더니 잡으려고 했다.
운치는 먹물 담는 병을 꺼내놓고 어머니께 말했다.
“어서 이 병으로 들어가십시오.”
부인이 먹병으로 들어가자 운치 또한 그 안으로 들어갔다. 금부도사와 포교 등이 이상하게 여겨, 달려들어 병 주둥이를 단단히 막아 들고서 밤낮으로 달리자, 병 속에서 외치는 소리가 났다.
“내 난리를 피하여 병 속으로 들어왔는데, 누가 주둥이를 막아 숨이 막혀 죽겠으니, 막은 것을 빼라.”
금부도사가 못 들은 척하고 급히 달려 임금 앞에 이르러 운치를 잡은 자초지종을 아뢰니, 임금께서 말씀하셨다.
“운치가 비록 요술을 부린다 하나, 어찌 병 속에 들어갔겠느냐?”
그때 운치가 병 속에서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갑갑하오니 병마개를 빼주소서.”
임금께서는 그제야 운치가 병 안에 들어갔음을 아시고, 조정의 신하들에게 어찌하면 좋을지 물으셨다. 신하들이 아뢰어 말했다.
“이놈의 요술을 예측하기 어려우니 소홀히 다루다가는 도망갈 것입니다.”
이에 임금께서 명령을 내려 가마솥에 기름을 끓이고 먹병을 넣으니, 운치가 병 속에서 외쳐 말했다.
“신의 집이 가난하여 밤낮으로 떨고 지냈는데, 오늘은 더운 곳에 들어와 몸을 녹이니 나라의 은혜가 망극하옵니다.”
아침부터 밤늦도록 끓이니 기름이 다 졸아들었다. 임금께서 병을 깨뜨리라 하시니, 병은 산산조각이 났으되 안에는 아무것도 없고 병 조각마다 달음질하여 임금 앞에 나오며 말했다.
“소신 전운치, 여기 있나이다.”
임금께서 크게 노하여 그 조각들을 몰아 다시 기름에 끓이라 명하셨다. 또한 전운치의 집을 헐어버리고 물을 대어 못으로 만들라 하시며, 운치를 잡아오라 하시니, 대신들이 아뢰었다.
“이 요망한 도적을 잡을 수 없으니, 후환을 덜고자 하시면 사대문에 ‘운치가 스스로 나타나면 죄를 용서해주고 벼슬을 주리라’는 방을 붙이소서. 만일 운치가 스스로 나타나거든 막중한 임무를 맡겨 다시 전하의 뜻을 어김이 있거든 그때 죽이는 것이 마땅할까 하나이다.”
임금께서 그 말이 옳다고 여겨 즉시 사대문에 다음과 같은 방을 붙이게 하셨다.
전운치가 비록 국가에 죄를 지었으나, 그 재주를 아껴 특별히 죄를 용서하고 벼슬을 ? 것이니 어서 스스로 나타나거라. --- 『전우치전』 본문 중에서
역사적 실존 인물인 홍길동과 전우치의 공통점은 사회 혹은 체제 바깥의 인물이라는 점이다. 도적盜賊으로 기록된 홍길동은 물론 도인道人의 삶을 살았던 전우치 또한 사회 혹은 체제의 울타리 안에 편안히 머물 수 없는 그런 인물이었다. 비록 두 작품 사이에 일정한 차이는 있지만, 이런 이들을 허구의 세계로 불러내, 사회 혹은 체제의 문제를 비판한 불온한 소설이 바로 『홍길동전』과 『전우치전』이었던 것이다.
『홍길동전』과 『전우치전』의 불온한 비판은 ‘도술’이라고 하는 환상적 상상에 의해 가능할 수 있었는데, ‘판타지’와 불온한 비판 의식의 절묘한 결합으로 인해 『홍길동전』과 『전우치전』이 우리 소설의 ‘전통’으로 평가받을 수 있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고전 서사 가운데 판타지의 형상 세계를 보여주는 텍스트는 적지 않으나, 판타지가 현실 비판 의식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형상화된 텍스트는 드물다. 그러므로 『홍길동전』과 『전우치전』에서 판타지만을 읽어내서도 안 되며 불온한 비판 의식만을 주목하고 강조해서도 안 된다. 이 둘의 적절하고 절묘한 결합을 통해 우리 소설사에 ‘사회소설’의 전통을 마련한 작품이 『홍길동전』과 『전우치전』인것이다.
--- 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