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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UB ]
한승희 | 가하 | 2013년 10월 1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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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3년 10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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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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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
그녀는 아직까지도 연한 웃음기가 남은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청이 있사옵니다.”
여진과 함께 지내게 해달라는 청을 할 때보다 더욱 결연한 투의 말에 견의 두 눈썹이 꿈틀 하였다.
“이곳을 그만 나갈 수 있도록 허하여주시옵소서.”
“무엇이라?”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던지라 혹여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싶어진 견이 반문하였다. 허나 돌아온 대답은 처음과 다르지 않았다.
“이제 그만 나가도록 해주십사 청을 드리옵니다.”
분기탱천한 견의 미간이 급격히 좁혀들었다.
실로 어처구니 이를 데 없는 말이니! 그녀의 신분이 무엇인가. 바로 공녀. 제 나라에서 상국의 황제께 바쳐온 조공이며 또한 황제께서 나라에 공을 세운 이에게 내리시는 하사품이다. 그러니 사람이 아닌 물건에 불과한 것. 제 스스로 숨을 쉬고 제 손으로 밥을 먹지만 사람이라 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한데 한낱 물품에 불과한 것이 제 분수도 알지 못하고!
“이유가 무엇이냐.”
낮게 묻는 목소리는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제대로 알아들을 수도 없을 정도였다. 오랫동안 그의 곁을 지키며 가까이 모셔온 동후가 지금 이 자리에 있었으면 두려움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물을 때의 견이 얼마나 화가 나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무서워질 수 있는지 직접 목도하여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제 쓸모를 다하지 못하는데 예서 더 머무를 필요가 무에 있겠사옵니까. 하여,”
“하여!”
날카로운 목소리가 재빠르게 말끝을 낚아챘다. 조금 전 제법 유쾌하기까지 했던 기색은 사라지고 삽시간에 파르스름하게 빛나는 달빛보다 더 차가운 기운을 발하고 있었다. 그런 견의 모습에 놀란 소운의 손끝이 자신도 모르게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곧 마음을 다잡고 고개를 들어 그를 주시하였다. 지금이 아니면 두 번 다시 말할 기회를 얻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다시금 용기를 그러모으게 하였다.
“하여……, 그만 이곳을 나가도록 허락해주셨으면 하옵니다.”
“네가 말하는 너의 쓸모라는 게 대관절 무엇이냐?”
그만 말문이 막혔다. 그의 이불속을 덥혀주는 노릇을 하는 것이라고는 죽어도 말할 수 없었다. 소운은 그저 두 눈에 힘을 싣고 입술을 앙다문 채, 금세라도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 그와 맞섰다. 하지만 억지로 가장한 용기를 그가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었다.
“본디 머릿속에 생각이 많은 것들은 겁을 숨기기가 어려운 법이지. 특히나 너처럼 제 주제도 모르면서 무모하기까지 한 것들은 더욱 그러하고.”
분명 자신에게 다가오는 손을 보았는데 다음 순간 거세게 파고드는 입술을 느꼈다. 피하려 몸부림을 쳐보았지만 허리를 단단히 조여 감고 있는 억센 팔은 금방이라도 끊어낼 듯 힘을 주어 당기고 있었고 머리를 움켜쥔 손은 그녀를 더욱 옴짝달싹 못하게 하였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의 잇새에 물린 아랫입술이 거칠게 짓씹히는가 싶더니 뒤이어 안으로 파고든 혀가 난폭하게 입 안 곳곳을 헤집었다. 목구멍까지 닿도록 깊숙이 밀어 넣었다가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거세게 빨아 당기기를 반복하며, 그녀의 입술을 통째로 삼켜버릴 듯 덤벼들었다. 난생처음 딱 한 번 겪었던 입맞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치 과격한 입맞춤에 두려움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빠져 나가려 몇 번이고 몸부림을 쳤지만 애초에 그녀의 작은 몸이 그를 밀어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가 입술을 떼자 두 사람 사이에 명주실처럼 가느다란 길이 이어지다 이내 끊어졌다. 소운은 자신도 모르게 혀를 내밀어 타액으로 범벅이 된 입술을 닦아내다 무의식중에 저지른 짓을 알아차리고 소매를 들어 입술을 문질렀다. 덕분에 거친 입맞춤으로 달아오른 입술은 더욱 붉어져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견의 음심을 자극하였다. 하지만 순진한 그녀는 그 사실을 까맣게 알지 못하였다
“다시 한 번 말해보아라.”
하명하는 말과 묻는 투는 사뭇 달라 예서 그만 멈추라는 의미가 확연하였다. 하지만 소운은 고집을 꺾을 생각이 조금 치도 없었다.
“이곳 정해궁에서 그만 나가고 싶사옵니다.”
방금 전의 입맞춤이 아니었다면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고 한발 물러서 다음 기약하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그의 안에 있는 남자를 대면해버렸으니 더는 그의 손이 닿을 거리에 있을 수 없다는 절박함이 소운으로 하여금 겁조차 잊게 하였다.
“내 그동안 너를 너무 놓아주었구나. 분수도 모르는 당돌한 계집 같으니라고!”
끝까지 청을 거두지 않는 소운에게 견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동후!”
그의 부름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어둠 속에서 동후가 모습을 드러냈다. 두 사람뿐인 줄 알았던 곳에 갑자기 나타난 동후를 보고 미처 놀랄 겨를도 없이 견이 하명하였다.
“이 계집을 끌고 가 제 처소에 가두어라. 따로이 명이 있을 때까지 퇴설당을 벗어나게 해서도 아니 되고 그 안으로 사람을 들여서도 아니 된다. 그 누구라도.”
“예!”
복종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소운은 단단한 손에 결박되다시피 붙들려 처소로 끌려가고 말았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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