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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로운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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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로운 결혼

아이수 | 동아 | 2021년 05월 1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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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5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496쪽 | 580g | 148*210*22mm
ISBN13 9791163024828
ISBN10 1163024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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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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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헤어진 사람이랑 강제로라도 결혼하겠다니 미저리가 따로 없네요. 으…….”
정순조와 임나희는 사귀는 내내 감정의 무게 추가 늘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순조는 그녀를 좋아한 적이 없었다.
아니, 임나희뿐만 아니라 평생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이 없었다. 만나만 달라고 해서 만났고 아무리 만나도 감정이 생기지 않으니 헤어졌다. 그렇게 삭막한 관계였다.
헤어지는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건 그녀의 집착과 독기였다. 반년 동안 다시 만나자고 스토커처럼 구는데도 안 먹히니 지화 그룹 회장이라는 막강한 카드를 들고 나온 상황이었다.
‘처음부터 만나서는 안 됐어.’
지금 와서 후회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마는 그런 후회가 자연스레 따라왔다.
“이대로 결혼하실 겁니까? 회사에 턱시도 배달 와 있을 것 같은데요.”
“젠장.”
잠자코 듣던 순조의 미간에 자연스레 금이 갔다. 턱시도만 배달 오면 다행이지, 임나희가 들고 오는 건 상상도 하기 싫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을 거야. 아직도 날 자기 입맛대로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멍청하기는.”
순조는 이대로 식장에 질질 끌려 들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뜻대로 안 된다고 힘으로 찍어 누르려고 하다니 정순조를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봤다.
상념에 빠진 그의 길고 각진 손가락이 명치 부근을 훑었다. 옷을 입고 있어서 아무 느낌도 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흉터가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욱신거리는 명치를 짚고 있는 사이 눈빛이 한층 더 얼어붙었다.
“……여자가 필요해.”
“예? 제대로 못 들었습니다?”
이해가 갑자기 튀어나온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귀를 긁었다. 그만큼 뜬금없었는데 정작 그 말을 뱉은 순조는 진중한 얼굴로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임나희가 원하는 게 결혼이라잖아.”
“정확히는 대표님을 원하는 거지만, 뭐 그게 그 말이긴 하죠?”
“내가 다른 여자랑 먼저 결혼해 버리면 포기할 수밖에 없겠지.”
“예?”
그게 무슨 미친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는 말이 목 끝까지 치솟았지만, 이해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순조를 가까이서 보좌해 왔고 또 형처럼 여기기도 하는지라 그가 진심으로 하는 소리라는 걸 대번에 알아차렸다.
“그쪽에서 먼저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렸어. 그렇다면 나도 같은 수준으로 응해 줘야지.”
순조의 날카로운 눈빛에 침을 꿀꺽 삼킨 이해는 바로 생각을 전환하고는 턱을 붙잡고 곰곰이 생각했다. 처음에는 미친 소리 같았는데 생각해 볼수록 저쪽의 허를 찌르는 묘수였다.
“확실히 이미 결혼했다고 하면 이혼하고 오라고 하지는 않겠네요. 명색이 지화 그룹 총수 딸인데 이혼남이랑 결혼시킬 수는 없죠.”
“바로 그거야.”
아무리 딸이 예뻐도 체면을 중시하는 지화 그룹에서 이혼남 사위를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그것도 그냥 이혼 경력이 있는 게 아니고 제 딸을 버리고 다른 여자를 선택한 남자였다.
“연기를 같이 해 줄 상대를 찾아야 해.”
사례를 후하게 한다고 하면 혼인신고서에 도장을 찍어 줄 사람 하나쯤은 찾을 수 있을 터였다.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는 세상이다. 장기도 파는데 고작 혼인신고가 대수일까.
“배우 지망생 쪽으로 알아볼까요?”
“너무 노골적이야. 무엇보다 시간이 없어.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검증도 해야 하는데, 이미 결혼 얘기가 나온 상황이니 뭘 해도 늦을 거야.”
“으음.”
이 계획을 무덤까지 가져갈 만큼 입이 무겁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그 와중에 비밀리에 구해야 했다. 만약 임나희나 임 회장에게 얘기가 들어간다면 시도하지 않느니만 못했다. 그러느니 어떻게든 임나희를 설득하는 쪽이 더 나을 것이다. 그쪽도 요원해 보이지만.
순조는 핸드폰의 까만 화면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의기양양한 임나희의 웃음소리를 들을 생각을 하니 속이 들끓고 피가 마르는 듯했다. 차라리 단순한 대학 동창이었을 때가 지금보다 그녀를 향한 감정이 좋았다. 지금은 얼굴 보는 것조차 끔찍할 만큼 질려 버렸으니.
오래 짝사랑해서 그럴까, 임나희는 좋아한다면서도 순조를 발밑에 무릎 꿇리고 싶어 하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순조는 부러질지언정 굽히지는 않는 대쪽 같은 성정이었다.
게다가 자신을 휘두르려고 하는 여자라면 질색을 했다. 사귀는데도 애정이 생기기는커녕 완전히 질려 버렸던 것도 그녀가 제 입맛대로 요리하려 들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돈을 구하지 못하면 죽을 만큼 절박한 사람으로 알아봐. 절대 어디에도 얘기가 새어 나가지 않게 특별히 조심하고.”
“예. 은밀히 찾아보겠습니다.”
시간이 얼마 없고 위험성도 따르는 일이지만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는 이상 순조는 어떻게든 해낼 생각이었다.
“시간은 내가 끌지. 임 회장님을 직접 상대하면 일이 복잡해질 테니 임나희를 공략하는 수밖에.”
그쪽에서만 협박할 수 있는 줄 알았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무엇보다 잘난 아버지 믿고 자신을 어떻게 해 보려고 한 것에 대한 분노도 풀어야 했다.
“대표님께서 직접 상대하시려고요?”
“그래야지. 왜?”
“음…….”
태블릿 PC 위에서 빠르게 움직이던 손가락을 멈춘 이해가 어색하게 웃음 지었다. 지난 반년 동안 순조의 컨디션은 말로 다 못 할 만큼 엉망이었다. 평소 일할 때도 보통이 아닌 상사인데 임나희와 얽힌 날이면 말 한마디 걸기 힘들 정도로 아주 살벌했다.
이해는 앞으로 그 악몽 같은 시간을 또 견딜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그건 제가 좋아하는 형이자 직속 상사인 순조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머리 굴리는 속도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은 그였다. 속된 말로 골통에서 연기가 날 정도로 머리를 굴린 끝에 결심한 듯 결연한 표정을 했다.
“대표님.”
평소와 다른 어조를 기민하게 알아차린 순조의 표정이 단단해졌다. 고심하는 건지 짧으면서도 긴 시간이 흐른 끝에야 이해의 입이 열렸다.
“제가 신용 확실하고 입도 무거운 여자를 한 명 압니다.”
마치 이런 상황이 있을 줄 알고 미리 준비해 둔 것 같은 타이밍에 순조가 눈을 부릅떴다. 너무 완벽히 들어맞아서 오히려 저의가 무엇인지 의심이 들 만큼.
하지만 이 비서는 정순조의 사람이었다. 그 누구보다 빠릿빠릿하고 시키기 전에 알아서 움직이는 그를 곁에 둔 지 어느덧 3년이 흘렀다. 한 사람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하기에는 짧은 시간일지도 몰라도 순조는 이해를, 그리고 자신의 안목을 믿었다.
“그런 사람이 있다고?”
“예. 제가 보증합니다.”
이해의 목소리가 아주 비장했다. 그의 태도만으로도 보통 인연이 아니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다만…… 결혼 얘기에 순순히 응해 줄지 모르겠습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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