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언제나 모호하고, 모호한 채 나를 잠식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사랑이라는 유령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는 기쁘다.
--- 김선오, 산문 「유령과 은박지」 중에서
언젠가는 알겠지, 내 차례가 오겠지,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처럼 사랑의 처분을 기다렸다.
--- 임유영, 산문 「나 홀로 뜰 앞에서」 중에서
창밖에 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는 건 내가 나무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 양안다, 시 「백일몽」 중에서
너는 플라스틱 컵, 깨진 액정, 한쪽뿐인 이어폰, 이면지, 어설픈 맞춤법, 끝물 과일을 사랑한다고 했어. 불완전해서 유일해진 것들만을
--- 이혜미, 시 「원테이크」 중에서
사랑의 미래는 시보다 이르게 도래합니다. 미움도 이겨낼 사랑으로 진창 같은 세계를 환대하겠어요. 아, 비가 내려요.
--- 강혜빈, 산문 「사랑을 발명하는 사람」 중에서
꿈이라는 마음의
길가마다 띄엄띄엄 돌멩이가 받치고 언젠가 먹다 버린 스크류바 빈 봉지가
바래도 예쁜 분홍색으로
--- 신용목, 시 「스크류바 빈 봉지」 중에서
아흔아홉 계단을 내려갔어도 살아서는 내려갈 수 없는 단 하나의 계단이 있어서. 귤 상자를 끌어안고 있어. 두 번 다신 쏟지 않으려고.
--- 안희연, 시 「단차」 중에서
사랑에 대해 말하고, 또 사랑해야만 한다. 내가 사랑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사랑을 통해 내 삶이 어떻게 동력을 얻을 수 있는지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고민해야만 한다.
--- 황인찬, 산문 「사랑 때문에 죽을 수는 없어서」 중에서
없던 문의 손잡이가 생기고
천사들이 달려가는 길이 열리고
천국의 지도를 바꾸고
날씨를 잊고 시간을 뒤바꾸며 생활을 지키는 사랑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 최지은, 산문 「오늘, 연가교」 중에서
내가 살리지 못한 당신
거기서 잘 사세요
남은 마음을 안고
여기서 사는 것은
내 몫입니다
--- 목정원, 시 「끝없는 해안」 중에서
반려인의 그림자에 사는 개처럼. 우리 고양이가 내 옆에 계속 붙어 있었다. 나는 고양이에게 좋은 소식이다. 내가 일어나서 움직이면 고양이에게 좋은 일이 생긴다.
--- 김승일, 산문 「단추」 중에서
나는 당신을 이 겨울처럼 사랑한다. 이 사랑은 내 것이 아님에도 늘 나에게 돌아온다.
--- 송승언, 산문 「아무것도 사랑할 수 없고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는」 중에서
계절이 멈춘 옷을 입고서 보이지 않는 두 팔을 흔들면서. 받고 싶었던 사랑을 오늘의 들판에게 주려고. 바람은 기억이 되어 들판으로 불어온다.
--- 이제니, 시 「영원이 너의 미래를 돌아본다」 중에서
그 사람이 없으면 나와 사랑 둘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는 그런 사이 말입니다.
--- 구현우, 시 「LETTERING」 중에서
꽃밭이 펼쳐졌을 때 왜 나는 나를 바꾸었을까
아름다운 건 내 것이 아니야
어디선가 사랑은 잘못 말하라 했다
다 말하지 말라고도 했다
--- 이규리, 시 「블루 노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