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부정 사건이 터지면, 사람들은 부정행위 관련자들의 탐욕과 부도덕을 비난하며 처벌 강화를 주장한다. 하지만 경영자나 회계사들의 선택과 행위는 기업의 지배구조, 경영 환경, 업계 규범과 관행, 평가·보상체계 등에 의해 좌우된다. 회계부정을 예방하려면, 경영자나 공인회계사들이 왜 비윤리적인 행위를 하게 됐는지, 무엇이 이들에게 자신을 파멸시키는 범죄행위를 하도록 부추겼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산업은행은 자신이 고용한 짧은 임기의 경영자에게 1년 단위로 과도한 실적 목표를 부과하고, 보고받은 실적을 평가해 성과급 등의 보상을 하거나 대표이사 사퇴, 인력·사업 구조조정 등의 제재를 가하는 인센티브 시스템을 적용했다. 전문 경영인에 대해 오직 좋은 실적만 요구하고 보상할 뿐, 정직한 재무 보고와 같은 올바른 결정은 보상하지 않고 오히려 불이익을 받게 했다. 이처럼 지배주주가 경영자에게 좋은 실적을 낼 것만 요구하면서 실적만으로 보상이나 제재를 하는 실적 지상주의, 단기 성과주의는 경영자에게 정직한 보고 등 윤리적인 결정을 단념케 하고 실적 목표 달성에만 매달리게 해 무리한 경영활동을 유발하며, 결국 회계부정을 촉발하게 된다.
회계 감사인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공인회계사들은 ‘재무제표의 적정성 확인이라는 본연의 책무’와 ‘피감 회사의 경영진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수임 실적을 높여야 하는 현실’ 사이에서 항상 윤리적 딜레마에 빠진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감사인 본연의 책무’ 수행이라는 윤리적 행위에 대한 보상은 없으며, 불이익만 돌아온다...여기서도 회계업계와 회계법인의 실적 지상주의가 빈번히 회계사들에게 감사인 본연의 책무를 포기하고 비윤리적인 행위를 선택하게 한다.
대우조선 사태에 대한 회계전문가들의 인식과 태도에서 공인회계사라는 전문직의 책임과 신뢰 문제에 대한 지적은 찾아보기 어렵다...회사가 작성한 재무제표의 적정성을 확인하는 공인회계사가 회계 전문직의 윤리와 책임을 저버리고 회계부정을 묵인·은폐했는데도, 이처럼 회계전문가들이 남 탓을 하고 회계사들의 위법행위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것은 공인회계사라는 전문직 및 공인회계사에 의한 회계감사 제도의 존재 이유를 부인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에 대한 신뢰가 잠식되면 사회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회계업계의 과제는 공인회계사가 그 직업적 책임과 신뢰를 지키는 것이 곧 ‘좋은 비즈니스’(good business)가 되는 여건과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관련 법·제도의 개선도 필요하나, 회계업계의 자기 성찰과 자정 노력이 필수적이다...시장이 원활히 작동하려면 공식적인 규칙뿐 아니라 사회적 규범(social norm)이 있어야 하며, 사회적 규범에 관한 연구를 보면,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규범을 지킬 때 자신도 그렇게 행동한다.
회계투명성이 높아지려면 재무제표를 작성하는 경영자, 재무제표의 적정성을 확인하는 회계사 등 전문가들의 윤리적 기반이 탄탄해져야 한다...비즈니스 윤리는 경영자, 회계사 등 전문가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자질이다.
제도 개선으로 사외이사들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사외이사들의 각성이 필요하다. 사외이사는 먼저 자신의 의무와 책임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인식해야 하며,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과 활동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경영진의 보고와 진술에만 의존하는 ‘수동적’인 사외이사가 되어서는 안 되며...외부감사인의 감사 의견을 ‘무조건’ 신뢰해서도 안 된다.
현대중공업지주의 대우조선 인수는 산업은행이 나서 두 기업 간 경쟁을 제거해 조선업체들의 수익성을 개선하려는 것이다...그러나 경쟁 제거에 의한 업체들의 수익성 개선을 기업결합에 의한 ‘경제적 효율성’(efficiency)이나 ‘경쟁력’(competitiveness)의 향상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그간 조선 3사는 설비, 기술개발, 생산, 수주 등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치열하게 경쟁해왔다. 이런 경쟁 체제를 통해 우리 조선업체들의 경쟁력이 꾸준히 강화됨으로써 세계 최고 수준의 건조 능력을 갖춘 조선업체들이 모두 우리나라에 있게 된 것이다. 대우조선은 조속히 민영화되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경쟁을 오히려 우리 조선업 위기의 원인으로 간주해 경쟁을 인위적으로 제거하는 방식으로 민영화를 추진하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우리 조선업의 경쟁력 약화와 시장지위의 잠식을 초래할 수 있다.
회사가 임원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해 있으면, 임원들은 자신에 대한 배상청구 등이 제기될 때 보험의 보호를 받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환상일 수 있다. 회사가 가입한 보험의 약관에 ‘정황통지’ 조항과 ‘청약의 완전 분리적용’ 조항이 없으면, 막상 보험이 필요해질 때 보험이 없을 수 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