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다. 네살 때 부모와 함께 만주 간도성 화룡현으로 가서 살다가 해방 이듬해인 1946년에 두만강을 건너 귀국했다. 1959년 『현대문학』에 시가 추천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1972년에 첫 시집 『단장(斷章)』을 상재한 이후 『용인 지나는 길에』 『냉이를 캐며』 『엉겅퀴꽃』 『바람 부는 날』 『유사를 바라보며』 『해지기 전의 사랑』 『방울새에게』와 시선집 『달밤』을 간행했다. 제2회 한국문학평론가협회상, 제6회 만해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고문, 민요연구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작가회의 고문으로 있다.
오직 한길을 걸어온 시인 민영! 그러나 이 수사는 결코 상투적으로 만들어낸 찬사가 아니다. 오래전부터 내가 알고 있거니와, 그는 시 한편을 완성하기 위해 언제나 혼신의 힘을 다했다. 낱말을 깎고 글귀를 다듬는 일, 감각의 날을 세워 계절의 변화를 접수하고 시대의 풍경을 주시하는 일, 이 모두가 그에게는 생략될 수 없는 맹렬정진의 세목들이었다. 스물 나이에 그는 그렇게 배웠고 스물다섯 나이에 그런 시인으로 세상에 선을 보이더니, 반세기 훌쩍 넘는 고행의 세월을 더듬어 어느덧 여든 나이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의 가슴은 이 시집이 보여주듯 오히려 더욱 치열하게 진동하고 있다. 다만 때때로 그의 시선은 더 먼 옛날로, 더 깊은 비극 속으로 간다. 그는 북간도 화전 마을의 “장백산 올라가는 멧등길”로 돌아가 “하얗게 피어 있던 백도라지 꽃”(「새벽에 눈을 뜨면」)의 환각을 보고, “예리한 얼음으로 뒤덮인 강물” 앞에서 “이 땅을 다녀간 수많은 순례자들”(「겨울 들판에서」)의 흔적 없는 사라짐을 탄식한다. 그러니, 이 분단과 전쟁의 땅에서 “거칠고 사나운 역사”(「이 가을에」)에 떼밀려 “예측 불허의 바람”(「바람의 길」)처럼 “기댈 곳 없이 떠도는 영혼”(「늦가을 단풍」)으로 살아온 시인에게 어찌 노년의 평화를 빌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염무웅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