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면 아빠에게서는 대체로 ‘짜파게티에 고춧가루를 뿌리면 맛있다’와 비슷한 것을 배워왔던 것 같다. 의미 있는 것을 배우지 않았다는 게 아니다. 인간은 말과 글도 배워야 하고 도덕과 예의범절도 배워야 하지만, 컵라면 뚜껑을 원뿔 모양으로 접어 앞접시 대용으로 쓰는 법도 배워야 하니까 말이다. 아빠는 후자를 가르쳐주는, 실은 가르쳐준다기보다는 그냥 보여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 p.26-27, 「첫째, 라면을 끓이기 전에」 중에서
만약 라면을 끓이는 곳이 우리 집이 아니라서 사용하던 냄비가 없다면? 각기 다른 크기와 모양의 냄비 앞에서도 당황해서는 안 된다. 나는 프라이팬에 끓여 먹은 적도 있다. 프라이팬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라면 꼭, 진라면이나 안성탕면처럼 사각형 형태의 판라면을 사 왔기를 바란다. 이런 라면은 중간의 접힌 부분을 반으로 쪼개 넓게 펼칠 수 있어서 프라이팬에서도 고루 익도록 끓일 수 있다. 결국 라면을 끓이고자 하는 의지가 있고 실제로 물을 끓게만 할 수 있다면, 양은냄비인가 무쇠솥인가, 가스렌지인가 인덕션인가 하는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 p.55, 「넷째, 물을 끓이기에 앞서」 중에서
엄마는 라면을 잘 못 끓인다. 이는 비단 경기도 하남시에 거주 중인 우리 엄마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조금 풀어 설명하자면 자식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싶고, 이왕이면 건강한 먹거리를 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라면을 끓이는 데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건강도 챙기고 싶지만 라면도 먹고 싶다? 그건 너무 큰 욕심이며, 욕심은 일을 그르치게 마련이다. 이 경우에는 맛을 그르친다.
--- p.95, 「일곱째, 비빔면과 기타 등등의 경우」 중에서
결론적으로 에어프라이어는 나의 식습관을 바꿨다. 나는 음식을 볼 때 구울 수 있는지부터 확인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여러 레시피를 참고해서 다양한 과자를 굽고, 식었다고 느껴지는 모든 음식을 기계 속으로 넣으며 부활을 꿈꾸곤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대부분의 음식이 20분 이내에 살아났다. 어쩜, 구세주 같기도 하지. 하지만 그런 에어프라이어가 해내지 못하는 단 하나가 있었으니, 그것은 라면을 끓이는 일이었다.
--- p.107-108, 「여덟째, 면이 먼저냐 수프가 먼저냐」 중에서
게다가 라면 아닌가. 라면이야말로 커피라든가 술을 만나기 전에 경험하는 ‘1차 어른의 맛’과 비슷한 것일 테니까 말이다. 영양가는 없지만 맛은 있고, 크게 몸에 해로운 건 아니지만 지나치게 자주 먹어서 좋을 건 없는, 그런 음식도 먹으면서 인간은 자라난다. 언제나 이길 수만은 없는 것처럼 오직 좋은 음식, 건강한 음식만 먹으면서 살아갈 수는 없다. 언제까지나 MSG의 맛을 모른 채 살아갈 수도 없다. 가끔 지면서, 쓴맛도 보면서, 새로운 맛도 느끼면서, 그렇게 세상은 넓어진다.
--- p.149-150, 「열한째, 맛있게 먹겠습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