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없는 삶은 너무나 고통스럽다. 평범했던 모든 일상이 멈춰 버렸다. 약에 의지해야만 잠을 자는 생활이 이어지고 있다. 먼저 간 아들에게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남은 가족에게, 또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들어 가슴이 먹먹하다. 더 안타까운 것은 아들의 죽음 후에도 쿠팡물류센터에서 죽음이 멈추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쿠팡은 노동자들의 안전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아들의 산재 신청 전 산재가 아니라고 강하게 부인하더니 산재 판정이 나고서야 ‘노동자들이 안전한 환경 속에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문을 냈다. 하지만 일 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 죽음은 멈추지 않았다. 죽음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돌리고 변명으로 일관하는 모습도 여전하다.
---「박미숙, 故 장덕준 씨의 어머니의 글」중에서
부모는 아들의 결심을 혼자 하는 싸움이라 이해했다. 그래서 버텨보자는 아들을 만류하지 않았다. ‘네 마음이 풀릴 때까지’라는 존중과 더불어 쿠팡이라는 큰 회사의 정직원이라는 기대도 존재했다. 다만 덕준 씨도 그의 부모도, 미처 고려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사람의 몸은 무리하면 아프고, 오래 일하면 병든다는 것을. 쿠팡이 책임지고 싶지 않은 것에 이런 ‘인간적인’ 몸이 있었다. 인간적인 몸이 버티지 못하고 떠난 자리는 새로운 몸으로 채워졌다. 교체 가능한 젊은 몸들이 불황, 경기침체, 실업이라는 이름 앞에 광범위하게 존재했다.
---「희정, 기록노동자의 글」중에서
매해 사상 최대의 매출을 기록하면서도 동시에 엄청난 적자를 기록하는 쿠팡은 시장을 점유하기 위한 투자에는 공격적이었으나, 노동자 안전을 위한 투자에는 공격적이지 못했다. 부천물류센터 집단감염 사태와 덕평물류센터 화재가 발생했고, 이는 안 그래도 개개인에게 최대의 노동력을 요구하는 시스템 속에서 일하는 쿠팡 노동자들에게 더 강한 압박으로 작용했다. 쿠팡의 불안한 성장은 언제까지 가능할까. 덕평물류센터 화재 당시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었던 쿠팡 불매 운동이 지금은 잠잠해졌다고 하지만, 언제 또 이 같은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일이다.
---「이승훈, 〈민중의소리〉 기자의 글」중에서
코로나19를 통과한 한국사회는 코로나19 이전의 삶과는 다른 형태로 회복되고 있는 중이다.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할 뿐더러 다른 의미에서 퇴행적이다. 우리는 코로나19를 통해 드러난 노동과 삶의 불평등, 더 심화된 불평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의 문제 한 복판에 놓여 있다. 그 문제를 풀어내는 하나의 실마리는 ‘위장된 편리함’ 속에 감춰진 야간소비, 야간노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있다.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더라?”라는 주문이 온 사회를 야간노동과 야 간소비에 젖어 들게 하기 전에, 시간을 둘러싼 보다 근본적인 정치적 사유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첫 질문부터 시작하자. 왜 우리는 이토록 밤을 새워 주문버튼을 누르는가.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의 글」중에서
기업은 노동력을 살 때 안전을 절대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의회는 기업이 노동자의 안녕을 보장하도록 하는 입법에 전념해야 한다. 정부는 제대로 된 감독을 통해 법이 제대로 집행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고 기업이 예방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인적, 물적, 시스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시민사회는 전 국민의 반 수인 2,600만 명의 경제활동 인구가 안전하게 한국사회에서 행복하고 안전한 삶을 누리고 있는지 감시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해당사자인 노동자 스스로의 관심과 조직화 노력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의 글」중에서
변화는 가능하다. 자본이 쌓아 올린 성벽에 균열을 내는 것, 우리는 이미 여러 번 야간노동의 굴레를 벗어나는 새로운 사회적 기준을 만들어낸 경험이 있다. 이제는 쿠팡화된 소비패턴, 쿠팡 당해버린 야간 유통·물류 서비스노동자의 삶을 다시 회복할 때이다. 로켓배송, 샛별배송에 익숙해진 라이프스타일을 떨치고, 새로운 길을 내는 노동자 시민의 연대를 기다린다.
---「이희종 서비스연맹 정책실장, 정하나 서비스연맹 정책국장의 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