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객 수의 증가는 시간과 노력을 나눔에 대한 큰 심리적 보상이 된다. 이렇게 소박한 행복을 누리던 내가, 인지하지 못한 채 어떤 실수를 했을 뿐인데, 방문객 수가 바스러지는 건 너무 가혹했다.
쓸쓸한 저품질의 세계를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다. 조심조심 두 번째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기본만 제대로 지켜도 별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배운다. 대체 첫 번째 블로그에서 나는 무슨 실수를 했던가 아직도 아리송하지만, 누구나 처음엔 실수하기 마련이니까 크게 배운 셈 친다. 큰 욕심을 내려놓으면, 한방이라는 헛된 꿈만 버리면 이 세계는 꾸준히 다정하고 한결같이 따뜻할 것이다.
블로그에서 공짜를 바라기보다 크든 작든 가진 것을 나누려는 따뜻한 마음들을 상기해 본다. 받는 사람의 기쁨을 생각하면서 내 마음이 훨씬 즐거웠던 경험이 여러 번이기 때문이다. 이웃의 이벤트를 크게 응원하고 홍보하면서 다른 이웃들에게 기회가 돌아가도록 한발 물러서는 훈훈한 장면도 많이 본다. 욕심내지 않는 것, 받을 때보다 줄 때 더 행복함을 느끼는 것, 이런 마음들엔 가난이 끼어들 틈이 없다. 우리는 나눌수록 부자가 된다.
무엇이든 강제된 마음은 쉽게 지친다. 의무가 되는 순간 즐거움은 무거움이 된다. 견뎌야 하는 의무가 커질수록 보상을 바라는 기대감도 쑥쑥 커진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블로그에 노력을 썼으니, 당연히 달콤한 것이 따라와야 한다고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계획대로 주고받기가 되는 적이 있던가. 생각보다 느린 성장과 기대에 비해 볼품없는 수익에 현타가 제대로 온다. 내가 쏟아붓는 시간과 에너지가 과연 의미가 있나 싶어지면서 열심이던 마음이 시들해진다. 많은 경우 진짜 블로그의 맛, 이웃과의 소통의 즐거움이나 자신의 정보를 통해 도움을 받았다는 사람들의 감사에서 오는 뿌듯함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들이 이때 쉽게 나가떨어진다.
블태기는 평소 꾸준히 유지되던 의욕을 이어 갈 만한 에너지가 바닥났다는 경고다. 나를 좀 더 챙기라고, 내 스트레스 레벨을 점검하라고, 남의 기준 말고 내 기준으로 내 인생을 더 깊게 들여다보라고, 내 인생의 속도를 조절하라고 블로그가 보내주는 신호다. 블태기엔 명약도 비법도 따로 없다. 자연스럽게 내 안에 에너지를 채우고 나를 돌보면 된다. 내 마음을 돌보다 보면 다시 블로그에 무엇인가 끄적이고 싶은 시간이 온다.
그날도 댓글 알람에 설레며 무방비 상태로 창을 열었다. 하지만 글을 읽는 순간 목구멍 끝에 무언가가 무겁게 매달리더니 순식간에 심장까지 뚝 떨어졌다. 빨라진 심장박동이 따라왔다. 이렇게 얻어터진 건 오랜만이다. 그간 맷집을 잃었는가. 분무기로 물을 뿜듯 몸에서 식은땀이 확 분사됐다. 이 사람은 또 뭐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사람이 몇 줄의 글로 나를 정의하고 평가하고 비난하고 갔다.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것도 내가 정성껏 쓴 내 글 아래 말이다. 나는 그저 혼자 남아 얻어터졌다.
얼마 전 한 작가님이 북토크에서 악플러에 대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악한 자들이 부지런해요.”
팍팍한 세상을 사는 무주택자인 나에게도 다정한 이웃이 있다. 매일 서로를 방문하여 일상을 살펴주고 다정한 참견을 건네며 소통을 이어가는 사이.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 일정을 공유하고, 알뜰 쇼핑 소식을 발 빠르게 전하고, 자기만의 요리 비법을 아낌없이 전수해 주는 사이. 속상한 날엔 토닥여주고 기쁜 일엔 나보다 더 기뻐해 주는 사람들. 서로를 향해 응원을 아끼지 않는 이 끈끈한 이웃들을 만난 곳이 바로 블로그 세상이다. 소소한 이벤트를 만들며 서로 응원하고 응모하는 재미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여행을 다녀오면 넉넉히 기념품을 사 와서 나누는 사람들. 온라인 세상에서만큼은 보란 듯이 내 집 한 칸을 지었던 덕분에 만난 이웃들이다. 울타리를 두고 윗집 아랫집 옆집으로 만난 물리적 이웃은 아니지만, 블로그 세상의 우리는 그 어느 현실 이웃들보다 돈독하고 끈끈하다.
밥벌이를 두고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건 오래전부터 계속되었던 시간이었다. 나는 잊고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이렇게 남겨둔 글을 보면 빼도 박도 못하게 된다. 2017년에도, 2018년에도 빡친감 넘치는 시간은 계속되었지만, 이렇게 속풀이를 해가며 버텼는가 보다.
결국 나를 지키는 건 나부터 시작해야 하는 게 사회생활이다. 그렇게 차곡차곡 남기다 보면 쓰면서 한차례 마음이 차분해지거나, 논리적으로 화를 낼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화도 생각을 정리해가면서 내면 더 효과적으로 따질 수 있어서 막강해지는 기분이 든다.
다정이 그립고 연대에 목마르다면, 사람과의 소통이 간절하고 알 수 없는 외로움에 마음이 헛헛하다면 블로그 이웃을 만나보시길. 우리는 온라인상에서도 충분히 인간미가 넘친다.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이웃의 범위는 무한하다. 이 시대를 사는 단군 자손들의 소통과 연대는 국경도 인종도 초월하여 확장된다. 오늘도 나는 나의 이웃들과 형제처럼 잘 지내고 있다.
블로그가 나의 대나무 숲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고 외칠 수 있는 곳이다. 숨겼으나 숨기지 않은 곳. 꽁꽁 숨기는 대신 누구나 읽을 수 있고 참견할 수 있는 곳을 대나무 숲 삼았더니 다양한 응원이 온다.
이웃을 정리할 땐 ‘난 니가 싫어졌어, 우리 이만 헤어져.’라기보다 ‘다른 이웃이 생겼어, 너보다 훨씬 좋은’ 정도의 느낌이다. 더 자주 왕래하고 더 자주 들여다보고 싶은 상대가 나타난 것이다. 블로그 세계의 이웃 관계란 살아 움직여야 유지되는 것이다. 그렇게 진짜 이웃들만 가려 남기다 보면 진짜 돈독한 이웃들이 생긴다.
어느 곳에서든 휴대폰만 있다면 기록할 수 있는 편리성 덕분에 순간의 감정을 주저 없이 쏟아부어 둘 수 있었던 내 블로그. 진솔한 글쓰기의 세상으로 나를 이끌어 준 블로그 덕에 어느 날의 마음은 위로받았고, 어느 날은 반성했으며, 어느 날은 다짐했다. 막연한 생각이나 중얼거림보다 확실하게 글로 쓰다 보니 어떤 문제는 선명하게 답이 보였고, 어떤 흥분은 차분하게 정리되었으며, 어떤 기쁨은 훨씬 충만해졌다.
책이 사람을 부르고 사람이 책을 부르는 건설적인 꼬리잡기가 꾸준히 이루어지는 블로그 세계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꼬리에 붙은 사람이 많아지고, 서로의 블로그를 오가며 더 많은 책과 만나고 있다. 같은 주제를 두고 선한 영향력을 나누는 사이, 깊은 대화가 가능한 사이, 더 다양하게 생각을 편견 없이 나눌 수 있는 사이를 블로그에서 만난다. 어디 책뿐일까. 좋아하는 모든 것에 대하여 다양하게 뻗어나갈 수 있는 꼬리잡기, 블로그에선 얼마든지 가능하다.
블로그의 세계는 자세히 보아야 더 이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인스타그램이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은 화려한 꽃이라면, 블로그의 글은 오래 보아야 예쁜 들꽃이다. 그러니 이웃들의 글에 조금만 더 마음을 담긴 시선을 나누어 주길. 들꽃 안에 담긴 우리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 자연스럽게 진짜 공감이 담긴 하트를 나누고 싶어질 테니까.
부러우면 지는 게 아니라 부럽기만 해서 지는 거다. 부럽고 난 다음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까 이길 재간이 있나. 부러운 마음을 마음으로 끝내기보다 그 선망을 동력 삼아 나도 해낼 수 있다는 생산성을 키우는 게 여러모로 훨씬 이득이다. 블로그에서 공짜로 협찬을 받는 사람들이 부럽다고 말할 때가 아니다. 블로그라도 운영을 하고 있어야 협찬이든 뭐든 받을 게 아닌가.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