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 보면 시간의 신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리스 신들은 3기로 나눈다. 천지창조 전 혼돈의 시대 신들이 원초적 신들이다. 그중 땅을 지배하는 신은 가이아였다. 여신인 가이아가 하늘을 이미지화한 신 우라노스를 만나 12신을 낳는데 이들을 티탄 신족이라 부르며 2기에 속한다. 그런데 우라노스는 자식들 중에 자신의 지배력을 빼앗는 신이 나올 거라는 예언을 믿고 자식을 낳으면 가이아의 자궁에 가두었다. 땅의 자궁이니 아마도 이는 캄캄한 동굴이었을 것이다. 이에 화가 난 가이아는 그의 아들 크로노스에게 칼을 주며 아버지의 성기를 자르라고 명령했다. 크로노스는 어머니의 명령대로 숨어서 기다리다가 우라노스가 가이아와 잠자리를 하려는 순간 그의 성기를 잘라버린다. 이에 하늘과 땅이 구분되어 천지개벽이 되었다. 우라노스는 지배력을 상실했고 크로노스가 신들의 우두머리가 되는데 이때부터 세상은 시간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크로노스가 절대적 시간의 신이 된 것이다. 크로노스는 누이 레아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는다. 이들은 올림포스 12신이 된다. 그런데 가이아는 크로노스에게 부친과 똑같은 운명에 처할 것이라는 예언을 한다. 자신의 절대적인 지배력을 잃고 싶지 않은 크로노스는 자식들을 낳는 대로 집어 삼켜버리고 만다. 시간은 세상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는 의미이다. 이에 레아는 막내 제우스가 태어나자 아기 대신 돌을 강보에 쌓아 크로노스에게 주자 그는 믿고서 단번에 삼켜버렸다.
그래서 살아난 제우스는 성장하여 크로노스를 죽이고 배 안에 있는 형제들을 구출하여 신들의 우두머리가 된다. 크로노스를 죽임으로써 올림포스 신들은 불멸의 시간을 살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에겐 반드시 죽어야 하는 필멸의 시간이 여전히 존재하였다. 이 시간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고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시간이다. 이로부터 생명이 있는 것은 태어나면서 늙고 죽게 되는 운명을 안고 살게 되었다. 제우스의 아들 중에 카이로스라는 신이 있었는데 그는 인간들이 처한 처지를 보고 안타깝게 생각했는지 자신을 알아보고 붙잡는 인간한테만 기회를 주기로 했다. 즉 절대적인 시간의 허무에서 벗어나 상대적으로 시간을 늘릴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런데 그의 모습은 기묘하게 생겼다. 앞머리와 옆머리는 길지만 뒷머리는 대머리였다. 인간에게 항시 나타나지만 함부로 알아볼 수도 없고, 아는 자는 쉽게 붙잡을 수 있도록 했다. 지나치고 나면 붙잡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는 오른손에 칼을 쥐고 왼손에는 저울을 들었다. 그리고 양발에는 날개가 달렸다. 정확하고 빠르게 판단을 하고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순간적으로 날아가 버린다는 뜻이다.
이 ‘카이로스(기회)’를 붙잡은 자는 절대적인 시간 속에서 영원한 자유를 즐길 수 있다. 그걸 카이로스의 시간이라고 한다. 카이로스의 시간을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것이 ‘사랑’과 ‘예술’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은 길어도 언제나 짧다. 그리고 그런 시간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자주 재생하며 아쉬워한다. 황진이가 ‘동짓달 기나긴 밤 한 허리 베여 내고 싶은’ 그 시간이다. 영국과 유럽을 잇는 해저터널이 완공되자 어느 여행사가 ‘런던에서 파리를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 공모를 했다. 당선작은 테제베도 비행기도 아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는 것’이라는 응모작이 뽑혔다. 늘 마음속에 사랑을 품고 사는 사람은 항상 카이로스와 함께하는 사람이다. 그가 있는 곳이 천국이고 무한한 시간을 사는 사람이다. 창작을 위해서 예술인이 겪는 어려움과 고통도, 종교 속에서 구원을 얻는 것도 다 카이로스와 함께하는 시간이다. 지난한 어려움의 과정을 거쳐 남는 예술품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많은 사람에게 카이로스의 시간을 함께하게 한다. 카이로스의 시간을 함께하는 게 비단 사랑과 예술뿐이겠는가? 자신의 일에 즐거움을 가지고 행복을 느끼면 그들은 시간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무엇을 즐길 것인가 생각하자. 시간이 빠르다고 한탄하지 말고 주어진 시간을 철저하게 즐기자. 그래서 새해에도 카이로스와 함께하기를….
---「카이로스의 시간을 위하여」중에서
나는 매년 자유를 찾아 창작여행을 떠난다. 남들에게는 자유를 찾아 떠난다고 말하지만 실은 자발적인 유배이다. 나를 외부로부터 차단하고 가둬 놓아야 비로소 작품에 몰입할 수 있다. 그 시간은 번잡한 세사에서 벗어나 내 자신을 오롯이 창작의 신에게 바치는 번제의 시간이며, 카이로스를 붙잡는 기회의 시간이다. 레지던시 창작실을 찾아다니면서 늘 느끼는 것은 자신을 가두어야 비로소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를 얻을 수 있다는 아이러니다. 마치 승려들이 안거기간 외출을 금하고 좌선하며 수행하듯, 난 글을 쓰기 위하여 창작 집필실을 찾는다. 흔히 운문은 발로 쓰고 산문은 엉덩이로 쓴다는 말이 있다. 의자에 앉아야만 글이 되는데, 집안에 서재가 있어도 간섭을 받거나 참견할 일이 왜 그리 많은지 집중할 수 없어서 글의 진도가 더디다. 그러나 집필실에 다녀오면 결과물들이 생기니 겨우내 작품을 구상하고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 일 년 중 가장 큰 글 농사를 나는 이 기간에 짓고 있다. 많게는 4개월에서 적게는 2개월 반 정도의 기간이다. 이 기간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집필실 운영규정에 따라 정해진다. 그렇다고 가고 싶다고 언제나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신청자가 많으니 심의를 거쳐야 하고 선정되더라도 기간은 협의를 해야 한다. 운이 좋게도 나는 매년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생업을 조퇴하고 이런 창작 집필실을 찾아 유랑한 지도 십 년째다. 그간 다녀온 곳도 인제 만해마을, 마라도 창작스튜디오, 원주 토지문화관, 이천 부악문원, 증평 21세기문학관 등인데 만해마을을 제외하곤 두 번 이상씩 찾았다. 등단한 지 20여 년에 겨우 4권의 작품집을 냈었는데, 전업을 선언하고 집필실을 찾아다니며 7년 동안 한 권의 희곡집과 네 권의 장·단편 소설집을 내고, 1년 동안 인터넷 신문에 웹소설을 연재했다. 오롯이 문학 집필 공간의 덕이다. 그런데 그 집필 공간이 근래에 와서 많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미 마라도 창작스튜디오, 만해마을, 21세기문학관, 청송문학관 집필 공간이 운영이 중지되거나 사라졌다. 사라진 이유는 저마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예전의 지원 금액보다 대폭 감액 지원되면서 적자의 폭을 감당하지 못해 자진 폐쇄한 곳도 있다. 현재의 집필공간도 지원 금액이 턱없이 부족해서 유휴 공간은 있는데도 몰려드는 작가 등을 유치하지 못하거나, 마련해 놓은 문학 프로그램을 수행하지 못하기도 하고, 인건비 등 일반운영비가 부족해서 애로를 겪고 있다고 들었다.
창작집필실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입주 작가를 활용한 프로그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가령 그곳 주민들과 작가들이 함께 어울리며 문학 담론을 펼치거나 문학에 대한 향유욕, 창작욕을 고취하고 전파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든지, 입주 작가들이 입주 기간에 쓴 창작물 일부를 연말에 무크지나 앤솔로지로 묶어서 결과물들을 소중한 자료로 보급하는 것도 하나의 예일 수 있다. 이런 것들이 연말에 창작집필실의 성과를 평가하는 자료로 이용될 수 있다. 레지던시 문학집필공간에 대한 효용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지원금이 확대되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에 지어진 최신 설비의 쾌적한 집필 공간이 폐쇄된 것은 매우 안타깝다. 어떤 곳은 입주 작가들의 음식 문제나 환경 개선 등 무모한 요구 때문에 관리하는 측과의 불화가 있어서 폐쇄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국민의 세금을 지원받아 운영하기 때문에 입주 작가의 요구는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레지던시 사업은 국가 지원금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지원금보다 더 중요한 요건은 운영 주체의 인적 물적 기여와 협찬, 문학 발전을 위한 헌신 봉사의 진심과 성의다.
집필실에 있다 보면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난다. 세대도 20대에서 70대까지, 장르도 다양하나 지나치게 이기적인 사람들이 늘 문제를 일으킨다. 공동체의 규범에 익숙해 있지 않은 사람들 중에는 심지어 집에서 키우던 애완동물을 집필실로 데려 오는 경우도 있고, 이성 작가들에게 추근대며 물의를 일으키거나, 마을 길 남의 집 담장 밖으로 흐드러지게 맺힌 열매를 따다가 술 담그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전업작가를 선언한 이후 발간한 책들에는 이천의 부악문원을 거치면서 쓴 작품들이 많다. 내가 부악문원을 자주 찾는 이유는 입주 작가 대부분이 소설을 쓰는 작가들이어서 각종 정보 교류나 집필 작업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장암리에 위치한 창작집필실은 부아악산(負兒岳山-아이를 업은 산)의 자락에 있다고 해서 부악문원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고즈넉하고 창작의 기운이 넘쳐나는 곳이다. 이곳은 소설가 이문열 선생이 인문학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1998년 1월 사재로 설립한 현대식 서원(書院)이다. 시설은 대지 4628㎡(1400평)에 본관, 사저, 도서실, 강당, 세미나실, 식당, 휴게실 등이 있다. 본관에는 13개의 방이 마련되어 있으며, 매년 1월 전국문인들을 대상으로 입주 작가들을 공개 모집하고, 신청이 많은 경우에 한하여 이들을 심사하여 최장 4개월까지 입주를 허용한다. 1999년부터 국내외 문인이나 예술인들에게 창작집필실을 개방해 왔으며, 2003년부터 입주를 원하는 작가들의 신청을 받아 공식적으로 개방해 왔다.
선정된 입주 작가에게는 하루 세 끼 식사와 개인작업실이 무료로 제공되는데, 조리사 아줌마의 손맛이 뛰어나 주변 음식점에서 사 먹는 것보다 맛있다. 일주일에 한 번 이문열 선생님과 커피 타임을 갖기도 하는데, 선생님이 직접 원두를 갈아 만들어주는 커피 향기도 그윽하지만, 문학 야사에서부터 세계의 역사와 철학, 인문학까지 해박한 지식으로 귀중한 강의가 이어져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강당에는 탁구대가 마련되어 있어 앉아서 생활하는 작가들의 체력단련에도 일조를 한다. 주변에 설봉산이 있는데 부악문원에서 등산로를 따라 백운봉, 청운봉, 부학봉을 거쳐 정상에 오르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왕복 2시간 정도다. 정상에 오르면 아래로 설봉호수가 보이고 멀리 호법평야가 보인다. 정상에 오르기 버거우면 약수터 코스를 이용하기도 하고, 문원 뒤 야산에 오르거나, 언덕을 넘어 사기막골 체력단련장까지 왕복하는 것도 90분 정도면 충분하다. 요즘에는 문원 아래에 인기 있는 카페가 생겨 그 주변을 여러 번 왕복해도 좋다.
입주 작가들은 정해진 식사 시간을 제외하곤 스스로의 시간 계획에 의하여 활동한다. 작가들 중에는 초기 창작교실에 참가하여 문단에 등단하고, 능력을 인정받아 쟁쟁한 문학상을 수상한 중견 작가들도 있고, 청운의 뜻을 품고 소설 공부를 하는 신진 작가들도 있다. 취향이 다르고 관심 분야가 다르지만, 동업자라는 가족적인 분위기 속에서 정보를 교류하면서 작품 창작을 위하여 자기와의 싸움에 분투한다. 외롭고 고된 길을 걷는 작가들이 있어 부악문원은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다. 그런 글쓰기에 천착 매진하는 작가들을 보면 눅진한 내 글쓰기에 자극제가 된다. 창작집필실은 많은 문인, 예술가들과의 인연을 만드는 교류의 장이고 창작의 트랜드와 문단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얻는 좋은 기회의 장이다. 자유로움 속에서 무한 상상력이 펼쳐지는 시간이기에 난, 이 창작 여행을 멈출 수 없다.
---「자발적 유배에서 자유를 찾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