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사람들이 품고 있는 MD라는 개념에 대한 의문이 이 책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나는 패션 브랜드에서 기획MD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당시 수천억 매출을 하던 회사는 MD가 디자이너에서 영업 업무까지 그야말로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시스템이었다. 그 후 몇 번의 이직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어느 회사에서 커리어를 시작하느냐에 따라 MD에 대한 이해수준이 다르다는 것이다. 비즈니스 형태에 따라 MD가 일하는 방법과 일을 대하는 태도도 매우 달랐다. 어느 회사의 MD는 정해진 일만 하는 회사원이었고, 어느 회사의 MD는 스토리와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기획자였다. 자연히 일하는 방법과 태도에 따라 브랜드의 결과물도 차이가 났다.
---「프롤로그」중에서
MD의 일에 관한 질문 중 빠지지 않는 것이, 이 일이 이성적인 업무인지 감성적인 업무인지를 묻는 것이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상품기획을 한다는 점에서 센스와 감각이 필수적일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판매에 관한 일이니 다분히 이성적일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숫자를 많이 다룬다고 하던데, 수학을 잘 못해서요. 제가 MD를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는 감각적인 일을 좋아해서 MD가 되고 싶어요”라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성이나 감성 한 가지로만 가능한 기획이 있을까? 간혹 MD의 성향에 따라 논리와 감각 중 한쪽에 유독 무게를 두기도 하는데, 결코 권할 만한 방식은 아니다. 데이터 분석에 능한 MD가 숫자로만 기획을 했는데 현장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질 때도 있다. 감각적인 성향의 MD가 최신 트렌드만 좇아 기획한 나머지 판매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모든 기획은 논리와 감각, 두 가지 축을 기본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데이터와 감각의 저글링」중에서
일 잘하는 MD는 매출을 잘 내는 사람이지만,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좋은 매출’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매출에는 좋은 매출과 나쁜 매출이 있다. 좋은 매출이 높아질수록 회사의 이익은 커진다. 상품을 구매한 고객은 우리 브랜드의 팬이 되고 브랜드는 장기적으로 더 좋은 브랜드로 성장한다. 나쁜 매출은 반대의 경우다. 매출이 일어날수록 회사는 적자가 되고 고객은 실망해서 브랜드를 떠나게 된다. 매출이 일어나는데 적자가 커진다니, 얼핏 납득이 안 될지도 모르겠다. 나쁜 매출을 이해하려면 좋은 매출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좋은 매출은 ‘바른 구조’로 기획한 상품에서 나온다.
---「좋은 매출 vs. 나쁜 매출」중에서
좋다, 불편하지 않다, 자연스럽다, 디테일이 있다. 이 4가지 감상 표현은 대체로 같은 의미라고 볼 수 있다. 어느 브랜드를 보며 ‘좋다’고 느끼는 것은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는 것,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감정이다. 브랜드를 만드는 입장에서도 자연스러움은 중요하다. 브랜드를 이루는 요소 하나하나가 조화를 이룬다는 얘기니까. ‘그 브랜드답다’는 말에는 정교하게 계산된 디테일이 숨겨져 있다. 디테일은 한눈에 드러나지 않는다. 마치 1000피스짜리 직소퍼즐이 멀리서 봐야 비로소 하나의 그림이 되는 것처럼 디테일이 모여서 브랜드가 되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MD로 일하는 동안 업계의 유능한 리더들로부터 배운 최고의 레슨은 ‘리테일은 디테일’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디테일이 모여 좋은 브랜드가 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리테일은 디테일을 챙기면서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리테일은 디테일이다」중에서
가격과 배송 등에서 첨예한 경쟁이 벌어지던 이커머스도 최근에는 세밀한 상품 기획력이 점점 더 중요한 시장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커머스의 지금 상황을 단적으로 말하자면, 가격경쟁으로 시작해 서비스 경쟁을 거쳐 이제 상품 기획력의 경쟁으로 넘어가는 단계다. 서비스의 상향 평준화로 어디에서 구입하든 기본 조건은 비슷하기에, 결국 고객은 ‘좋은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이동하게 된다. 큐레이션 관점에서 상품을 제안하는 능력이 점점 중요해지는 이유다. 기획전을 구성한다고 가정해보자. 타 경쟁사 기획전 조사, 트렌드에 맞는 컨셉 선정, 적재적소의 상품 구성, 매출 목표와 실행 계획 등을 챙기는 것이 MD의 일이다. 이러한 흐름에 맞춰 최근 오프라인 MD 경력자들이 온라인으로 대거 이동하고 있다. 기획전을 구성하는 데에만 의의를 두는 MD는 설 자리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오프라인 MD vs. 온라인 MD」중에서
고객 입장에서 ‘적당히 좋은 상품’의 특징을 캐치하는 것이 바로 커머셜 센스다.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찾는 고객의 시각으로 브랜드를 바라보고 기획 포인트를 추려내는 감각,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합리적인 커머셜 센스가 필요하다. 그러나 MD의 커머셜 센스가 상품기획으로 끝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실제 판매가 일어나는 상품운영 단계야말로 커머셜 센스가 없으면 곤란하다. 상품이 예상보다 빨리 소진될 경우 리오더를 할지 말지, 입점 브랜드 중 매출이 낮은 매장을 유지할지 말지 등, 매 순간 크고 작은 의사결정을 할 일이 발생한다. 이때 유연한 사고로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커머셜 센스가 요구된다. 여러 각도에서 문제를 뜯어보고 방법을 찾아가는 집요함이랄까, 커머셜 센스는 생각의 중심을 기획하는 자신이 아니라, 상품 너머의 고객, 기획하는 대상에 두어야 발휘되는 동물적 감각일지도 모르겠다.
---「MD의 센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