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엔가, 어느 분으로부터 전화로 들은 이 말씀이 가끔 생각이 난다. 이 말씀,
“선배님, 어떻게 그리 아름답게 사십니까?”
내가 아름답게 못 살 때, 더러 생각이 난다. 내 심중에 있어, 가끔 생각이 나는, 그런 말씀을 하신 이는 어떤 사람일까? 오늘 아침에도 글을 쓰다가 문득 생각이 나더니, 깨달아지는 게 있다.
‘아아 그분이 그렇게 아름답게 사시니까, 내 하찮은 삶도 아름답게 보시는구나…’
누군가의 말에 힘이 있어 상대 마음에 오래 남으려면, 그가 하는 말이 그의 삶 속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삶 속에서 우러나온 말이어야 힘이 있고 상대의 마음에도 남는다. 그가 아름답게 살아낸 삶의 힘이, 그가 하는 말에 담겨져서 내 마음에도 오래 남는다.
---「사람의 말에 힘이 있으려면」중에서
친구 동생(광주)은 올해 맘먹고 김장김치 많이 담가 시댁 식구들 오시라고 해서 점심 대접하고 김치 한 통씩 들려 보내고, 친정 형제자매들이 생각나서 한 통 보냈다. 수육 값까지 … 엄마 김치 아니면 안 먹는다는 친구 딸이 광주 이모 김치 맛보고 하는 말. “엄마 김치보다 더 맛있네, 이모 김치가.” 그 김장김치는 시댁, 친정으로 보내져서, 코로나로 얼어붙은 초겨울(2021)의 찬 마음 녹이는 친선대사 노릇 충분히 하고… 내년엔 솜씨 좋은 광주 동생 집에, 자매들이 다 모여 김장하자는 얘기까지 나오고… 나도 거기 끼어보고 싶지만, 분수를 알아야 할 것 같고. 김장김치 맛은 우리 세대엔 잊을 수 없는 그리운 어머니의 손맛이다. 그리움이 하나씩 사라지는 시대, 누군가에게 그리움 하나라도 만들어 드리면서 살고 싶어진다. 내가 만나는 사람마다의 가슴에 ‘내 온화한 마음 한 줌이라도’ 안겨드린다면… 세월이 지난 어느 훗날, 내 온화함이 그에게 문득 한 조각 그리움이라도 되었으면 하지만.
---「문득 한 조각 그리움이라도 되었으면」중에서
몇 년 전, “박 선생님 꽃밭”에 들렀을 때 보니, 해바라기 화분이 집 안에 있다. 사람들은 만개한 해바라기를 좋아하지, 시들어가는 해바라기는 찾지 않아서 집 안으로 들여놓았다고. 내가 해바라기 꽃 중심인 거무스레한 부분을 유심히 보고 있으니, 박 선생님이 “선생님 이 해바라기 아직 볼만 해요. 갖다가 두고 보실래요?” 망설이다가 자그마한 화분 3개 들고 와서 베란다에 두고 보다가, 시들어서, 말린다. 얼마 뒤, 말린 해바라기를 본다. 검은 해바라기는 사자(死者)의 눈 같다. 꽃보다 무겁고 장중한 미가 있다. 해바라기는 활짝 피었을 때보다 시들어 죽어서 더 말을 하는 것 같다. 고흐가 즐겨 그린 해바라기도 많은 말을 하고. 죽은 해바라기 꽃은 우주의 종말을 말하고 있는 듯… 이 땅 사람들에게 반드시 죽음, 종말이 온다 ─ “있을 때 잘 해” 유행가 가사처럼 죽은 해바라기 꽃은 내게 강력하게 말하는 것 같다.
‘살아 있을 때 구원해, 죽으면 구원할 수 없으니까,’
---「죽은 해바라기 꽃이 말하고 있다」중에서
그날, 화사하게 성장하고 양자 님 만나러 가는데, 내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 ‘나는 지금 새로운 사람에 대한 신비로움으로 가슴이 떨리고 있구나… 오늘 입은 원피스의 우아한 화사함 때문이기도 하고…’ 떨리는 가슴으로 손에 들고 가는 장미 꽃다발을 무심히 본다. 내 가슴 뜨거움에 비하면 꽃들은 시들하고 조용하다. 사람 만나러 가면, 내 마음이 이렇게 새롭게 되는데, 새롭게 되려면 앞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많이 만나러 다녀야겠구나. 걸어 다닐 수 있을 때 많이 만나러 다녀야지, 한 주일에 한 사람만 만나면 1년이면 50인. 그들을 만나면서, 그 동안은 연푸른 연정으로 살 수가 있겠구나. 그리고 한 주일에 한 사람만 집으로 오시게 하면, 또 1년에 50인을 더 만나게 되고… 이렇게 일 년을 사람 만나면서 살면 1년이 봄날같이 지나가겠구나. 사람은 삶이고 사랑. 그래서 사람은 ‘사랑을 살아가는 존재’라고 하지 않은가.
---「사람은, 사랑을 살아가는 존재」중에서
내 방, 청색 소파 한쪽엔 르누아르의 ‘머리 빗는 소녀’ 액자가 놓여 있다. 거실 벽에 있던 걸 소파로 옮겨, 가까이서 늘 본다. 볼 때마다 내가 신선해진다. 고도로 우아한 소녀의 자태, 그 미감(美感) 속으로 내 정서가 잦아든다. 소파 한 구석엔 손녀가 좋아하던 갈색 삽살개 장난감. 애가 장난감 놀이에서 벗어날 무렵, 며느리에게 그걸 달라고 해서 얻어온 것. 장난감 강아지는 일 년 열두 달 계속 나를 정면으로 보고 있다. 지루하다. 며칠 전 그 강아지를 옆으로 보게 앉혔더니, 토라진 듯, 옆모습이 새롭게 귀엽다. 사소한 것이라도 변화는 새로움, 창작의 시작이다. 김장김치, 샐러드 김치로 담그는 것도 내가 일상생활의 변화를 시도해 보는 것.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기도만 말고 성경만 읽지 말고 일어나 살아라. 나가서 예수님 가르침대로 한번 살아봐라! 실수하든 잘못하든 부딪혀 봐라! 움직여라! 내가 책임진다. 생명의 이정표인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7, 80%가 일상생활을 말씀하신다고 한다. 그만큼 일상생활이라는 삶이 중요하기에. ‘사랑은 어마어마한 것 아니고 작은 일에 참는 것.’ 그 작은 일은 곧 내가 매일 사는 사소한 일상 ─ 일상은 같은 것 같으나 섬세하게 다 다르다. 새롭다. 널려 있는 일상을 하나님께 예배하듯, 그런 마음으로 새롭게 살다 보면, 그 삶 속에서 영감을 내려주신다. 영감의 원천이신 창조주 하나님이 영감을 주신다.
---「변화는 내 창작의 시작이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