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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8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158쪽 | 122g | 107*150*20mm
ISBN13 9791192066158
ISBN10 1192066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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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당신은 나를 지나이다 알렉산드로브나라고 불러야 해요. 둘째, 아이들 그러니까 젊은 신사들이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 건 정말 이상해요. 그런 건 다 큰 어른들이나 하는 거죠. 당신, 나를 좋아하죠, 그렇죠?” 그녀가 툭 터놓고 이야기하자 굉장히 기쁘면서도약간 자존심이 상했다. 그녀가 한낱 소년을 상대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최대한 진지한 태도로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물론 당신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지나이다 알렉산드로브나. 그 사실을 감추고 싶지 않습니다.”
--- p.25

아버지는 언제나 자신만의 스타일로 단순하면서도 멋지게 차려입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이보다 우아해 보인 적은 없는 것 같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 곱슬머리에 쓴 회색 모자도 이보다 멋져 보이진 않았다. 나는 지나이다 쪽으로 갔지만 그녀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다시 책을 들고 걸어갔다.
--- p.36

해가 떠오르자 번갯불도 약해지면서 잦아들었다. 번개는 점점 잦아들더니 마침내 떠오르는 태양의 선명한 빛에 잠기고 말았다. 그리고 내 안의 불길도 꺼졌다. 피로와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지만, 지나이다의 얼굴은 내 영혼 앞에 의기양양하게 떠다녔다. 하지만 훨씬 안정되어 보였다. 습지의 수풀에서 날아오르는 백조처럼, 그녀의 얼굴은 주변의 아름답지 않은 것들과 선명히 구분되었다. 나는 잠이 들면서 신뢰가 깃든 흠모를 담아 마지막으로 그녀의 얼굴을 붙잡고 작별 인사를 했다.
--- p.50

“다 똑같아. 모녀가 품위라곤 조금도 없구나.” 어머니가 명령하듯 말했다.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며 시간 낭비하지 말고 그럴 시간에 시험 준비나 해라.” 어머니가 내 공부를 염려하는 건 이런 몇 마디 말이 전부라는 걸 알기 때문에 굳이 대응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식사를 마치자마자 내 어깨를 감싸고 정원으로 데려가서는 자세킨가에서 본 걸 전부 털어놓게 했다.
--- p.52

그녀는 나를 바보 취급하고, 놀리고, 괴롭혔다. 다른 누군가에게 종잡을 수 없고 무책임하지만 위대한 기쁨과 심오한 슬픔의 유일한 근원이 된다는 것은 달콤한 일이다. 나는 지나이다의 손에 놓인 밀랍과도 같았다. 그녀에게 빠진 건 나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집을 방문하는 남자마다 그녀에게 빠져 허우적댔고, 그녀는 그들 모두를 자기 곁에 묶어두었다. 갖가지 희망과 두려움으로 그들을 자극하고, 변덕에따라 그들을 얽히게 하며 즐거워했다. 그녀는 ‘서로 다투게 하기’라고 불렀는데, 다들 저항할 생각조차 않고 기꺼이 순종했다.
--- p.59

때로는 돈스키수도원에서 평온하면서도 서글픈 종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이 광경을 바라보고 종소리를 들으며 기쁨과 환희, 미래에 대한 불안감, 욕망, 삶의 두려움이 혼재된 알 수 없는 감정에 빠져들곤 했다. 그때는 이 모든 걸 이해하지 못했고, 내 안에서 들끓는 이런 감정에 이름을 붙일 수도없었다. 아니, 이 모든 걸 하나의 이름으로 부를 수 있겠다. 지나이다라는 이름으로.
--- p.64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녀가 앞에 서서 나를 바라보는데. 그녀가 바라보기만 하면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녀의 소유가 되어버리는 것을. 15분쯤 지나서 생도와 지나이다랑 셋이서 달리며 술래잡기를 했다.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웃느라 퉁퉁 부은 눈에 눈물이 맺히긴 했지만, 나는 웃었다. 목에는 넥타이 대신 지나이다의 리본을 매고 있었다. 가까스로 그녀의 허리를 붙잡았을 때는 환희의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누군가와 하고 싶었던 걸 나와 함께 한 거였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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