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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묻다

꽃을 묻다

[ 개정증보판 ] 시와서 산문선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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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8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318쪽 | 402g | 125*188*30mm
ISBN13 9791191783032
ISBN10 1191783030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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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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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같이 놀 친구가 없어 외로울 때면, 등불 아래에 쓰루가 감춘 꽃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힘이 솟았다. 그곳에 달려가 꽃을 찾아 헤매는 동안의 희망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었다.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는 안타까움이야 말할 것도 없었고.
---「니이미 난키치_꽃을 묻다」중에서

오랫동안 전깃불을 썼는데, 1년쯤 파리에 살면서 램프라는 것을 처음으로 써보았다. 램프의 불빛은 계절이 물씬 느껴져, 나 같은 변덕쟁이에게도 날마다 밤이 찾아오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그래서 일본에 돌아와서도 시골에서 구해온 홍록색의 종이 등갓이 달린 고풍스러운 램프를 책상 위에 놓고, 그 불빛 아래서 사각사각 펜을 움직이고 있는데, 이것이 너무도 내 마음을 달래준다.
---「하야시 후미코_서늘한 은신처」중에서

봄의 별은 그림자보다 희미하게 하늘을 깁는다. 은은한 달빛은 꽃에 비치고, 촘촘한 가지는 달을 가둔 채 어슴푸레하고, 성긴 가지 하나 달에서 튀어나와 희부연데, 그 풍취, 말로 다 하기 어렵다. 엷은 그림자와 엷은 빛이, 꽃잎이 흩날린 뜰에 떨어져, 땅 위를 걸으니 마치 하늘을 걷는 것만 같다.
---「도쿠토미 로카_화월의 밤」중에서

가만히 서 있으니, 내 옆에 있는 뽕나무 잎과 옥수수 잎이 달빛을 받아 파랗게 빛나고, 종려나무가 사르륵사르륵 달에게 속삭인다. 벌레 소리 가득한 풀을 밟으니, 달그림자가 발부리에 떨어진다. 이슬이 흘러넘친다. 덤불 주변에는 끊임없이 새가 지저귄다. 달빛에 그들이 잠이 들지 못하는 것일 테다.
---「도쿠토미 로카_좋은 밤」중에서

비가 자주 내렸던 것 같다. 너무 자주 내리면 아이들의 마음에도 축축함이 스며든다. 멍하니 격자문에 뺨을 갖다 댄 채, 빗물에 떠다니는 감꽃을 바라본다. 비가 하염없이 내리고, 항아리 모양의 감꽃 여러 송이가 하염없이 떠다니면, 아이들도 하염없이 그걸 바라본다.
---「미야모토 유리코_비와 아이」중에서

괴로웠지만 엄숙했던, 떠들썩하게 빛났던 여름이라는 것이 맥없이 쓰러져간 것을 생각했다. 저물어가는 하늘과 사방의 고요함에 감싸여 있으면, 나는 갇혀버린 듯한, 갈 데 없는 절절한 애수를 느꼈다.
---「구보타 우쓰보_가을의 첫날」중에서

선생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하이쿠의 기법을 배웠을 뿐 아니라, 자연의 아름다움을 나 자신의 눈으로 발견하는 것을 배웠다. 또한 마찬가지로 인간의 마음속의 참된 것과 거짓된 것을 구별하고, 그리하여 참된 것을 사랑하고 거짓된 것을 미워해야 함을 배웠다.
---「데라다 도라히코_나쓰메 소세키 선생의 추억」중에서

그때까지도 살아남은 귀뚜라미가 드디어 그해의 마지막 노래를 끝낼 때,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나뭇잎을 떨어뜨린다. 국화꽃보다 더 빨리 머위꽃이 피고, 차꽃 향기가 난다……..
---「나가이 가후_벌레 소리」중에서

달이 점점 맑아진다. 고구마가 굵어지고 풋콩이 맛있어지면 달도 맑고 환해진다. 잠이 잘 깨는 나는 한밤중에 일어나 달을 바라본다. 지새는 달의 싸늘한 빛이 몸에도 마음에도 스며들어, 추억은 덧없이 펼쳐진다. 덧없는 하늘처럼.
---「다네다 산토카_풀과 벌레 그리고」중에서

글을 팔아서 입에 풀칠을 해도 좋다. 하지만 글을 사는 쪽은 장사꾼이다. 일일이 주문하는 대로 떠맡다가는 배겨 낼 수가 없다. 가난 때문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삼가야 할 것은 글을 함부로 많이 쓰는 것이다. 선생은 그러면서 “자네는 아직 젊으니까 그런 걱정은 안 하겠지. 이건 내가 자네 대신 생각해보면 그렇다는 말일세” 하고 말했다. 나는 지금도 그때 선생이 지은 미소를 기억한다. 어두운 처마 끝에서 살랑거리던 파초 잎도 기억한다. 하지만 선생의 훈계에 충실했다고 단언할 자신은 없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_소세키 산방의 겨울」중에서

인간은 누구나 한번은 죽는다는 것은 모두 다 알고 있지만, 그걸 강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어떤 이는 아직 젊은데도 끊임없이 죽음을 의식해, 오늘밤 잠들면 내일 아침 이대로 죽어 있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밤잠을 못 이루는 때가 있다. 그런가 하면 죽음을 완전히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 자네도 한 번은 죽어, 하고 겁을 줘도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마사오카 시키_사후」중에서

바보같이! …… 보리 낱알 반쯤만 한 벌레 때문에 나는 선량한 소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 그 한 없이 작은 생의 소멸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내 마음을 힘들게 한다. ……
---「고이즈미 야구모_풀종다리」중에서

나는 나 자신의 사후 명성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일을 소홀히 하겠다는 말은 아니다. 일에 온 힘을 다하는 것은, 일이라는 것, 즉 산다는 것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당연한 것으로, 삶이 아니라 사후를 생각하는 사람은 오히려 삶에 대한 전적인 몰입이나 노력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사카구치 안고_나의 장례식」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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