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에서 환자와 인사를 나누고 나면 간호사나 환자로부터 혈압 기록지를 전달받는다. 이때 대부분의 환자가 한 번씩은 하는 말씀이 “밖에서 자동 혈압계로 잰 혈압은 잴 때마다 다르다”는 것. 그러면서 다시 수동 혈압계로 혈압을 측정해달라고 요청하는데, 실은 혈압은 잴 때마다 다른 게 맞다.
--- 「혈압은 왜 잴 때마다 다를까요?」 중에서

중동에서 건설 쪽 일을 하는 50세 알리 씨는 두바이와 협력을 맺을 한국의 심장 병원을 찾기 위해 본원을 방문했다. 마라톤과 수영으로 몸을 관리한다는 그는 체격이 좋고 꽤 건강해 보였다. 그런데 회의 차 모인 자리에서 지나가는 말로 “지난 밤 가슴이 살짝 불편해 뒤척이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다. 본인은 7,000km나 되는 장거리 비행 때문이라 여겼지만, 우리는 그의 말을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이왕 병원에 온 김에 심장초음파검사를 받아보라고 권했고, 그가 흔쾌히 응했다. 내가 검사를 맡았는데 가슴에 탐촉자를 댄 순간 ‘이런 큰일이네’ 하는 생각이 머리를 꽉 채웠다.
--- 「대동맥이 찢어졌다고요?」 중에서

의료 기술의 발달로 우리의 평균 수명이 높아졌다. 그렇다고 무병장수의 꿈이 이뤄진 건 아니다. 오히려 유병장수라는 우스갯소리도 흔한 요즘, 병원을 한 번도 안 다닌 건 자랑이 되지 않는다. 정기적으로 검진받고, 필요한 진료를 받아 내 몸을 적절히 잘 살피고, 적시에 맞는 치료를 받는 게 무엇보다 현명한 시대다.
--- 「이제껏 병 하나 없이 살아왔는데… 심부전이라니?」 중에서

“병원에서는 다 정상이라는데, 나는 왜 아플까요?”
눈물까지 흘리는 환자를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병원을 세 군데나 가느라 서울 한 바퀴를 돌고 우리 병원으로 먼 길 오기까지 버텨준 심장으로 보아, 급사 위험이 있거나 심근경색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환자를 안심시키며 환자의 증상을 통해 하나씩 감별 진단을 해보았다.
--- 「협심증, 사람마다 양상 달라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중에서

환자가 퇴원한 후 1년 동안은 별다른 일이 없다가 한파가 몰아친 12월의 어느 날 새벽, 보호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머니의 한쪽 팔이 움직이지 않아 응급실로 갔고, 거기서 머리 혈관이 막혀 뇌경색이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해당 병원에서 혈전용해술을 해야 한다고 하자, 위험한 시술이라는 말에 걱정이 앞선 보호자가 내게 전화를 건 것이다. 꼭 필요한 시술이라면 서울의 더 큰 병원에서 하면 안 되는지 묻는 보호자에게 나는 절대 움직이지 말라고 답했다. 지금 있는 병원에서 꼭 시술받으라고 거듭 말한 후 그 병원에 있는 후배 교수에게 연락해 심장을 다시 봐달라고 부탁했다.
--- 「심방세동에서 뇌졸중과 편마비까지, 악화일로를 끊는 4시간의 골든타임」 중에서

환자들은 희귀질환이라는 진단을 받는 순간 겁부터 먹는다. 거기에 유전질환이라는 소견까지 들으면 상처와 죄책감이 더해지기도 한다. 유전질환은 돌연변이 유전자를 보유했다고 해서 무조건 발병하는 게 아니라, 생활 습관과 환경 등 여러 요인이 결합돼 발병한다. 게다가 최근에는 희귀 유전질환에 대한 치료 약물이 점차 개발돼 조기에 진단하고 치료하면 예후가 좋고 얼마든지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 「손발끝부터 찾아온 청년의 희귀병, 파브리병」 중에서

문제는 지속적인 출혈이었다. 환자는 항응고제나 항혈소판제 같은 약물을 복용하지 않았다고 했고, 다른 장기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대체 왜 출혈이 멈추지 않았던 걸까? 응급수술 등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수술 전 복용 중인 약물을 확인한 뒤 보조제 등은 끊고 입원하도록 한다. 이 환자에게도 분명 안내했고 복용 중인 약이 없음을 확인했지만 아무래도 미심쩍었다. 지혈제 등으로 겨우 출혈을 잡고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올라온 환자에게 복용한 약물이나 건강기능식품이 있는지 다시 물었다. 이번에도 환자는 절대 아무 약도 안 먹었다고 답했다. 나는 질문을 바꿔보았다.
“환자분, 혹시 크릴 오일 같은 건강기능식품을 드셨나요? 오메가-3는요?”
--- 「크릴 오일과 오메가-3를 먹어도 될까?」 중에서

임신 중 일어나는 생리학적 변화는 심혈관계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보통의 임산부는 비교적 젊고 건강한 여성으로 임신 전까지는 심혈관계에 특별한 이상이 없던 경우가 대부분이라 심혈관계 진찰에 소홀해지기 쉽다. 게다가 대부분의 임산부가 임신기 후반에 접어들수록 피로감과 운동 능력의 감소, 호흡곤란 등을 겪기 때문에 이 환자처럼 심부전 증상을 임신 반응으로 오해하고 진료받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 「임신과 출산, 심장이 견뎌야 할 또 하나의 고비」 중에서

안 좋은 일을 겪었을 때 “심장이 찢어진다” “심장을 도려내듯 아프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심장에 문제가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실제로 큰 스트레스를 받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망가질 수 있다. 스트레스성 심근병증처럼 말이다.
--- 「명절 홧병, 제때 병원 찾아 치료해야」 중에서

그런데 우리 이식팀이 수술 준비를 하던 중 공여자의 뇌파가 아직 남아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공여 가능 여부를 재평가해야 하는 상황. 하루는 더 걸린다는 평가를 기다리던 중 기적 같은 상황이 펼쳐졌다. 환자가 살 운명이었는지, 그간 꼼짝하지 않던 환자의 심장이 그날 밤부터 조금씩 뛰기 시작했다. 다음날 새벽 무렵에는 심장의 움직임이 더욱 나아졌다. 희망을 본 우리 의료진은 장기기증원에 연락해 1순위였던 본원의 차례를 다른 병원에 양보했다.
--- 「하늘이 도운 전격성 심근염 환자」 중에서

심장이식 대기 중인 말기 심부전 환자와 가족은 공여자를 매우 절실하게 기다리겠지만, 다른 고형 장기와는 다르게 뇌사자의 심장만을 이식받을 수 있는 이 수술은 결국 누군가의 죽음이 필연적이다. 수술 대기 환자가 많다 해도 공여자가 많이 생기게 해달라고 감히 원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의료진의 정성과 노력이 몹시 중요하다. 어쩔 수 없이 사고를 당한 뇌사자의 심장을 말기 심부전 환자에게 이식해 반드시 환자를 살려내는 것, 그리하여 고귀한 생명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심장이식팀의 사명이다.
--- 「말기 심부전 환자의 마지막 희망, 심장이식」 중에서

환자는 백신 접종 후에 증상이 나타났다며, 피해보상을 받고 싶으니 질병관리청에 보고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의료진의 생각은 달랐다. 심장을 침범한 아밀로이드증이 강하게 의심돼 심장 조직검사와 피검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환자는 AL 아밀로이드증으로 진단됐으며, 안타깝게도 치료하지 않으면 1년 이상 살기 어려운 4기 단계까지 진행돼 있었다.

<B>“심장병이요? 저 이제 죽는 건가요?”</b><br/><br/>어떤 병이든 확진 받는 순간 놀라고 걱정되기 마련이지만, 특히 심부전을 진단받은 환자들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문제가 있다는 심장이 조만간 멎어 버릴까 두렵고, 치료 과정도 험난해 보인다. 심장 수술은 무조건 가슴을 열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심장이식은 그 과정도 수술도, 이후 관리도 몹시 까다롭다는데 내 몸이 버텨줄까? 아니, 수술을 받을 수나 있을까? 근심과 걱정이 첩첩산중이다. <br/><br/>한편, 고단한 심장이 보내는 신호를 간과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상 범주를 한참 벗어난 혈압, 가빠지는 숨을 비롯해 여러 가지 신호를 대수롭잖게 생각하다가 심장병의 종착역이라는 심부전까지 이르러서야 질환이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 심부전을 진단받고 치료받으며 금연과 금주, 꾸준한 약 복용 등을 다짐했다가 상태가 조금 좋아지면 금방 초심을 잃고 안 좋은 습관으로 돌아가는 환자들도 다수다. 이렇게 과한 걱정과 절망 그리고 무심과 방심 사이에서 병을 더하는 환자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던 한 의사가 책을 펴냈다. 심장내과 전문의로 현재 심장 전문 병원인 인천세종병원의 심장이식센터장을 맡고 있는 김경희 박사다.<br/><br/><B>환자와 의료진의 이야기에서<br/>심부전을 이겨낼 정보와 희망을 얻도록</B><br/><br/>심부전을 극복하려면 전문가의 정확한 진단, 원칙에 따른 치료 그리고 스스로 병을 이겨내려는 노력이 필수이다. 『심부전과 살아가기』는 김경희 박사가 환자와 의료진이 함께 기울어야 할 노력을 글로 풀어낸 책이다.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심부전 인구 또한 점차 늘어나는데 아직 낯선 이 병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노력도 효과적으로 꾸준히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고민에서 시작해 현장에서 만난 환자들의 사례를 토대로 책을 엮었다.<br/><br/>갑자기 심장이 멈춘 15세 소녀, 별 탈 없다고 여겼는데 출산 직후 심부전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한 산모, 자신도 몰랐던 선천성질환으로 쓰러진 건장한 남성, 업무 때문에 병원에 방문했다가 긴급하게 심장 수술을 받은 외국인 손님, 같은 유전질환을 타고났으나 건강 상태는 전혀 다른 형제자매들, 기적적으로 심장이식을 받은 환자와 기적적으로 심장이식 직전에 회복한 환자 등 다양한 환자들의 사연이 심부전의 원인 질환이나 상황에 따라 챕터별로 구분돼 있다. <br/><br/>환자의 사연 속에는 심부전 환자에게 필요한 정보가 녹아있고, 치료법이나 치료 전후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그림과 사진 자료를 덧붙여 환자의 이해를 돕는다. 아울러 혈압 측정 방법과 심장 재활 운동 등의 일상 속 몸 관리법, 코로나19 백신이 심장에 미치는 영향까지 심부전 환자들이 알아 두면 좋을 정보를 꼼꼼하게 챙겼다. 현대 의학은 큰 발전을 이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예전에는 불치병 혹은 난치병이라고 불렸던 병들도 극복할 방법이 늘었다.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거나 혹은 병을 잘 달래 일상을 살 수 있을 정도로 몸을 관리하는 방법도 많다. 김경희 박사와 환자들이 날로 발전하는 의료 기술과 정확한 정보에 기반한 노력으로 심부전을 극복해나가는 이야기를 만나본다면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환자들도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심부전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꼭 알아야 할 정보를 저자의 진료 경험을 토대로 쉽게 풀어냈다. 특히 여성의 심부전에 대한 내용은 흥미롭다.

김경희 박사는 환자를 사랑하는 의사다. 한밤중에도 환자에게 달려가는 일이 많다. 이 책은 저자의 사랑과 헌신 그리고 심부전에 대한 의학 지식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이 책은 심부전 환자들과 함께 만든 ‘심부전 환자들을 위한 안내서’이다. 치료 과정과 의학 지식까지 심부전의 모든 것을 실제 사례를 통해 자세하게 그리고 쉽게 풀어냈다.

‘치료’는 의사와 환자가 함께 이루는 하모니다. 질병에 대한 환자의 이해도가 올라가면 의료진도 힘을 얻는다. 『심부전과 살아가기』는 이러한 면에서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