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집단 안에서도 가스라이팅은 빈번합니다. 특히 리더들은 개성과 개인적 책임을 없애는 일종의 집단사고를 유도하여 가스라이팅하기도 합니다. 단결, 애국심, 리더를 향한 충성심이란 단어를 자꾸 쓴다면, 가스라이팅을 의심해봐야 하는 이유죠. 지난 역사를 보아도 집단사고가 한 나라를 증오와 편견, 다중 살인으로 몰아갔던 사건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스라이팅은 새롭게 생겨난 용어가 아니지만, 지난 몇 년간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단순히 개인적 관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영역, 매체 영역 등 점점 더 그 인식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죠. 다행히 우리가 가스라이팅 시그널과 부작용을 더 잘 알아챌수록 가스라이팅이 미치는 해로움을 능숙하게 제한할 수 있습니다.
--- p.17
가스라이터들이 피해자로 고르는 대상은 주로 상처받기 쉬운 연약함을 지녔거나 호감이 가는 사람입니다. 전자는 타인의 형편없는 태도도 눈감아주며 함께 있으면 편하고 어떤 제안이든 선뜻 동의해주는 사람입니다. 혹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기도 하죠. 공통적으로 ‘가스라이터에게 소리 내어 지적할 가능성이 적은’ 사람들입니다. 후자는 자신감 넘치며 사회적 성공을 거둔, 매력적인 사람들입니다. 가스라이팅을 절대 안 당할 것 같아서 가스라이터의 표적이 될 리 없을 것 같지만, 가스라이터는 이들에게 애정 공세를 퍼부으며 신뢰를 쌓고 어느 정도 친밀감이 쌓이면 바로 가스라이팅을 시작합니다. 그러곤 아주 쉽게 그들의 자존감을 무너뜨리죠.
--- p.40
자기 대화는 말 그대로 나 자신과 나누는 대화입니다. 자기 대화는 스스로에게 다정함과 연민을 전하며 긍정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스스로에게 가혹한 비판을 전하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습니다.
특히나 가스라이팅은 자기 대화가 부정적으로 이어지게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칩니다. 계속해서 자기에게 ‘네 잘못이야’, ‘네가 부족했어’, ‘네가 예민한 거야’라고 말하게 되는 거죠. 이런 부정적 자기 대화를 긍정적으로 전환해야 내가 가스라이팅당하고 있음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고 자기 연민이 가능해집니다.
--- p.65
가스라이팅의 학대에서 살아남은 많은 생존자들은 이후 인간관계에서 확실한 자기주장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아무리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났어도 내 욕구와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아직 머릿속에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내 욕구와 의견을 표현하는 건 나의 정당한 권리입니다.
다음은 미국의 심리학자 마누엘 스미스가 1975년에 발표한 〈A Bill of Assertive Rights(자기주장 권리 장전)〉를 변형해 만든 〈적극적 권리 장전〉입니다. 각 항목을 힘차게 외쳐보세요.
나는 언제든 마음을 바꿀 권리가 있다.
나는 ‘모르겠어’라고 말할 권리가 있다.
나는 ‘나하곤 상관없어’라고 말할 권리가 있다.
나는 누군가를 돕지 않고 동정심만 느낄 권리가 있다.
나는 육체적, 정신적, 감정적 공간을 차지할 권리가 있다.
나는 어떤 상황이든 해로운 관계에서 벗어날 권리가 있다.
(후략)
--- pp.86-87
경계란 사전적인 의미로 ‘둘 사이의 선’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이 선을 설정할까요? 관계에 있어 우리는 나의 개인적 가치를 명확히 함으로써 선을 긋습니다. 내가 무엇이 괜찮고 괜찮지 않은지, 세상 모든 대상에 대해 가치를 판단하면서 경계가 뚜렷해지죠.
인간관계에서 경계는 두 가지 본질을 지닙니다. 하나는 ‘내가 끝내는 지점-타인이 시작하는 지점’이고, 하나는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 p.131
가스라이터들은 경계를 무척이나 싫어합니다. 가스라이팅을 하고 싶은 대상이 경계를 뚜렷이 설정하면 가스라이팅을 하기가 어려워지니까요. 그래서 피해자의 경계 설정을 약하게 만들기 위해 쓰는 무기가 있습니다. 바로 ‘죄책감’입니다.
가스라이터들은 지속적으로 죄책감의 메시지를 보냅니다. 너의 경계로 인해 내가 분노, 슬픔, 원망, 상처, 두려움 등 느꼈다고 하여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만듭니다. 그렇게 피해자가 세운 경계는 무너지게 되죠. 심지어 가스라이팅 치료를 한 후라도 죄책감의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받으면 다시 수동적이던 모습으로 돌아가기 쉽습니다.
그러나 죄책감의 가면 뒤에 숨겨진 진짜 얼굴을 알게 되면, 여러분은 강력한 의문에 휩싸일 것입니다. 이 죄책감이 나에게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가스라이터에게서 비롯된 것인지를 말이죠.
--- p.150
트라우마 치료에서 말하는 자기 관리는 5가지 주요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째는 신체적 자기 관리입니다. 말 그대로 몸을 돌보는 것을 뜻하죠. 적절한 휴식과 영양가 있는 음식 섭취, 충분한 수분 섭취, 몸에 맞는 운동, 질병이나 부상의 치료, 긍정적인 접촉 등의 활동이 포함됩니다.
둘째는 정신적 자기 관리입니다. 정신적 측면을 돌보는 것으로,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문제적인 사고 패턴을 극복하고 바꾸려는 행동, 근거 있는 의견 만들기, 정신노동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기, 좋아하는 방식으로 뇌 사용하기 등의 활동이 포함됩니다.
셋째는 정서적 자기 관리입니다. 마음을 돌보는 것이라 보면 됩니다. 자신의 감정을 살피거나 인정하는 것, 정서적 상처를 치유하는 것, 감정을 건설적으로 표현하는 것, 마음을 충만하게 만드는 것 등입니다.
넷째는 영적 자기 관리입니다. 영혼의 관리를 뜻하죠. 종교적인 신념이나 수행이 포함될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아요. 명상과 마음 챙김, 목적 설정, 확언과 감사를 실천하는 것 등의 행위도 영적 자기 관리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섯째는 관계적 자기 관리입니다. 관계 내에서의 자기 관리를 생각하면 되는데요. 내가 함께 시간을 보낼 대상을 결정하는 것, 연인 관계에서 자신의 개성을 유지하고 애정을 키워나가는 행동이나 반대로 해로운 관계를 단절하는 것 등이 포함됩니다.
--- pp.184-185
가스라이팅 피해자들은 가스라이터에게 늘 도움을 받아왔다는 죄책감에 시달려왔기 때문에, 자기가 누군가를 도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건강한 관계에서는 서로가 서로의 모자란 부분을 채워줍니다. 실질적 도움까지는 못 주더라도 응원하고 지지해주며 힘을 북돋아주죠. 상대를 지지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슬픔에 빠진 사람을 위해 요리를 해주거나 울고 있는 친구를 위해 어깨를 내어주는 것도 좋은 지지 방법이에요. 이런 작은 행동도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될 수 있으니 자신감을 가지도록 하세요.
--- p.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