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화살을 활시위에 걸고는 천천히 잡아당겼다. 움직임은 느렸지만 그만큼 기척도 거의 없었다. 근처에 있어도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은밀한 동작이었다.
꾸우우욱.
그는 활시위를 겨누고는 숨을 죽였다. 기회를 잡기 위한 그의 눈빛이 점점 강렬해지고 있었다.
“한 수를 양보해 주지.”
팽오운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도발적 언사.
하나, 광휘는 전혀 감정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비웃기라도 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한 수 가르쳐 주도록 하지.”
“……!”
팽오운의 눈에서 살기가 짙어졌다.
대화마다 심기를 뒤트는 말투. 거기다 이런 와중에도 너무나 태연한 광휘의 자세가 분노를 치솟게 만든다.
그렇게 두 시선이 허공에서 한참을 얽혀 들어갈 때쯤.
패애애액.
광휘의 신형이 먼저 움직였다.
팽오운은 그런 광휘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도를 세웠다.
“조심하세요!”
“……?”
어디선가 들려온 갑작스러운 외침에, 상대와 반쯤 거리를 좁힌 광휘의 신형이 들썩이며 멈췄다.
“억!”
또다시 사내의 신음이 흘러나오자 광휘가 지붕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 매복해 있던 상대가 어깨를 부여잡은 채 단검을 빼내고 있었다. 그러고는 재빨리 화살을 잡으며 활시위를 겨누었다.
“……!”
광휘의 시선이, 사내가 활시위를 겨누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장련?”
놀랍게도 그곳엔 장련이 있었다.
그녀는 광휘를 쳐다보며 매우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패애애애액.
강렬한 굉음을 내며 화살이 날아갔다.
광휘는 반사적으로 뛰었다. 하나, 화살보다 더 빨리 달리기엔… 거리를 좁히기엔 너무나 멀었다.
“악!”
“소저어어어어!”
--- 「장씨세가 호위무사 제2막 4권」중에서
“자네들을 보조하겠다.”
일령귀가 말을 이었다.
“그럼 난 뒤를 맡지.”
마지막으로 머리카락으로 반쯤 얼굴을 가린 채 침묵하던 사내, 오호귀가 입을 열었다.
“이제 어떡하죠?”
장련은 자신의 치마를 부여잡으며 말했다. 떨리는 모습을 숨기기 위해서였지만 목소리는 이미 떨리고 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소저.”
묵객은 미소를 보이며 장련을 안심시키려 노력했다. 하지만 장련의 떨림은 여전했다.
“적이 너무 많아요. 그리고 강한 자들이에요.”
비록 그녀가 겁에 질렸다고는 하나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묵객과 자신이 동굴에 갇혀 있었을 당시 밖의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을지 대충 짐작이 되는 데다, 적들이 묵객의 존재를 아는 것만 보더라도 저들이 평범한 사내가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모든 것이 팽가의 의도대로 흘러간 것이다.
“알고 있소. 하나, 걱정하지 말라 했던 내 말은 정말 거짓이 아니오.”
“대협…….”
“소저의 눈엔 못 미더워 보이겠지만 사실 말이오…….”
스르릉.
묵객은 단월도를 꺼내며 말을 이었다.
“난 이제껏 이런 싸움에서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소.”
그가 칼을 빼 들자 장련의 눈이 떨렸다. 바위로 인해 몸을 다치지 않았냐는 말을 하려다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지금은 그를 믿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챙. 챙. 챙.
병기를 꺼내 든 그들의 시선이 모두 묵객에게로 향하자 긴장감이 치솟았다. 그때쯤 묵객의 밝은 미소도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신병이기라 불리는 건곤권까지… 쉽지 않겠군.’
이번 싸움은 지금까지의 그 어떤 싸움보다 쉽지 않을 거라 느낀 것이다.
검은 찌르기, 베기, 휘두르기가 자유자재로 가능한 병기다. 세 명이니 세 방향에서 그런 공격이 들어올 것이다. 거기에다 건곤권은 회전하는 병기. 언제 어느 방향에서든 느닷없이 날아와 몸을 베어버릴지 모른다.
만에 하나 장련에게도 날아갈 수 있었다.
‘먼저 공격하는 게 낫겠어.’
묵객은 판단을 내리자마자 그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 「장씨세가 호위무사 제2막 5권」중에서
“사람들을 대피시키십시오!”
“…예?”
“급합니다!”
명호의 말에 장웅은 뜬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세가를 향했던 침공은 성공적으로 물리쳤다. 가장 위험하던 적도 광휘의 손에 모두 명을 달리한 상황. 그런데 갑자기 명호가 얼굴에 긴장을 떠올리고, 이토록 식은땀까지 보이며 말하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단장님께서 충격을 너무 크게 받았습니다. 싸울 줄 모르는 자들은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합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광 대협께서 왜…….”
“주화입마라고 하면 아시겠습니까?”
“……!”
장웅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서벅. 서벅.
술에 취한 듯 느리게, 천천히 걸음을 이쪽으로 옮겨 오는 광휘. 한눈에 보기에도 정기를 잃은, 광인이나 다름없는 얼굴이었다.
장웅은 바닥에 쓰러진 황 노인을 보고 나지막이 신음했다.
“그, 그럼 황 노인 때문에…….”
“시간이 없습니다! 어서!”
명호가 이제는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장웅은 냉수를 뒤집어쓴 듯 퍼뜩 정신을 차렸다.
“모두들! 내원 바깥으로 피하시오!”
“네?”
“이 공자님, 무슨 말씀을…….”
“피하라고! 어서! 내원을 나가서 바깥으로 나가!”
장웅이 급하게 소리 질렀지만 사람들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만 서릴 뿐, 발을 떼는 사람은 적었다.
그들은 조금 전의 장웅과 똑같이, ‘광휘의 활약으로 적을 모두 처리했는데 왜 도망쳐야 하나?’ 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외원의 서문! 서문 바깥으로 집결하세요! 이곳에 적이 던진 폭약이 더 있을지 모른대요.”
한데 그때, 장련이 뜬금없이 소리를 질렀다.
“으헉!”
“헛! 빨리! 빨리 나가!”
우르르르!
또 다른 폭약이란 말에 사람들이 긴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장웅은 이 판국에 기지를 발휘한 그녀를 보고 겨우 한숨을 내쉬었다.
“잘했다.”
“그보다 정말인가요?”
저벅저벅.
흐늘흐늘 무너진 채로 걸어오는 광휘.
어느새 이야기를 전해 들었는지 장련이 입술을 깨물며 명호에게 물었다.
--- 「장씨세가 호위무사 제2막 6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