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라는 스포츠는 우리 삶과 참으로 닮아 있다. 특히 프로야구는 시즌 중 100경기를 훨씬 넘게 치르기 때문에 승리와 패배는 항상 존재하고 선수들 역시 추락과 반등을 거듭하며 한 해를 버텨낸다. 오늘 이겼지만 바로 내일 패할 수 있고 오늘 추락했어도 내일 솟아오를 수 있다. 그렇게 수많은 기쁨과 좌절, 행복과 고통 속에서 묵묵히 결승전까지 결어가는 스포츠가 바로 야구다. 이 오르내림 속에서 전해지는 가장 분명한 메시지는 이것이다. “오늘 이기든 지든 시즌은 계속된다.” 마치 우리의 인생처럼…
돌이켜보면 내가 좋았던 시절에도, 나빴던 순간에도 야구는 항상 내 곁에 있었다. 어린 시절 골목에서 배트를 휘두르던 때에도, 숨 막히는 가난과 암담한 미래로 답답한 가슴을 움켜쥐던 시절에도, 고립무원의 미국 유학 시절에도, 교수와 총장, 국무총리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시절에도 우리 팀이나 내가 응원하는 팀들은 무수히 이기고 졌다. 그러면서 야구는 내 인생사에서 빠뜨리기 어려운 일부가 되어버렸다.
어떤 것이라도 50년 이상 사랑해왔다면 그것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고 말할 자격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저런 자리에서 야구 얘기를 입에 올리다보니 주위에서 야구에 관한 책을 내보라는 권유를 자주 받았다. 그러나 나는 야구를 좋아할 뿐이지 그에 관한 내 지식이나 정보는 변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야구의 역사나 주요 경기, 유명 선수들과 그들의 기록 등에 관한 전문가들도 많고 메이저리그가 열리는 현지에서 그것만 취재하는 야구 기자들도 많다. 더구나 우리 야구나 메이저리그의 역사를 소개한 책들도 많이 출판되어 있는데, 전문가도 아닌 내가 책 하나를 더 얹을 깜냥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기에 늘 겸손을 빙자한 거절을 해왔다.
그러나 야구가 온전히 야구라는 스포츠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과 맞닿아 있는 삶의 기록 중 하나라면 꼭 야구 박사나 전문가가 아니어도 야구 얘기를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어린이들은 물론 여성팬들도 많아져 전국의 야구장이 가득 찬 모습을 보면서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야구에 내 삶의 구비구비를 담아 소개해도 좋겠다는 욕심도 생겼다.
---「야구는 대사가 없는 드라마다」 중에서
1985년 2·12 총선을 통해 제1야당이 된 신민당이 나서서 직선제 개헌을 위한 1000만 명 서명운동에 착수했다. 대통령 직선제를 통해 80년 민주화의 봄을 되찾으려는 국민들이 운동에 동참했다. 고려대와 성균관대, 한신대 교수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서울대만은 아무 움직임이 없이 조용했다. 부끄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총대를 메고 나섰고, 서울대 교수 49명의 서명을 받아 성명서를 발표했다. 접촉한 교수가 250명이 넘었으니 많이 호응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서슬 퍼렇던 시기에 참으로 겁 없는 행동이었다. 파장은 적지 않았다. 전두환 대통령은 서명에 참여한 교수들을 전원 해직시키고 주동자는 엄벌하라고 지시했다. 해직에 엄벌은 이미 예상했던 결과였다. 앞으로 뭘 먹고 살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런 걱정은 나나 서명한 교수만 했던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린 시절 함께 야구를 하며 놀던 친구들도 마음으로 함께 걱정을 했단다. 어디 끌려가서 맞지나 않을까, 조금 비겁하게 보이더라도 가만히 있으면 다치지 않을 텐데 왜 저런 일에 앞장설까, 왜 좀더 현실적이고 현명하게 처신하지 못할까, 대체 그 자그마한 체구에서 그런 용기는 어디서 나왔을까 하는 생각들이었다. 그리고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파울볼에 맞고 졸도를 하고 코가 퉁퉁 부어올랐는데도 끝까지 경기를 하겠다고 나서던 그날의 나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용감함과 대담함. 그날의 야구경기에서 바로 그 모습을 보았다면서. 꿈보다 해몽이 더 좋다는 말이 있다. 나는 나 자신을 용감한 사람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 그렇지만 야구와 연관시켜 나를 높이 평가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파울볼을 향해 달려가다」 중에서
지도교수의 조언대로 한 시간을 나 혼자 야구 이야기로 채웠다. 상대방이 다른 질문을 할 수 없도록. 예상은 적중했다. 담당교수는 한 시간 내내 맞장구를 치거나 고개를 끄덕이다가 인터뷰 시간을 다 보내버리고 말았다. 그는 다음 인터뷰 교수에게 나를 소개하며 미국 문화에 대해 상당히 아는 것 같다는 말도 곁들였다. 이렇게 첫번째 인터뷰를 끝내고 나니 자신이 생겼다. 대여섯 교수와 만난 후 내 박사학위 논문을 놓고 벌이는 세미나는 전혀 부담되지 않았다. 논문을 작성하는 동안 이미 충분히 공부한 전문분야였기 때문이다.
“한두 가지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다른 모든 것에 대해서도 약간은 알아둘 필요가 있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연애대위법』의 저자인 올더스 헉슬리의 말이다. 살면서 어떤 것 하나만큼은 누구보다 확실히 알 때, 삶은 좀더 풍요로워진다. 특히 생업에 관련된 일은 세상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잘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은 일반적인 세상사에 대해서도 전반적으로 조금씩은 알아두어야 한다. 그런 사람이 멋진 생활인이요, 건전한 상식을 지닌 사람이다. 정통한 분야가 있는 사람은 누구보다 자신감이 있어 당당해지고, 널리 알고 있으면 누구와 만나도 풍부하고 윤기 있는 대화를 이끌어갈 수 있다.
어릴 적부터 막연하게 동경해왔던 교수의 꿈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것을 성취하는 데 기여한 것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외로움과 답답함에서 벗어나려고 몰두했던 야구라는 사실이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도깨비장난 같고, 필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생뚱맞지 않은가.
---「야구 덕분에 쉽게 통과한 교수채용 면접」 중에서
주말리그의 일부 파행은 충분한 제도적 준비와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잘하는 투수 한 명이 주말마다 투입되리란 우려가 컸지만, 그 대안을 준비하지 못했다. 투수의 혹사를 피하기 위한 투구수 제한 등의 조치가 있긴 했지만 더 근본적인 접근이 있어야 했다. 고교야구 정상화를 홍보하는 데도 미흡했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 중반 이후 고교야구가 공부와 야구를 병행하는 데 더 엄격해지면서 더 많은 야구부가 생겼고, 야구를 직접 즐기는 학생들도 많아졌다.
학창 시절에는 다양한 분야의 경험을 쌓는 것이 교육의 바른 방향이다. 교과 과목을 공부하는 한편 운동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음악도 하는 것이 맞다. 운동에도 기초가 중요하다. 벌써 20~30년 전이지만, 세계를 제패하고 돌아오던 어느 구기종목 청소년 대표팀에 자신의 이름을 영어로 쓸 줄 몰라 출입국 카드를 앞에 놓고 당황한 선수가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물론 다 그런 것도 아니고 다소 과장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학원스포츠를 보자면 있을 법한 일이다.
세계대회에 참가하면 언제나 우승, 준우승을 넘보고 4강쯤은 쉽게 오르는 청소년들이 왜 성인만 되면 견주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실력이 떨어지는 걸까. 그것은 기초가 아니라 기술을 가르치기 때 문이다. 경기를 이해하고 작전을 수행하는 능력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방법만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능력도 없다. 따라서 청소년기에 기초를 차근차근 가르치는 외국의 선수들을 성인이 되어서는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상급 학교에 진학하려니 전적이 좋아야 하고 전적을 올려야 하니 기초보다는 기술을 가르치는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눈앞의 이익에만 몰두하여 아이의 미래를 망칠 것인가. 곰곰이 생각할 문제다.
---「‘지덕체’가 아니라 ‘체덕지’다」 중에서
야구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게 1905년이니까 그야말로 우리 현대사와 그 역사를 함께해왔다. 야구는 일제강점기를 지나는 동안 억눌린 마음을 호쾌한 타구로 날려버리게 해주었고, 해방 후에는 가난과 고통을 잊게 해주었다. 허리띠 졸라매고 잘살아보자고 땀방울을 흘릴 때도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거나 TV 앞에 앉아 야구 중계를 듣고 보며 희망과 꿈을 키웠다.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들어선 정권들이 이를 교묘하게 활용한 적도 있지만, 국민들에게는 그것이 휴식이요 충전이었다. 공주 촌놈인 내가 서울에 처음 올라와서 느끼던 외로움과 답답함을 야구로 달랬던 것처럼.
서양의 격언에 “일만 하고 놀지 않는 자는 바보가 된다”라는 말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야구는 놀이요 휴식이다. 우리가 가난과 굶주림을 뚫고 세계가 주목하는 경제 발전을 이룬 것은 근면과 성실이 바탕이 된 노동이 기본이겠지만, 그 뒤에는 그토록 열광하며 몰두했던 야구라는 휴식이 있었다고 믿는다.
야구를 대하는 각 나라의 태도를 빗댄 말이 떠오른다. 일본에서는 신앙이고 미국에서는 생활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스포츠라고. 신앙은 숭배를, 생활은 놀이를, 스포츠는 승부를 가리킨다. 야구를 숭배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도 낯설지만, 늘 승부에 집착하는 태도도 마땅치는 않다. 우리의 야구도 미국처럼 놀이의 영역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최근 번창하는 동호인 야구, 사회인 야구가 한국 야구를 미국 야구처럼 놀이로 만들 것을 기대한다.
---「야구는 놀이이자 휴식이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