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관찰하거나 그들에게 말을 묻는 일은 몇 번 반복하다가 가을 녘 즈음부터 서서히 줄게 되었다. 직접 글을 쓰는 시간이 더 많아지기도 했거니와 - 위태롭거나 힐난 받을 사랑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없다면 그런 정신적 혹은 육체적인 교류를) 가까이서 보는 게 생각보다 즐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이 여과되어 쓰여진 소설은 즐거웠지만, 정작 마주한 전혀 포장되지 않은 날 것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나는 지금 당장도 밖으로 나가 종로로 향한다면, 그 언저리 카페에서 쇼파에 몸을 기댄 채 놀음을 하는 상간자(相姦者)들을 쉽게 찾을 자신이 있다. 정말 그 주변 모든 카페들에는 1층에 넓은 쇼파 좌석이 있고, 그 자리는 매번 같은 사람들의 몫이다. 대개 그런 사람들의 눈이나 농은 누가 봐도 그들이 외도 중이란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별난 데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놀음이 하등 죄악이 아닌 것마냥 굴었고, 물론 그건 나에게 전혀 해악적인 일은 아닐 테지만, 어쨌든 그네들을 보는 건 마냥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그것조차 사랑이라면 사랑은 참 별거 없는 일이다. 아마 그들이 불타는 사랑과 현실 중 하나를 택한 것처럼 말한다고 해도, 결국 불타는 사랑 역시 현실에서의 일일 뿐이다. 사랑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사랑은 그냥 잠깐 들른 손님 같은 거다. 그래서 그네들이 겨우 도망친 곳이 고작 낡은 소파 위인 것이다. 어쨌든 사랑이란 건 여전히 내게 어려운 것이었고, 그건 내게 영원히 어려울 것만 같이 굴었다. 그걸 깨닫고 나는 차라리 거옥에 머무는 것을 더 즐기게 됐다. 틀릴 것도 없이, 마침 날씨가 추워졌기에 자연스러운 칩거였다.
--- pp.110~111
인사동과 그 주변에는 얼굴을 다소 우스꽝스럽게 그려주는 화가들이 여럿 되었다. 나는 그러고 보니 내 모습을 본지가 퍽이나 오래 되어, 그중 하나에게 내 모습을 그려 주기를 부탁했다. 돈을 주었으니 부탁이 아니랄 수도 있지만, 같은 쟁이래도 글쟁이가 '환쟁이'라는 단어를 써서는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그리고 잠시 후 받아 든 그림 속에서, 내 몰골은 여전히 앞니가 툭 튀어나온 채 눈 밑 다크서클이 굉장히 짙었다. 유독 더 우스꽝스럽게 내 모습을 그렸다. 아마 내가 원래 눈 밑이 검은 사람인 줄로만 알겠지? 나는 피식하고 웃고 말았지만, 옆에 서 제 차례를 기다리던 여자아이 하나는 꺄르르 꺄르르 하며 연신 웃어댔다. 그 옆의 외국인 구경꾼 무리는 그림을 보더니 서로 연거푸 손사레를 쳐댔다. 아마 내 그림을 보고 저들도 참여할 것인지를 결정하려고 했던 것일 테다. 나는 우스꽝스러운 내 그림을 보고서도 그런 감정이 들지 않았는데, 웃어대는 외국인 무리를 보니 괜히 서글퍼졌다. 이 그림쟁이가 나 때문에 손님 무리를 잃은 거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예술가란, 늘 누구가에게 기생하는 존재'라는 사실이 여실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울적한 마음으로 그림을 받아 들고, 인사동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나는 스크린 쿼터제가 있듯, 글쟁이들에게도 북 쿼터제가 있다면 어떨지 생각해 보았다. 터무니없는 생각이지만, 그렇기에 생각만이 가능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조금 덜 경쟁하고도 글로 적당히 빌어먹고 살 수 있을 테다. 김 선생의 마지막 작도 그 덕택에 힘을 좀 얻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김 선생님을 닮으려 하는 지평 형도 꽤나 짭잘한 수입을 올릴 수도 있을 거다. 누나는 어떤 반응을 보이려나. 개의치 않으려나. 아니면 자신이 바꿀 수 없는 상황을 그저 잘 이용 하려나. 하지만 어쩌면 높으신 분들은 저들이 차려준 밥상을 들먹이며 글쟁이들의 수저질을 방해할지도 모른다. 모름지기 예술은 결탁과, 혹은 어떤 회탁 한 것이 없어야 한다. 아니 그럼, 도서정가제는 어떻구? 나는 자꾸 비겁한 쟁의를 공상하게 된다. 내 눈은 혈안이 되지 않아, 진정성 없는 공상에서 공전할 뿐이다.
--- pp.159~160
문학회란 어째 다 이 모양일까. 책 읽기를 좋아하고 글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란 멀리서 볼 때 고고하고 고상해 보이는데, 어째서 가까이 다가가기만 하면 죄 이런 꼴일까. 나는 약간의 비참한 심경이었다. 말마따나, 글을 써서 벌어 먹는 일은 여러 쟁이들 사이에서도 가장 험난한 길을 걷고 있는 처지기에 그런 것일 테다. 글쟁이들은 홍대의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를 수도, 혹은 제 그림이 그려진 전단지를 서울 전역에 뿌리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작가란 누구에게 인정받아야 작가인 것이며, 읽히지 않는 글이 과연 조잡한 잉크 뭉치와 무슨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인가.
아주 광인의 작가가 된다는, 그마저도 예술에 미쳤다는 미명하에, 상상을 해보았지만 그 역시도 아무런 소득이 없는 망상일 뿐이었다. 미친 척 남의 귀를 열고 한마디 노래를 한다면 백 중 하나는 감명 받게 할 수 있을 테다. 미친 척 남의 눈을 벌려 난도질한 그림을 보여준다면, 금세 눈을 다시 감는대도 내 그림의 인상을 줄 수 있을 테다. 하지만 글은? 독자가 외면한 시장에는 희망이 없다. 이쯤 정도로 외로워졌을 때, 사내와 노인은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제 비주류 예술인이 한 식탁에 셋이나 되는 셈이다.
--- pp.195~1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