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은 인조에게는 치욕이었다. 이 역사적 사실을 김훈은 소설로 그려냈고, 황동혁은 영화로 보여 주었다면, 필자는 해방일지를 썼다.
지난 5월에 끝난 jtbc 드라마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는 탁월한 실존적 반복과 화제성 있는 대사로 화제가 되었다. “견딜수 없이 촌스런 삼남매의 견딜 수 없이 사랑스러운 행복 소생기”에서 각자의 해방은 타인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고, 삶의 목표를 찾는 모습을 그렸다. 남한산성을 걸으며 필자가 찾은 해방은 ‘매주 남한산성에 오르는 루틴’이다. 걷는 자체로 즐겁고, 걸을 수 있어 감사하고, 걸어서 몸과 정신의 건강을 유지하고, 걸으면서 상념을 정리하고,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인사이트도 얻게 되고, 이를 통해 타인과 소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한산성을 걷는 것은 ‘기투’다. 이 단어가 남한산성을 걷는 궤적을 잘 설명한다는 생각이 든다. 〈철학도해사전〉을 쓴 페터 쿤츠만 등은 기투(projection)를 ‘자신을 의도적, 의식적으로 자신의 가능성을 향해 내던지며, 그로 인해 자기 자신을 확인하는 행위’이다. 필자가 찾은 해방의 의미와 궤를 같이한다.
남한산성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계기는 남한산성 성곽이 바라보이는 동네로 이사 오면서부터다. 2020년 12월 이사한 후 서설이 내리던 첫 주말인 12월 13일부터 특별한 일이 아니면 매주 토요일 아침 산에 오른다. 햇수로 3년이 됐으니 분명한 루틴이 생겼다. 주말 루틴이 생기면 좋은 점이 많다. 우선 주말에 게을러지지 않는다. 평소처럼 6시에 일어나면 산에 다녀와도 늦잠 자고 일어나는 시간과 비슷하므로 하루가 길다. 다음으로 건강해진다. 남한산성을 한 바퀴 돌고 오는 거리가 15km 정도로 4시간 조금 넘게 걸린다. 일주일간의 스트레스를 날리고 새로운 한 주를 맞는 기(氣)를 받는 듯하다. 또한, 무엇을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토요일 아침이 되면 몸이 알아서 저절로 남한산성으로 움직인다.
남한산성에 처음 올랐을 때는 길을 몰라 헤매고 다녔다. 6개월 정도 매주 다니다 보니 남한산성 지도도 그리겠는데, 청나라가 침입해 왔을 때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몽진을 했고, 끝내 삼전도에서 항복했다는 정도의 슬픈 역사적 사실 외에는 별로 아는 게 없었다. 그러면서 남한산성과 병자호란에 엮인 역사에 대해서 새록새록 궁금증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신봉승의 소설 『남한산성』부터 김훈 소설 『남한산성』, 서울대 구범진 교수의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 등 상당한 양의 책들을 읽으면서 역사까지 나름 체계가 섰다. 매주 주말 남한산성을 오르며 느낀 사실과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을 정리해 보고 싶은 마음이 시나브로 자리를 잡았다. 재미있는 설화도 많이 있다. 매바위, 장경사, 수어장대, 황진이, 효자우물, 서흔남, 숭렬전 등에 얽힌 이야기도 흥미롭다.
남한산성은 1971년 ‘경기도 남한산성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서울 근교의 유일한 80~100년생 소나무 군락지를 갖고 있다. 1954년 최초의 국립공원으로도 지정되었으나, 1960년 4·19 민주화 혁명 이후 무효화되었다. 결국 국립공원 1호는 1967년 지정된 지리산이 차지하였다.
이 책을 쓰게 된 또 다른 계기는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자 함이다. 지금까지 단독으로 5권의 책을 쓰고, 1권을 번역하고, 1권은 7명이 공동으로 저술하였는데, 모두 딱딱한 책이다. 2010년 프로듀서로 참여한 KBS2 TV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이나 2013년 KBS2 TV에서 방송한 〈동백꽃 필 무렵〉처럼 특정한 연령대나 시청층 또는 독자층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연령과 성별과 관계없이 읽을 수 있는 대중서를 써보고 싶었다.
1년여 남한산성을 매 주말 오르내리는 찐 남한산성 팬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남한산성을 더 자주 찾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결국 남한산성은 나를 환대했고, 나는 남한산성을 추앙한다.
2022년 6월, 남한산성을 바라보며....
---「머리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