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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리뷰 총점8.6 리뷰 3건 | 판매지수 1,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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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9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308쪽 | 414g | 153*224*18mm
ISBN13 9788965551027
ISBN10 896555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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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서문·10

1장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좋은 물음은 없던 길이 드러나게 한다(賢問開門) / 어리석은 물음은 문을 닫아버린다(愚問閉門) 1 / 어리석은 물음은 문을 닫아버린다 2 / 지식을 고쳐 지혜를 얻다 / 無가 찾아온 날, ‘영혼’이 생긴 날 / 옛 문을 닫지 않았기 때문이다 / 직관, 이론, 비평, 지혜, 구원 / 제 생활을 증명하는 일 / 어떤 공부길 1 : 장숙(藏孰) / 대증요법 / 어떤 공부길 2 : 응해서 말하기 / 어떤 공부길 3 : 유일한 종류의 지혜, 응하기 / 방안 퉁수, 방구석 여포 / 어떤 공부길 4 : 일곱 가지 / 책읽기와 집중하기 / 기본기 1 / 기본기 2 : 어학 / ‘마음의 길’로서의 외국어 학습 / 기본기 3 : 규칙이 너를 구원하리라 / 기본기 4 : 규칙은 자신을 드러낸다 / 불퇴 / 기본기 5 : 몸이라는 기단 / 이기는 버릇 / 낮은 중심의 공부 / 녕자는 ‘높은 중심’에 취한다 / 마당일을 하든 버릇을 고치든 / 공부, 혹은 남을 도울 수 있는가? / 소크라테스, 남을 도울 수 있는가? / 돕기, 애써 나서진 말아야 / 생활은 적게, 공부는 비근하게, 중심은 낮게 / 정신의 성숙과 생각의 복잡 / 공부의 임상 / 멀리 가려니 / 내 공부의 반려 다섯 / 자득과 희망 / 득과 덕 / 才德交能至 / 길은 좁다 / 사람의 일이다 / 개념이란 무엇인가 / 어떤 사람들은 미래의 어휘로써 오랜 과거를 다시 말하고 있는 것 / 관념론의 미래 / 인문학, 혹은 매개학 / Humans ever begin(인간은 늘 시작한다) / 주체화는 정신의 기획이 아니며, 자유로써 주체화할 수는 없는 법 / 자유의 무내용과 현명한 독재 / 자연과 자유 / 내재(內在)의 운명 1 / 내재의 운명 2 / 논변과 구제 / 행지(行知) / 活在當下 혹은 carpe diem / 비판은 사유하지 않는다 / 수컷들의 꿈 / 어긋나는 세속을 지나면서도 가능한 지혜가 있다면 / 나체와 진실 / 대상, 모델, 그리고 경쟁자 / 재능이 없는 재주꾼 / 진짜, 를 찾아서

2장 자기실현은 무엇의 부산물일까

자기실현은 무엇의 부산물일까 / 환(幻)의 한 가지 기원 / ‘그 역(逆)은 성립하지 않는다’ / 정하기(定) 전에는 놀라는(驚) 법 / 경험의 딜레마와 앎 / 문턱이 없어지면서 환대는 사라진다 / 당혹과 무력감이 바로 그들의 자생력이라면? / 그날의 진실은 당신의 말이었다 / 말을 찾아가는 버릇이 깊어 / 술어, 혹은 부사 / 실효, 의미, 재미 / 보상의 위기와 인색한 자들의 욕망 / ‘사람’을 신뢰할 수 있을까? / 변절의 논리 / 교환될 수 없는 가치 / ‘가까워지기’의 비밀

3장 혹은, 자기관찰의 불가능성에 대해서

도덕적 발화, 혹은 자기관찰의 불가능성에 대해서 / 그는 봉사의 필요성을 압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지상의 사랑은 죄다 성욕의 대체재(代替財)라는 사실을, 왜 말하지 않았을까 / 어찌 제 낯짝을 드러내는 것은 부끄럽지도 않은가? / 엄마는? / ‘아비’란 무엇일까? / 너희들은 왜 싸우는가 / 부엌의 수다 / 그 값싼 희망을 포기한 대가로 / 사랑은 한순간의 꿈이라고 / 가부장들의 사랑 / 미인 / 입만 벌리면 지랄이다 / 천박한 입들의 문화 / 불행하고 기댈 곳이 없는 사랑 / 타인의 쾌락 / 성욕의 별신(別信) / 여분의 사랑 / 만약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 집안의 천사 / 동물‘사랑’이라는 정서의 길 / 짐승을 예뻐해선 안 된다

4장 TK란 무엇인가

세계 종교평화 연구소 / 낙동강의 이명박들 / 똥 천지 / 밀양강은 운다 1 : 자본이 강물에 닿지 않는 이유 / 밀양강은 운다 2 : 현회약수(顯晦若水) / 관원 대리체제와 미래의 구세주 / 지구를 살리는 한 가지 요령 / 우주(cosmos)와 자연(nature)과 세계(world) / 비장한 희생정신과 가부장적 정신으로 / 교산(蛟山)과 연암(燕巖) / 고은을, 다시 김수영은 뭐라고 말했을까? / 죽임의 윤리 / 빨갱이 콤플렉스와 쪽바리 콤플렉스 / 우리 아빠가 누군 줄 알아? / 의사란 무엇일까? / 맹점(盲點), 혹은 일본 / 商?って / 박정희의 경우 / TK란 무엇인가 1 : 문벌(門閥) 무의식과 고전 교양의 노스탤지어 / TK란 무엇인가 2 : 의고적 교양주의와 쌍놈들의 세상

인명색인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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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물음은 없던 길이 드러나게 한다. 그러나 그 빛은 부싯불과 같아서 부싯깃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주변은 다시 어둠 속으로 되돌아간다. 그래서 언제나 물음의 현장은 ‘속도’의 함수가 되는 것이다. 이런 물음이야말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좋은 질문은 논의와 탐색이 막혔을 때 시야를 밝히고, 새로운 말의 냄새를 불러온다. 물론 이 시야를 길게 틔우고, 그 말을 붙들어내는 것은 온전히 그 물음에 참여한 인간들의 몫이다. 호흡으로써 기맥(氣脈)을 틔운다고들 하는 것처럼, 좋은 물음으로써 정신의 길, 혹은 말의 길을 틔울 수 있는 것이다.
--- p.14

말을 고치려면 낭독을 일삼고, 몸을 고치려면 달리기를 하고, 버릇과 태도를 고치려면 경행(經行)과 신독(愼獨)을 잇고, 희망을 고치려면 좋은 사람을 사귀고, 공부를 하려면 절후(絶後)의 미등록-비인가 학교인‘藏孰’으로 올 것이다.
--- p.37

수컷 일반이 잘 배우지 않(못하)는 원인은 여러 맥리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 생리화학(physicochemistry)의 갈래에서는 테스토스테론과 같은 남성 호르몬의 효과 속에서 집약적으로 살펴볼 수 있으며, 동물행동학의 맥락 속에서는 순위제(dominance system)를 둘러싼 사회적 행태가 이를 단적으로 알려준다. 특히 한국-남자들이 공부하지 않(못하)는 원인은 물론 이들 중 열에 아홉은 그 직업이나 나이와 무관하게 ‘건달’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성공의 꿈은 건달의 길과 매섭게 나뉘지 않는데, 그 길은 아무래도 공부길이 아닌 것.
--- p.139

부사(副詞)에 대해선 이미 많은 말을 하였다. 그것은 늘 술어에 소외당하면서도 주어의 길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표상 권력의 중심인 주어가 허물어지는 곳을 가장 빠르게 깨단하는 기운이 곧 부사이며, 부사적 삶이다. 그러나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유행의 물속에 발을 담그는 순간 다시 재표상의 덫에 되잡힌다. 주어가 무(無) 속에서 유를 고집한다면, 부사는 무, 혹은 무의 창의성을 향해 늘 달아나기 때문이다.
--- p.175

회원리뷰 (3건) 리뷰 총점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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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밟고-끌고'의 공부길,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골드 c*****3 | 2023.03.12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최근 몇 년 사이에 심신을 조정하는 휴식기가 되면 철학자 김영민의 책에 손이 갔다. 에고가 빠져 있는 또 하나의 함정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글을 읽으면서 암둔했던 영역이 환하게 밝아지는 경험이 잦았다. 세속의 악다구니에서, 번란한 일상 속에서 발버둥치다가 문득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지 반성하게 될 때가 있다. 이론은, 철학자의 글은, 생활과 거리를 형성해주고 제 삶을 비;
리뷰제목

최근 몇 년 사이에 심신을 조정하는 휴식기가 되면 철학자 김영민의 책에 손이 갔다. 에고가 빠져 있는 또 하나의 함정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글을 읽으면서 암둔했던 영역이 환하게 밝아지는 경험이 잦았다. 세속의 악다구니에서, 번란한 일상 속에서 발버둥치다가 문득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지 반성하게 될 때가 있다. 이론은, 철학자의 글은, 생활과 거리를 형성해주고 제 삶을 비평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 김영민의 글은 삶을 점검할 수 있는 좋은 지침이 된다.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는 책 제목이 이미 저자의 세계관과 가치관의 알짬을 요약한다. 생활은 적어야 한다. 온갖 매체가 번뜩이는 자본주의 체제는 졸부와 속물들의 부나비 같은 생활을 정상생활로 호도한다. 그러나 정상은 증상이다. 오로지 세속과 불화하는 실존에서 새로움이 개창된다. 철학은 작아야 한다. 학인은 고담준론으로 생활과 멀어지는 대학의 '이론적 정교화'를 경계해야 한다. 개념과 지식을 제 삶 속에서 실천하는 철학에서 성인의 길을 겨우 꿈꿀 수 있다. 공부는 낮아야 한다. 중심을 높게 두면서 야밤의 맹꽁이들처럼 시끄럽게 울어젖히는 공부가 아니라 중심을 아래에 두면서 차분한 가운데 자기를 한 걸음도 아닌 반 걸음 변화시키는 낮은 공부를 실천해야 한다. 책의 절반은 이러한 전제 하에 '알고도 모른 체하기', '응하기', '동무', '비평적 생활양식' 등 그가 일구어 온 개념을 다양한 맥락에서 재확인하는 에세이로 채워져 있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가? 나는 어느 순간부터 아무 소득 없이 밤마다 책을 펼치고 물질적 이득이 없는 글쓰기에 매달리고 있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공부를 고집하는 까닭이 스스로도 궁금했다. 저자의 책을 읽어나가면서 나중에야 교환가치에 환원되지 않는 생활양식이 '무능의 급진'이라는 개념과 얼추 겹쳐진다는 것을, '위기지학'(공자)의 공부길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공부의 요체가 자기-변화라고 알려주었다. 이 변화는 의식적인 앎이 아니라 몸의 차원, 무의식 차원에서의 변화이며, '에고'라는 완고한 습벽에서 벗어나 타자가 되는 방식이다. 이른바 성심(장자)에 붙박여 있는 편협한 마음에서 벗어나 극기복례(공자)하는 것이다. 말이 벗어남이지 '에고'가 고집하는 애착의 점착성은 강렬해서 한 두 번의 시도만으로 타자-되기가 곧장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기존의 '꼴'에서 '틀'을 얻어서 '본'이 되라고 주문한다. 생활양식을 견고한 틀에 밀어넣고 단련함으로써 자기를 서서히 변화시키는 것이다. "공부는 '제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다. 제 마음(생각)을 어떤 정해진 태도 속에 넣어 갈고 닦는 것이다."(64쪽) 이이가 『격몽요결』에서 먼저 자세를 강조했듯, 저자도 공부에서 소홀히 하기 쉬운 '태도'를 더욱 강조한다. 단련을 통해 이치를 터득하는 실존을 '자득'이라 한다. 그는 다른 책에서 이를 달인과 성인의 길로 묘사하기도 했다. "정한 사물이나 사태를 대상으로 삼아 꾸준하고 성실하게 애쓰면 실력이 생기고 솜씨가 빛나는 법이다. 그 실력의 증표를 일러 자득(自得)이라고 한다. 자득하면 길이 보인다. 그리고 희망이란, 바로 이 길을 걷는 방식을 가리키는 것이다." (88쪽) '행지(行知)'를 강조하는 것도 지식과 실천에서 오히려 실천에 무게를 두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늘 말해오던 대로 지행(知行)이 아니라 행지(行知)이며, 지혜의 문수보살과 실천의 보현보살은 이미/언제나 일체이며, 인간의 삶이란 인간의 삶 전체를 통한 총체적인 수행(遂行)과 뗄 수 없는 상호연관성(interconnectedness)을 맺고 있는 것이다."(28~29쪽)

 

그런데 어째서 나는 변해야 하는 것인가? 왜 더 성숙한 존재가 되려고 하는가? 그에 대한 궁극적인 대답은 자아에 있지 않다. 결국 공부는 '타자'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공부를 해도 남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직 아무것도 아니다. 저자가 내세우는 사린(四隣, 사물/동물/사람/귀신)은 그가 있는 자리에 관계 맺는 모든 존재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장소화를 강조하는 개념이다. 덕이 있는 자는 그의 장소를 환하게 밝힌다. "학인이라면 체계의 공간 속에 편입되고 그 위계 속에서 승진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세계를 가꾸며 만들어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물론 그 세계-만들기의 기본은 '장소화'이고, 각자의 윤리적 선택에 의해 조형되는 세계는 곧 자연과 우주를 향해 열려있어야 한다."(261쪽) 항아리에 물을 담다보면 물이 넘쳐서 주변을 적시듯, 자득을 성취한 자는 흘러넘쳐서 사린에게 도움을 준다. 실력이 없는 자는 남에게 도움조차 주지 못한다. 덕도 실력이 있어야 베풀 수 있는 것이다. 이순신과 세종대왕은 제 나름의 결로 덕을 베푼 모범이다.

 

꼭 위기지학(爲己之學)의 이념이 아니더라도 공부는 제 삶을 구제하고 이로써, 즉 그 확장된 가능성으로써 이웃에게 빛을, 도움을 주(려)는 행위인 것입니다. 구제라는 게 별스럽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론을 넘어, 제 삶과 세상 속으로 지혜롭게 개입하고 응하는 실천이 얻는 공효입니다. 그래서 공(功)이면서 부(扶)라고 할 만한 것입니다.(75쪽)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 그 방법론에서 저자는 다방면으로 공부길을 제시하고 있는데 요령이 만만치 않다. 이를 테면, 그는 책읽기의 실효를 인정하면서도, 책읽기에만 몰두하여 생활을 잊어버리는 학자의 과오를 경계한다. 그렇다고 직관과 돈오에만 의존하는 수행자의 삶도 온전하지는 않다. 인간에게 주어진 언어는 세계와 대상을 더 세밀하게 포착하기 위한 무기이며, 다른 생물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는, 동뜨게 탁월한 정신진화적 산물이다. 집중과 책읽기, 직관과 언어는 겨끔내기로 함께 단련되어야 한다. 이른바 이론과 실천 사이에 변증법적인 지양이 실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식은 그것 자체로 아직 아무것도 아니며 오로지 제 삶을 거쳐야 겨우 지혜로 거듭나게 됨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직관과 표상은 이론의 프리즘을 통해서 보편성을 갖춘 개념이 되어야 하며, 이론은 삶의 자리로 다시 내려와 실천과 수행으로 실현되어야 한다. 그것을 저자는 '비평'이라 한다. 비평이 세계와 타인에게 향하지 않고 이미/늘 개입하고 있는 자신에게 되돌아갈 때 비로소 앎이 지혜가 된다.

 

지혜에 이르는 비평의 요령은 우선 그 비평이 타인을 향하기 전에 자기-비평이라는 점에 있다. 그 비평적 행위의 기원과 과정 전체에 이미 자기 자신의 개입이 엄연하다는 사실을 깨단하는 게 알짬이다. 이로부터 비평은 이론을 넘어설 수 있으며 또한 이로써 무책임한 비난으로 손쉽게 나아가지 않는다. 비평의 기원 속에 이미 자기 개입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그 비평의 실천 속에 되말아 넣은 것을 일러 '밟고-끌고(踏-?)'의 비평이라고 부른다. 자신의 어리석음과 상처로 인한 개입의 자리를 한 발로 밟고, 나머지 한 발로써 반걸음(?)을 내딛는 실천이다. (30쪽)

 

이윽고 앎과 삶이 일치하는 경지에 이르러 구원을 바랄 수 있으며, 이 때 구원은 자기 구원인 동시에 타자 구원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삶은 항시 세속과 마주치고 세속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의무와 쾌락이 다르지 않은 상태, 현명하고 복종하고 지배하는 상태, 신뢰로서 공동체를 형성한 상태가 구원의 경지일 것이다. 허나, 공부길에는 사마(邪魔)가 끼기 마련이다. 무엇보다도 '주체는 증상적'이기 때문에, 자기를 기만하기 쉬운 존재이기 때문에, 비평과 지혜에 이르기가 쉽지 않다. "자기 정당성을 구하는 에고의 실행은 이미 원천적으로 자기관찰을 포섭해서 왜곡시킨다. 증상적 방어기제로써 겹겹이 호위된 에고의 원환(圓環)에 그 아상(我相)은 회절, 혹은 훼절(毁折)될 수밖에 없다."(198쪽) 억압된 것에 의해서 주체는 저마다 맹점을 가지며, 그 자리에 에고를 정당화하는 환상이나 이데올로기가 자리하게 된다. "자기관찰의 불가능성 속에서 일희일비하고, 그 관찰의 맹점에 넘어져 증상적으로 살아가는 게, 이른바 '정상 생활'이다. 정상은 곧 증상인 셈이다. "(198~199쪽) 공부하지 않는 인간이 편협해지는 까닭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인식론적 함몰 상태에 빠지기 때문이다. '일본놈들은 무조건 나빠.', '여자가 뭘 하겠어?'와 같은 말을 서슴 없이 뱉는 자는 이데올로기적 환상에 지펴 있으며, 이들은 타인에게 언제나 해악을 끼친다. 공부는 무의식을, 인식적 맹점을, 이데올로기와 환상을, 새로운 생활 양식으로 부단히 변화시키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제 마음에만 머물러서는 진실을 마주하지 못한다. "다시 말하지만 진심(眞心)은 진실이 아니다. 진실은 제 마음을 중심으로 발견되는 게 아니라, 마음의 안팎이 어울리면서 '연극적으로' (재)구성되는 수밖에 없다." (213쪽)

 

이렇게 공부하는 인간은 세속과 창의적으로 불화하는 생활양식을 조형하는데, 이미 우리가 사는 세속은 졸부와 속물이 지배하고 있으며, 온갖 매체가 졸부와 속물의 발호를 매개하고 있어서 쉽지 않은 싸움을 예고한다. 한국의 급속한 경제적 발전은 식민지적 근대화와 전쟁의 굴곡을 거쳐서 졸부를 양산했다. 존재의 실력은 오랜 시간의 단련을 통해서 서서히 증명되는 법인데, 졸부는 급속한 부의 팽창에 걸맞는 실력을 갖출 시간이 없었다. 과시와 허영이 그들의 생활양식으로 자리잡는 것은 차라리 자연스럽다. "존재양식(Seinsweise)의 함양(涵養)은 장구한 정신역사적 과정이므로, 졸속하게 얻은 재산이나 지식은 존재론적 정당화에 실패함으로써 필연적으로 꼴사나운 과시나 허영의 습벽에 노출되기 마련이다. 간단히 이를 '속물'이라고 부름직한데, 대개 속물은 곧 상징적 자기 정당화에 실패한 졸부이기 때문이다."(232쪽) 속물은 졸부에 파생되어 등장한다. "너, 우리 아빠가 누군지 알아?"를 남발하는 자다. "졸부가 곧 속물로 이어지는 이유는 간단히 말해 '내적 공허함' 탓이다. 『소학(小學)』이 말하듯, 중심(中心)과 안색(顔色)은 서로 융통할 수밖에 없지만, 졸부란 말하자면 제 안색조차 건사할 수 있는 중심이 없는 것이다."(271쪽) 그는 자신의 소속과 실력이 분열되어 있는 존재다. 과거의 귀족 사회는 그들이 기득권일망정 나름대로 축적해 온 정신문화와 실력이 있었다. 졸부와 속물의 사회에서는 전통으로 대변되는 실력이 없이 파리떼처럼, 깊이 없는 자기 실존을 드러내어 보인다. 학인들이 속물적 체제에 편입되면 대중에게 영합하고 매체에 빌붙는 건달이 되거나 이론적 정교화에만 매달리고 타인에게 실효가 없는 헛똑똑이가 되는 것이다.

 

체제의 고인물에 익사하는 실존이 되지 않으려면 계속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시작은 역사적 사건이기 전에 인간의 최고능력이다."(114쪽, 한나 아렌트) 신에게도 동물에게도 '시작'은 없다. 오로지 인간만이 스스로 약속하고 결단하고 행동을 개시한다. 저자가 '동사적 실존'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며, 사랑이든 자유든 그것은 내용이 없기 때문에 언제나 수행적으로만 실현된다. 공부가 그러한 것이다. '그래도 다시 한 번!'(니체)의 정신이 좌절과 불행을 딛고 달인과 성인을 향한 한 걸음을 걷게 한다. "현재를 살아내는 일은 '지금 이것을 (다시) 시작(今是猶始)'하는 일이기도 하다. 시간은 우주 속에서 빛의 도움을 얻어 늘 영원한 현재이므로, 오직 현재 속에서 영원히 시작하는 것이다."(135쪽) 그러다 보면 어느새 다른 존재가, '더 큰 나'가 되어 있을 것이다. " 많고 좋은 지식이 잘 쟁여지고 시간을 얻어 발효하게 되면 반드시 그 정신은 터지고, 트인다."(137쪽) 무엇보다도 남을 도울 수 있는 실존을 희망해 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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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포토리뷰 봄동 보다 맛있는 종이 위에 핀꽃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로얄 미****소 | 2023.01.09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독서는 소비가 아니다. 때론 가십거리처럼 눈으로 보고 배설하는 경우도 있다 언어의 알갱이들을 나비보다 유연하게 춤추는 철학자를 만나다. 좀 거칠게 표현했나. 오랜만에 책다운 책을 만났으니 이를 두고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 유붕방자원방래 불역낙호아 인불지이부온 불역군자라 학이편이 찰싹 내게 달라붙었다.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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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소비가 아니다. 때론 가십거리처럼 눈으로 보고 배설하는 경우도 있다

언어의 알갱이들을 나비보다 유연하게 춤추는 철학자를 만나다.

좀 거칠게 표현했나. 오랜만에 책다운 책을 만났으니 이를 두고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 유붕방자원방래 불역낙호아 인불지이부온 불역군자라 학이편이 찰싹 내게 달라붙었다.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 不亦君子

 

재야의 고수라고 칭하고 싶다. 책 제목이 적은 생활, 작은 철학,낮은 공부. 노란 책표지를 넘기니 작가가 켜켜이 쌓아온 사유의 나이테들이 단박에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어찌 보면 내가 헛 공부는 하고 있지 않은가 싶을 정도로 사유의 행간과 행간사이에서 미로속에서 헤매는 듯한 착각에 빠져버릴뻔한  진짜 학인學人과 마주선듯, 아니면 확철대오廓徹大悟,큰 스님들의 화두에 탱자나무의 굵은 가시가 목구멍에 걸려 숨막히게 낙시바늘에 물고기가 걸린것처럼 쇄기가 박힌듯, 철학자를 만난것이 겨울속 봄동을 먹는것에 비유할까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작가의 경험과 깨달음이 응축된 사유의 힘을 발견하며 딴딴한 철학의 깊이를 들숨 날숨으로 썰물과 밀물의 작용이 수반되듯 고요적정한 이치를 내 마음에 새긴다.

 

 공부하는 사람의 기본기는, 제 나라 말/글을 야무지게 쓸 수 있는 것이며, 반걸음?步을 제대로 걷는 일이고, 응應함에서 모든 것을, 아무것이든 불러 모아 그 현장에서 남을 도울 수 있는 것. 등이다. 기본기 1 P52

 

인류사의 실핏줄로 엮어놓은 인간들이 언어를 통해 알아낼 수 있는 풍찬의 세월속에서 인간 정신의 탁본拓本을 뜨기 위해서는 외국어 배우는 일을 생략하는 것은  정신을 길들이는데 부표가 희미하게 보이는듯한 무인도의 유랑자에 비유되듯 어학에 깊은 통찰로 언어의 흐름을 묶어 바다로 합류시켜야하는 하학상달下學上達의 이치,마치 연어가 굽이굽이 헤엄쳐 강의 정점에 유영하여 최후를 맞이하듯, 미래의 언어는 과거의 언어속에서 발견 발전시키는 역사.

 

 " 인간은 두려워하는 것에서는 금세 죽을 것처럼 행동하지만 좋아하는 것에서는  마치 영원할 것처럼 행동한다(You act like mortals in all that you fear, and like immortals in all that you desire )"  세네카 P142

 

얼굴은 숨기지 않는다. 얼굴은 자신의 역사를 온전히 드러낸다

 

  Mit zwanzig jah hat jeder das Gesicht, das Gott ihm gegeben hat, mit vierzig das Gesicht,das ihm das gegeben hat, und mit sechzig das Gesicht,das er verdient.

 나이 스물에는 누구나 신이 주신 얼굴을 지니고 있다. 마흔이 되면 누구나 자기 자신의 삶이 준 얼굴을 하고 있다. 예순의 나이가 되면 스스로가 성취해낸 가치만큼의 얼굴을 지니게 된다   Albert Schweitzer P203

 

아! 나는 공부한다는 핑계로 항아리 안에 들어가 우산 쓰고 있었네..항아리 안 올챙이.종이 위에 핀꽃이 봄동이 시기하는,군불을 때서 구둘막에 청국장 익어가는 순간, 가마솥에 여물 익히는 냄새에 황소의 미소짓는 그 행복,장작불로 초가집 부뚜막을 달구는 불멸의 시간들, 스님의 다비식을 위해 수 십년가 준비한 장작의 세월, 그 보다 더 삶속에 파묻힌 알갱이들을 하나로 묶어낸 낮은 공부의 철학자 김영민의 묵묵히 묵언수행하듯 장숙&서숙의 가르침에 당신은 진정 마부작침磨斧作針의 경계를 넘어선 현자이십니다.

 

개구즉착開口卽錯 - 입만 벌리면 지랄이다- 후안무치厚顔無恥

->> 살아보니 뜻대로 되는게 거의 없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게 세상이다.

숨길 수 없는 낯짝을 잘 관리하여 '항상 제뜻이 옳다고 믿는 자시지백自是之癖의 폐습을 청소하여 공부의 밑절미의 근본을 바로세우기위해 적은 생활,작은 철학,낮은 공부의 철학과의 만남은 행복한 발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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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문화리뷰 무서운 건 무뎌지고 녹슬어 쇠하여지는 것 내용 평점3점   편집/디자인 평점3점 m****9 | 2023.02.25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작년이던가? SF(공상과학) 모 문예지가 창간하면서 그 속에 함께 실린 김영민 교수의 글을 처음 읽어 보았다. 너무 재밌게 읽어서 언제 한 번 이 양반의 책을 읽어 봐야지 했다. 그러다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 있게 이 책을 선택했는데 웬걸, 이름은 같은데 그 사람이 이 사람이 아니다. 동명이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앞서 말했던 김영민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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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이던가? SF(공상과학) 모 문예지가 창간하면서 그 속에 함께 실린 김영민 교수의 글을 처음 읽어 보았다. 너무 재밌게 읽어서 언제 한 번 이 양반의 책을 읽어 봐야지 했다. 그러다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 있게 이 책을 선택했는데 웬걸, 이름은 같은데 그 사람이 이 사람이 아니다. 동명이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앞서 말했던 김영민 교수가 언젠가 공부에 관한 책을 냈는데, 이 책도 공부에 관한 책이다. 연장선상에서 책을 냈는가 보다 했다. 그러다 한마디로 찍-쌌다. 왜 의심하지 않았을까? 적어도 인터넷 서점을 들어가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었던 것을. 의심하지 않았던 것도 동명이인이 존재할 거라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시 총기가 떨어지고 있고, 저자에겐 미안한 일이 됐다.  

 

그래도 이왕 어떤 이유에서건 내 손에 들어왔으니 읽어는 봐야 한다. 저자는 철학자 겸 시인이다. 한마디로 이 책은 저자가 공부하면서 느꼈던 바들을 써 놓은 일종의 단상집이다. 

 

솔직히 우리는 공부하면서 공부하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아니 어쩌면 한 가지 방법으로만 공부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학교는 원죄가 있다. 그나마 그것도 학교 공부를 마치면 더 이상 공부할게 없다고 손을 놔버리기도 하지 않는가. 이게 참 불행하고 아이러니란 생각이 든다. 

 

더 안타까운 건  우리나라 사람들의 학습 능력은 다른 나라 학생과 비교할 때 결코 뒤지지 않는다.  수학 올림피아드 뭐 이런 거 하면 거의 탑이다. 심지어는 우리나라 중고등학교의 교과 과정을 동경하는 나라도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학업을 비관해서 학교 옥상에서, 아파트 꼭대기에서 몸을 던지는 아이들이 왜 그렇게 많은 것인지. 아무리 뛰어난 학습능력을 가졌다고 해도 10년, 20년 후에도 여전히 탑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부란 무엇인가에 대한 지성인들의 고찰을 담은 글들은 계속 나와 독자의 자칫 무뎌질 수 있는 지적 욕구와 감수성을 자극해 줘야 한다.

 

그런 말이 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 인간만이 사고하고, 공부한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건 그것이다. 그러므로 이 앎에 대한 욕망과 촉수를 매일 벼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이 책, 제목도 좋고 의도도 좋긴 한데 너무 어렵다. 한 꼭지 안에 들어가는 글자 수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닌데 어렵다. 이런 책은 뭔가 깊이 음미하며 읽어야 할 거라고 생각했다. 공부에 대한 단상을 적는데 이렇게 어려울 필요가 있을까? 공연히 심술이 났다. 어려운 공부 한다고 은근 자랑하는 건가? 나 같이 얄팍한 학식을 가진 사람은 어쩌라고 이렇게 어렵게 썼나 짜증도 났다. 

 

원래 공부란 어렵게 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쉽게 쉽게 하는 게 어디 공부인가? 어렵지만 부딪쳐 보고 그다음 단계로 나가고 거기서 모종의 성취감도 누리고 하는 것이 공부다. 엄밀히 말해 공부는 스스로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말마따나 독학이 됐건 어떤 전문지식을 위해 학교나 학원을 가던 스스로가 길을 찾고, 방법을 찾고 그 길을 가는 것이다. 누가 일일이 가르쳐 줘야 하고, 떠먹여줘야 하는 건 공부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옛 선생님들이 한 우물을 파 보라는 말은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누구는 한 우물만 파면 외골수가 되기 쉽다고 하는데, 모든 사람이 다방면에서 뛰어날 수는 없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긴 하지만 지금은 한 우물이라도 제대로 파보고 싶다. 하지만 한 우물을 파서 외골수가 된다면 그건 아직도 덜 팠다는 얘기도 된다. 누구는 그랬다. 그렇게 우물을 팠더니 모든 것이 다 연결되어 있더라고. 공부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한 가지만을 아는 사람은 기실 깊이 아는 것이 아닐 것이다. 아는 척할 뿐이지. 알면 알수록 입을 다물게 된다고 하지 않던가. 더 모르기 때문에 또 알고 싶어서. 아마도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짧고 간단하게 글을 썼을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저자는 그다지 독자들을 사로잡거나 설득하려고 애쓴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그냥 자신이 깨달은 건 이런 거라고 툭 던져보는 식인 것도 같다. 뭐 그래서 동의하면 끄덕여 보시던가 그런 식. 그동안 책 쓰기를 위한 책들은 얼마나 독자들을 공략하라고 외치고 부르짖었던가. 물론 글 써서 돈을 벌 사람들에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긴 하겠지만 책은 꼭 그런 방식으로만 쓰거나 통용되지는 않는다. 그래서일까? 저자의 말 중에 이런 말이 나오긴 한다.

 

 

통상 공부를 결심한 이가 제일 먼저 손대는 게 책이다. 그러나 이게 병통이다. 그래서, 레비 스트로스의 지적처럼 '정신의 성숙과 생각의 복잡을 혼동하는 일이 생겨난다. 어떤 공부에서든 (좋은) 책 읽기를 생략할 수 없지만, 책 읽기는 반편의 진실을 보여줄 뿐이다. 

 

(81p)  

 

저런 얘기 하면 책 관련 종사자들이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한때는 공부를 하려면 관련된 책들을 쌓아놓고, 연구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스스로를 상아탑 안에 가둬야 한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물론 난 그러고 결코 살지 못했지만. ㅠ) 어쩌면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평생 노동을 해 온 우리가 알만한 사람들이 진짜 학업자인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우리 같은 일반인들은 해당사항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동은 반드시 땅 파고, 건설하는 사람만이 하는 것은 아니다. 집에서 가정 건사하고 직장 다니는 사람도 노동자다. 그러면서 책도 읽고 글도 쓰면 그 사람 그 역시 학업자 아닌가.

 

공부는 어렵다. 그 어려운 공부를 어떻게든 쉽게 해 보려고 발버둥 치는 건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그저 공부하는데 위로가 되고 벗으로 삼을 것들이 있어야 쉬 지치지 않고 끝까지 해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다석 가지 반려가 있다고 했다. 첫째는 산책이고, 둘째는 적바림하는 버릇이고, 셋째는 차(茶), 넷째는 낮잠. 저자는 기이하다고 하면서 오후에 10~15분 잠깐 잠을 잔단다. (그렇지 않아도 의사들도 건강을 위해 낮잠을 권하기도 하는데 그게 30분 이내라고 했다. 저자의 잠은 너무 짧고 나는 잠을 사랑한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째는 설명이 어렵다며 설명하지 않겠단다. 그런 것으로 봐 그 반려에 관해서는 너무 깊이 가르쳐 주는 것 같아 언급을 회피하지 않았을까 싶다. 즉 다섯째는 독자 스스로 가져 보라고 남겨 둔 것도 같다. 그렇다면 난 어떤 걸 해 볼까? TV 시청이다. 물론 과하지 않는. 볼만한 드라마나 영화, 다큐나 강연 프로는 얼마나 많은가. 

 

 

책이 다 어려운 것은 아니다. 간간이 웃자고 하는 말도 더러는 섞여 있다. 예를 들면 '수컷들의 꿈' 같은 거. 

수컷 일반이 잘 배우지 안(못하)는 원인은...... 테스토스테론과 같은 남성 호르몬의 효과 속에서 집약적으로 살펴볼 수 있으며, 동물행동학의 맥락 속에서는 순위제를 둘러싼 사회적 형태가 이를 단적으로 알려준다. 특히 한국-남자들이 공부하지 안(못하)는 원인은 물론 이들 중 열에 아홉은 그 작업이나 나이와 무관하게 '건달'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성공의 꿈은 건달의 길과 매섭게 나뉘지 않는데, 그 길은 아무래도 공부 길이 아닌 것. (139p)

 

어찌 보면 어려운 말 같기도 한데 위트가 있다. 즉 공부하지 않는 것을 건달에 빗대고, 그러면서도 사회적 성공을 바라거나 성공했다면 그 사회는 얼마나 불안한가를 지적한다. 더구나 한국 남자들은 질문을 잘 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이건 뭐 남자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단지 여성은 상대적으로 묻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갖지 않으며, 묻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앎은 질문에서 시작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배우려고 하지 않아 건달이 되는 사회는 위험하다.

 

요즘 5, 60대의 학업성취도도 예전보다 월등히 높아졌다. 그런데도 나이 들면 들수록 배움엔 여러모로 용기가 필요하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생각해 봤더니 나는 벌써 꽤 오랫동안 공부하기 위해 어딘가를 정기적으로 다니는 곳이 없다. 공부도 젊을 때 하는 거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녹슬게 방치해 두면 안 된다. 건달이 되는 거보다 더 무서운 건 무뎌지고 녹슬어 쇠해지는 거 아닌가. 공부는 죽을 때까지 하는 거다. 저 다섯 가지 반려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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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5점
조바심을 내지 않고 걸음걸음 삶의 양식樣式을 가꾸어가려는 이들과 나누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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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g | 2023.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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