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한국 전통 색채 활용 변천사를 통해 한국 색채디자인을 콘텐츠화해 전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해 집필되었다. 1945년 해방 이후 현재까지 시대별 사례를 통해 산업디자인에서 색채 이미지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전통 색채가 다양한 컬러 마케팅에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살펴본다. 또한 현대와 전통 색채의 조화를 이룬 전통 색채 이미지를 발견해내, 미래 전통 색채 이미지 활용 가치를 높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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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색채는 대표적으로 불화와 사찰건축, 고려청자에서 찾을 수 있다. 고려 불화는 원칙적으로 음양오행설에 입각한 오방색을 중요시한다. 그 이유는 인간세계의 생생한 감각을 긍정하고 이를 유효하게 활용함으로써 성속일체(聖俗一體)의 체험을 얻고, 색채를 상징화하여 감각을 통해 직관적으로 파악하려 한 것이다. 붉은색은 고대부터 숭고하고 신성한 의미로 사용되었고, 백색은 하늘의 의미와 조화를 이루어 함께 깨끗하고 영롱한 존재임을 나타냈으며, 황색은 왕족을 의미하는 색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금색은 부처의 절대적인 색채로 풍요롭고 성스러운 장엄함을 표현하며 독실한 신자가 부처에게 바치는 선물과 정신적 장식물의 기능을 한다.
--- p.37~38
한국 전통음식에 오색이 나는 재료를 사용한 것은 각각의 길상적 의미를 담은 것도 있지만 과학적으로도 맛을 더할 수 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 빛을 분광기에 투과하면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의 7가지 색이 연속된 스펙트럼이 나타난다. 이 스펙트럼 색96 중에서 식욕이 강하게 일어나는 색과 그렇지 않은 색을 조사한 적이 있다. 붉은 주황, 노랑, 청록색은 식욕을 돋게 해 인기가 있었으며, 분홍색, 갈색, 크림색, 연하고 밝은 녹색도 반응이 높게 나타났다. 반대로 황록색이나 보라는 최저점이었다.
--- p.61
중국에는 예로부터 음양오행설이라는 사상이 있어서 방위나 계절뿐만 아니라 색깔도 모두 이 5개 원소와 결부 지어 해석한다. 파랑은 평화, 빨강은 기쁨, 노랑은 힘, 하양은 슬픔, 검정은 파괴를 나타낸다. 그 때문에 하양과 검정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사용하지 않는다. 또한 노랑은 힘의 상징으로서 제왕과 결부되기 때문에, 궁전과 관계없는 곳에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사용할 수 없다. 중국 건축물에 주로 빨강과 파랑의 원색을 칠하고, 중간색을 쓰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 p.89~90
고대 일본은 평화와 안전, 국가와 가족의 번영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적색으로 표현했다. 고대 사찰의 건물이 적색인 것은 6세기에 중국이나 조선 반도의 영향을 받아 사원 건축이 이국정서가 넘치는 적과 백을 기조로 색채가 적극적으로 사용된 것이다. 즉 적색은 대륙 왕조의 권위를 상징하는 궁정과 사찰, 공식적인 건물 등에 칠해졌다. 적색을 통해 중국 관습이 일본 왕조에 받아들여진 것을 알 수 있다. 흰색은 전통적으로 순수함을 상징하고 신성한 색으로 인식되었다.
--- p.108
미술 작업에서 전통 색채도 중용과 조화, 단순성을 갖추고 있었다. 대체적인 전통 색감은 시각적으로 두드러지는 현란한 색이 아니라, 차분하고 자연과 동화된 색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특히 삶에서 상생과 상극의 관계로 색동옷, 오방장 두루마기, 오방색으로 꾸민 금줄은 예방적·주술적 의미도 있었다. 민가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던 단청의 오방색은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무탈한 정서를 비는 마음으로 색을 사용했다.
--- p.114
적색은 ‘불’을 상징한다. 불은 뜨거움, 뜨거움은 여름이 되며, 여름은 남쪽이 된다. 또한 적색은 벽사의 의미를 지닌다. 『동국세시기』에서도 붉은 팥죽을 쑤어 문짝에 뿌리면 액운이 물러간다고 되어 있고, 부적에도 주로 사용되는 색은 적색이다. 굳이 벽사의 의미가 아니더라도 봉선화로 손톱을 붉게 물들이는 풍습은 우리 선조들이 붉은색을 일상생활에서도 선호했음을 보여준다.
--- p.130
일반적으로 한색 계열은 쓴맛과 관계있고 난색 계열은 단맛과 관계있다. 우리는 생활 주변에서 접하는 대상들과 동일한 색채를 볼 때 그 색에 수반되는 냄새 감정을 가지게 된다. 톡 쏘는 듯한 냄새의 색은 오렌지색, 조금 짙은 냄새의 색은 초록색, 은은한 향기 좋은 색은 자색이나 연한 자색의 라일락색이다. 향기와 관계되는 색은 그 대상의 냄새를 느끼게 한다. 좋은 냄새의 색들은 맑고 순수하고 섬세한 색들로서 bright, 페일(pale) 톤의 고명도 색상들이다. 따라서 제품 용기의 색을 선택할 때 이러한 것들을 응용해볼 수 있다.
--- p.149~150
한국은 1945년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국가의 재건과 발전을 위해 디자인 분야에서도 새로운 발전을 모색했다. 이때 일본을 통해서 들여온 서구 디자인은 여과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일본은 근대화 과정에서 그들과 유사한 사상과 문화적 성향을 지닌 영국이나 독일의 철학을 제외한 디자인의 외형적 요소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인위적인 형태나 기하학적이고 논리적인 형태 등 제한된 질서를 가진 색채를 사용했다. 이러한 일본 디자인의 영향을 받은 한국의 초기 디자인에는 유럽과 일본 문화의 두 가지 특색이 반영되었다. 그리고 한국의 산업화에 가세해서 빠르게 확산되었다.
--- p.165
전통을 해석하는 방식도 양식 면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색상에서는 1970년대의 한국적인 색상이었던 백색 대신 오방색이 부상했다. 특히 88올림픽 로고와 포스터에 많이 쓰이던 오방색은 인근 국가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한국 고유의 정체성과 한국적 디자인의 중요한 소재로 자리 잡았다. 이외에도 시각적인 자극이 강한 굿, 부적, 서낭당과 같은 무속적 요소들은 세계와의 차별성을 갖는 한국의 고유성으로 인식되었다. 88서울올림픽은 올림픽 엠블럼부터 마스코트, 경기장 등 거의 모든 곳에 전통적 소재를 국제주의 양식으로 해석해서 디자인했다.
--- p.192
도시 색채디자인으로 전통 색채를 사용한 서울의 경우를 살펴보면, 서울시티투어버스의 오방색과 서울 도시 현상에서 나타나는 오방색이 있다. 서울시티투어버스는 서울의 대표 장소를 중심으로 노선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을 대표하는 색은 궁궐건축의 단청색, 한강의 물색, 서울 가로수 은행잎색, 남산의 초록나무색, 서울의 하늘색을 추출하여 서울의 현상색으로 오방색을 정한 것이다.
--- p.205~206
중국과 일본 모두 고대부터 오방색을 사용했다. 일본도 오방색의 근원을 중국에서 찾고 있고, 우리도 오방색의 근원을 중국에서 찾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한국이나 중국, 일본 모두 오방색을 전통 색채로 보고 있어 한국 고유의 전통 색채에 대한 정체성이 모호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한국 전통 색채디자인의 콘텐츠화를 위해 우선 동아시아 삼국에서 사용하는 전통 색채의 차이점을 찾아 현재 오방색이 한국 전통 색채로 자리매김하는 이유를 규명했다.
--- p.232
분명한 것은 오방색의 미감은 한국 미술의 독창적 미의식으로 인식할 수 있는 근거가 되며, 나아가 새로운 시각의 풍요로운 색채 문화를 형성하는 데 기반이 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색채 문화의 흐름을 살펴보면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색채 문화에 대해 소극적이었던 것도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단순한 흑백 위주의 문화로 무질서한 색의 남용을 자제하는 등 색채 문화가 획일적이고 빈약했다. 그러한 사회적 인식과 환경 속에서도 오방색은 사회적 관습과 규범, 교육적 가치관 등 문화적인 면에서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 p.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