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은 무엇을 연결하는가: 팬데믹 이후, 미술관』은 시류에 떠밀리듯 가속화되는 비대면과 디지털화의 상황 속에서 이와 같은 변화를 마주하고 탐구할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고자 한다. 미술관의 매개 방식이 확장되는 것은 단지 형식의 변화를 뜻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미술관이 생각하는 방법 자체와 그것이 제공하는 경험의 지향점을 보다 폭넓게 고민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본 심포지엄에 초대된 국내외 열 명의 연구자, 큐레이터, 비평가 등은 각자의 관점을 통해 시대 변화를 진단하고, 새롭게 요구되는 미술관의 역할 설정과 그에 따른 문화적, 사회적, 기술적 맥락 및 구체적 사례들을 논의한다.
---「『미술관은 무엇을 연결하는가: 팬데믹 이후, 미술관』 기획의 글, 김남인(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중에서
이 글은 동시대 기술 현실을 읽기 위해 뉴미디어와 스마트 환경, 특히 ‘데이터 사회’(datafied society)라는 최첨단 기술 현실 속 물질 조건에서 출발한다. 데이터 사회는, 인간 신체의 모든 발화와 생체 정보,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모든 자원들이 디지털 데이터로 전환되어 자본주의적 생산의 중심 추동력이 되고, 인공지능의 자동화된 데이터 처리 알고리즘(프로그램된 명령어)을 통해 자본의 가치 생산과 인간의 신체 통치를 구성하는 새로운 사회를 일컫는다.
---「동시대 기술의 문제, 이광석」중에서
전능하고 편재하는 소셜 미디어는 흐르는 우리의 시간과 분열된 삶을 요구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슬프다. 무료하거나 고요한 순간이 더는 없으니, 결과는 피로와 에너지 고갈 혹은 상실이다. 우리는 강박적으로 기다리게 됐다. 당신이 사랑하는 이들로부터 얼마나 오랫동안 잊혔는지? 모든 앱이 그 시간을 치밀하게 측정해서 코앞에 들이민다. 시간의 신 크로노스는 상처를 준다. 관심을 끌기 위해 뭐라도 포스팅해서 내가 여기 있다는 걸 보여 줘야 하나? 이제는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무작위 메시지들이 속절없이 쌓여 가는 와중에 잠시 멈추고 시간을 내서 이 모두를 숙고할 방법은 없다.
---「의도된 슬픔, 히어트 로빙크」중에서
이와 같은 연구는 인간 뇌가 기예를 습득할 때 무에서 시작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뛰어난 기예가 모든 인간 성인에게서 자연적으로 개발되는 것이 아니라면, 이는 곧 그러한 기예를 갖추도록 프로그래밍 된 인공지능이 보편적 인지력을 시뮬레이션하지 않는다는 점을 뜻한다. 대신 어딘가에서 본 사례를 흉내 내거나, 정식 훈련이나 견습을 거치거나, 온라인 튜토리얼을 따르거나, 기타 방식으로써 학습한 기술을 시뮬레이션하는 것이다.
---「인공지능과 소프트웨어 시대의 예술, 레프 마노비치」중에서
에버기븐호 사태가 보여 주듯 세계는 이제 현기증이 나리만치 복잡한 공급 사슬로 연결되어 있다. 단 하나의 세계만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적 환상으로부터 탈출하면서 생성되었던 다른 세계를 향한 꿈은 질식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시금 연결되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향한 정치적 상상은 글로벌 공급 사슬로 연결된 자본주의로 인해 제거되었고, 곧 들이닥친 교통과 통신 혁명은 ‘초연결사회’라는 환상을 더욱 부채질했다. 컨테이너화와 더불어 해상 운송 비용이 줄어들었고, 해상 운송의 금융화는 이러한 과정을 더욱 촉진시켰다.
---「연결에서 벗어나기: ‘글로벌 아트’와 세계 체제, 서동진」중에서
이러한 지적들을 염두에 두면서, 우리는 동시대 예술 작업들과 당대의 근과거를 ‘정상과 비정상’, ‘아날로그와 디지털’, ‘자연과 테크놀로지’, 또는 ‘인간과 기계’ 같은 일련의 이항 대립들을 넘어 재구성하려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돌봄’(care)과 ‘인프라’(infrastructure), 그리고 ‘장애’(disability)란 키워드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이는 팬데믹을 통해 전 지구적으로 가시화된 “간호사, 의사, 택배 기사들과 쓰레기 수거 노동자들”과 같은 필수 노동자들의 위상과 무관하지 않다. 2년 넘게 ‘록다운’과 ‘자가 격리’를 오가며,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의 방’에 유폐되었던 이 기간 동안, 우리의 삶을 말 그대로 가능하게 했던 것이 ‘배달 서비스’였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라.
---「인프라 휴머니즘: 팬데믹 이후 자연과 기술, 세상을 돌보기, 곽영빈」중에서
2021년 7월 공개된 FAE2를 위한 연구는 팬데믹 첫해였던 2020년 여름의 무더위 속에서 시작되었다. 반복된 봉쇄 정책은 사회적 상호작용과 미술 경험을 위해서 디지털 플랫폼과 공간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보다 극단적인 (따라서 왜곡된) 구상을 낳았다. 이는 ‘인터넷의 미래를 위한 전 지구적 규모의 디지털 인프라 사업’으로서 메타버스에 대한 공공의 인식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현존하는 디지털 전략이 미술 분야에 얼마나 부족한지를 낱낱이 드러냈다.
---「메타버스를 맞이하며 미래의 미술 생태계가 고려해 볼 만한 다섯 가지 노선, 빅토리아 이바노바, 캐이 왓슨」중에서
예술 분야의 디지털 미래는 기술 발전에 따라 현실과 구분 지을 수 없는, 현실을 능가한 가상의 재현이나 구현이 아닌, 나의 숨이 타인을 구할 수도 해할 수도 있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공동체 감각을 인지하는 데 달렸다. 결국 미술관과 공공 기관들이 운영하는 디지털 플랫폼의 핵심 가치 또한 단순히 새로운 플랫폼으로의 이행이나 새로운 형식을 제안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닌, 이를 통해 새로운 디지털 연대를 어떻게 구성하고 이러한 가치 판단을 현실에 적용할지 고민하게 하는 지점에 있을 것이다.
---「미술관은 무엇을 연결하는가: 온라인 경험과 미술관의 가치, 홍이지」중에서
몰입형 경험은 여러 속성의 감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시각뿐 아니라 일련의 청각적, 운동감각적, 신체적 특징을 지닌다. 몰입은 또한 정서적이다. 사고, 정서, 활동이 한데 얽힌 상호작용적 맥락, 또는 상호 정서적 맥락에 주체가 깊게 관여하는 것이 특징이며, 이를 통해 역동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음으로써 나타난다. 인간과 컴퓨터 사이의 상호작용이 보여 주는 수행적, 심미적 특질들은 “인지를 수행하는 사용자 자신의 경험에 뿌리를 두며” 사용자가 시스템의 운영자인 동시에 수행자 겸 관람객임을 시사한다.
---「전산 박물관학에 대한 짧은 개요, 사라 켄더다인」중에서
본 글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사회사, 미술사적으로 모두 중요하게 떠오른 하나의 현상에 주목하는데, 바로 ‘경험적 진실(experiential truth)의 상실’이다. 후기구조주의 담론 이후, 진실이 상대적으로 존재한다는 명제에 대해 대부분의 인문학자가 이견을 제시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주목하는 ‘경험적 진실의 상실’이란, 입증 가능한 사실(fact)과 허위가 혼동되어 우리가 스스로 진실을 경험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잃어 감을 의미한다.
---「포스트트루스, 파라픽션, 동시대 시각문화, 장선희」중에서
많은 박물관이 ‘벽 없는 박물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웹이 약속하는, 진정으로 분산된, 국제적 박물관 ‘컬렉션들의 컬렉션’의 잠재성은 태반이 실현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하지만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의 박물관과 지식 저장고로서의 박물관 사이의 간극이 좁아진다면, 이미 있는 것을 더 풍부하게 만들고 방문객이 컬렉션과 소장품 기록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주는 청사진이 제시될지도 모른다. 사후적으로가 아니라 처음부터 디지털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 자료를 만듦으로써, 박물관은 완전히 새로운, 온라인 위주의 관람객에게 지식 저장고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 역할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착안해 낼 수 있다.
---「컬렉션들의 연결, 레베카 칸」중에서
한편, C-LAB은 코로나로 인한 급격한 변화에 대응해 현장에서 열리는 물리적 전시를 즉각 조율하고 오프라인 전시, 강연 등의 활동을 온라인 프레젠테이션으로 전환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실험적 혁신을 육성하는 C-LAB의 본질을 고수하여 구체적인 창작 활동 방안을 구상하고 예술가나 시민이 코로나 예방을 위한 예술 및 사회적 활동에 참여하도록 장려한다. 또한 코로나 기간 동안 디지털 환경 구축을 목표로 하여, 예술 발전, 관람객 참여 및 사회적 영향 등 다양한 측면에서 디지털화를 모색해 현재 직면한 고난을 극복하고 미래의 발전을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
---「팬데믹 시대의 문화 실험과 실천, 우다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