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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라다크

카페, 라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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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8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08쪽 | 422g | 130*200*18mm
ISBN13 9791197115400
ISBN10 1197115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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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와 제이미가 라다크를 떠나던 날, 그들을 버스에 태워 보내며 우리는 눈이 퉁퉁 부어 뜰 수 없을 정도로 하염없이 울었다. 다이와 제이미가 없는 카페 두레는 한동안 쓸쓸했고, 우리는 잠깐 외로웠지만 그들의 자리는 다른 이들이 곧 채웠다. 친구에게 부탁해서 집에 있던 플루트를 전해 받았다. 십 년 넘게 손도 대지 않았는데 라다크에서 나는 매일매일 플루트를 불었다. 그러다 보면 누군가는 노래를 하고, 누군가는 기타를 쳤다. 날마다 굽는 카페 두레의 머핀은 누군가의 생일 파티 케이크가 되기도 하고, 친구가 되어 떠나는 여행자를 위한 마지막 선물이 되기도 했다. 멍청하다 싶을 정도로 천진난만하기만 했던 내가 라다크에서 그 모든 것을 감당하며 끝까지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여름의 시작, 세상에서 가장 낯선 존재를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낯선 것들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했던 그때의 나에게 거짓말처럼 나타났던 그들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낯선 존재」중에서

심심하면 윈도우 창을 띄우는 게 아니라 카페의 창문을 열었다. 바람이 살랑거리는 소리와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 무슬림의 기도 소리가 어우러져 음원 차트가 되고, 분홍빛으로 하늘을 적시는 해가 설산 뒤로 숨는 모습은 유튜브 동영상이 되었다. 손님들이 가져오는 따끈따끈한 여행 이야기와 라다크 친구들이 전하는 마을 소식은 검색어 없이도 들을 수 있는 그날의 핫뉴스였다. 친구들은 가끔 낚시성 뉴스를 가져오긴 했으나 웃으면서 넘길 수 있는 귀여운 사기였다. 게임을 하고 싶으면 카페에 놀러 온 동네 아이들과 젠가를 했다. 긴장 가득한 얼굴로 나무 블록을 빼내는 모습을 볼 때면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와 게임에 집중하지 못했지만, 애초에 아이들을 이기려는 생각은 없었기에 상관없었다.
---「거꾸로 가는 삶」중에서

커다란 불을 피워 놓고 그 속에 공양물을 던지는 의식을 마지막으로 만다라는 부서졌다. 일주일 동안 공들여 만든 만다라가 승려 손바닥 밑에서 단숨에 슥슥 지워져 버리는 모습을 숨을 멈추고 지켜보던 나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방금 전만 해도 경이로운 예술 작품이었던 만다라는 순식간에 몇 줌의 모래더미가 되었다. 지켜보던 우리의 표정만 일그러질 뿐 승려들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고,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라다크 사람들은 줄을 서서 만다라 모래를 받아 갔다. 우리도 한줌의 모래를 받아 갖고 있던 종이에 고이 싸 두었다. 소남은 이 모래를 몸에 지니고 있으면 좋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모래를 싼 종이를 손에 쥐고 스탠진이 이전에 이야기한 좋은 카르마가 나의 삶에도 하나둘 쌓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인연」중에서

이스라엘 여행자들의 기행에 대한 이야기에 뜻밖에 내 시선은 창밖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드문드문 보이는 흙산에 그들의 벌거벗은 몸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민둥머리 흙산은 아무리 봐도 살아있는 생물체의 몸 같았다. 여성의 오므린 다리 같기도 하고. 겹겹이 쌓인 코끼리의 코 같기도 하고, 흙을 잔뜩 머금은 악어의 머리 같기도 하고, 몸을 뒤틀고 누운 호랑이의 몸뚱이 같기도 했다. 흙산의 모습은 모두 제각각이었으나 그 느낌이 야생적이며 원시적이라는 것만은 한결같았다. 흉물일 수도 있는 그 거대한 생물들의 벌거벗은 몸은 내게 관능적으로 다가왔다. 군대에서 갖은 스트레스를 받다가 여행을 떠나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대한 자연 한복판에서 알몸이란 옷을 입고 본능을 좇는 모습이 퇴폐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순수하게 느껴졌다.
---「흐린 날의 판공초」중에서

델렉은 나의 볼멘소리에 맞장구를 쳐 주었지만, 고작 몇 달 라다크에 머물렀을 뿐인 외국인이 라다크 사회에 관한 생각을 이러쿵저러쿵 늘어놓는 것이 한편으로는 불편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의 자부심에 상처를 준 것 같아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극복해야 할 문제였다. 언제까지나 라다크의 아름다운 모습만을 보며 침이 마르게 칭찬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경계에 선 나의 눈에 보이는 라다크 사회의 다양한 모습에 대해서 라다크 친구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으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나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말이다. 나는 과연 라다크와 가까워지고 있는 걸까? 이 경계선에서 벗어나 한 걸음 더 다가가야 하는 걸까? 아니면 언제까지나 이 언저리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걸까?
---「LBA에서 나왔습니다」중에서

다른 세계의 문이 열린 듯, 다른 행성에 착륙한 듯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고개를 들어 어디를 봐도 설산이 보였다. 나는 빙그르르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며 나를 둘러싼 하얀 머리의 산을 둘러봤다. 우리를 잡아먹을 듯 시커멓게 드리워져 있던 산의 변신에 모두 넋을 잃은 듯했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던 사람들은 갈라진 하늘에서 나오는 빛으로 인해 비로소 현현한 설산에 홀려 하나둘 분지에서 빠져나왔다. 사방팔방으로 흩어진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아무 말이 없었다. 바닥에 흐트러진 맥주병과 음식물 쓰레기, 토사물이 보였다. 사람들의 얼굴은 추위와 숙취에 시달려 추레했다. 기묘했던 파티의 잔해는 너저분했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은 그런 추함조차 압도했다.
---「사막의 트랜스 파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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