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한 일이다. 그동안 수많은 낚시꾼이 이곳을 다녀갔을 것이고, 그중에는 고양이를 싫어하거나 몹쓸 짓을 일삼는 낚시꾼도 더러 있었을 텐데. 혹시 목과마을의 너그러운 풍경이 사람들을 관대하게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방파제 고양이들만의 특별한 영업 비밀이라도 있는 것일까.
바다는 맘껏 푸르고 봄볕은 저리 내리쬐는데, 두 마리 고양이는 오늘도 방파제에 나와 영업을 한다. 물고기 주세요. 새우도 괜찮아요. --- p.53 간식까지 얻어먹은 고양이들은 조사전 앞뜰에 여기 저기 널브러져 그루밍을 했다. 코발트블루에 가까운 가을 하늘은 눈이 시리게 단청 너머로 펼쳐져 있는데, 고양이는 그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그루밍을 하고 꾸벅꾸벅 졸기까지 했다. 그루밍을 끝낸 노랑이는 조사전과 푸른 하늘을 뒤로하고 아예 편하게 엎드려 낮잠을 청했다. 이 멋진 풍경을 액자에 담아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가을날이다. 달그랑 달그랑, 어디선가 풍경소리 그윽하게 바람에 실려 온다. --- p.112 지구상에서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는 동물이 있다면, 아마도 고양이일 것이다. 그리고 이 비난의 목소리가 가장 높은 곳이 바로 한국이다. 한국의 고양이만 유별난 것도 아닌데, 거 참 이상하다. 지구상에서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열렬한 사랑의 대상이 되는 동물이 있다면, 그것도 고양이일 것이다. --- p.344 |
지난 17년간 여행가로 살아왔던 저자가 고양이 영역에 발을 들여놓은 지 벌써 6년. 어쩌다 집 앞에서 마주쳤던 고양이 가족과의 만남으로 동네 곳곳의 길고양이들과 인연을 맺고 그들의 삶을 기록하기 시작한 시인 이용한. 그는 그동안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를 비롯해 [명랑하라 고양이] [나쁜 고양이는 없다] 등 고양이 책 세 권을 냈고, 첫 번째 권은 일본과 대만, 중국에서 번역 출간되어 다른 언어의 독자들과 만나고 있으며, 시리즈 전편은 길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한 세계 최초의 다큐멘터리 영화 [고양이 춤]의 원작이 되기도 했다. 사실 세 권으로 마무리된 [안녕 고양이] 시리즈는 세 권에서 끝낼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다. 그의 동네와 이웃 마을에서 여러 번에 걸쳐 쥐약을 놓는 바람에 책에 실린 상당수의 고양이가 세상을 떠났고, 남아 있던 고양이조차 영역을 옮겨버렸기 때문이다.
고양이가 사라지는 마을. 하지만 시인은 거기서 절망하지 않았다. 한번 맺은 고양이와의 인연은 너무 질겨 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전국을 유랑하는 고양이 여행을 떠났고, 2년 반 넘게 고양이 여행자로 살았다. 한번이라도 고양이 사진을 찍어본 사람이라면 낯선 곳에서 처음 보는 고양이를 카메라에 담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것이다. 따라서 고양이 여행은 분명 기존의 여행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고양이는 기다리는 법이 없었으므로, 기다림은 늘 그의 몫이었다. 방방곡곡 발품을 팔다 보니 그에 따른 비용 또한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정작 그의 고충은 다른 데 있었다. 고양이는 요물이니까 없애야 한다는 잘못된 편견들, 그 편견에 맞서는 그에게 날아오는 가시 돋친 말들, 예나 지금이나 진전이 없는 길고양이의 현실이 그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계속 여행할 수 있게 해줬던 건은 고양이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간간히 마주치는 따뜻한 손길들 덕분이다. 그리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정다운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정다운 고양이들이 있었다는 것. 하루하루 생사가 넘나드는 폭풍 같은 나날 속에도 흐리고 가끔 고양이. 내일은 대체로 고양이 맑음. 새로운 고양이 여행 시리즈는 국내 편과 해외 편으로 나눠 1권 [흐리고 가끔 고양이] (국내 편)를 이렇게 먼저 선보인다. 본격 고양이 여행서인 이번 책에는 제주 가파도에서 울릉도까지, 전남 구례에서 강원도 원주까지, 전국 60여 곳 고양이들의 면면한 삶의 현장을 오롯이 담았다. 거문도에서만 볼 수 있는 어장 관리 고양이, 4대강 공사로 수몰이 예정된 마을을 마지막까지 지키는 금강마을 고양이, 운길산역의 명물 역무원 고양이, 달동네 달방 사는 개미마을 고양이, 아름다운 풍경을 벗 삼아 살아가는 지리산 고양이, 캠퍼스와 카페를 영역으로 삼고 캣맘, 캣대디의 보살핌을 받아 살아가는 수많은 고양이들,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 작은 동물을 바라보는 저자의 따뜻한 시선이 320여 컷에 이르는 풍성한 사진과 시인 특유의 아름다운 글귀와 함께 녹아있다. 자연이 인간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단순한 사실을 잊지 않고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펼치면 항상 옆에 있어왔지만 모르고 지나쳤던 아름다운 풍경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꽃이 피고 지고 계절이 오고 가도 그의 발걸음은 계속될 것이다. 믿는다. 작가의 말 어쩌면 이 책에 등장하는 고양이들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기는 고양이에게 관대한 세상이 아니므로 더더욱. 만일 누군가 이 책을 들고 여행을 떠나 책 속의 고양이를 만나게 된다면, 구구절절한 내 마음도 함께 전달해주리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