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바다 위로 미끄러지는 배를 따라가는
여행의 게으른 동반자,
커다란 바닷새, 알바트로스를
선원들은 재미 삼아 잡곤 한다.
선원들이 갑판 위에 그것들을 내려놓자마자,
이 창공의 왕은 어설프고 수치스러워져서
커다랗고 흰 날개를 마치 질질 끄는 노처럼,
옆구리에 불쌍하게 내려놓는다.
날개 달린 이 여행자는, 얼마나 어색하고 무기력한지!
이전에 그렇게 아름다웠던 것이 이렇게 우스꽝스럽고 추해지다니!
한 선원은 담배 파이프로 주둥이를 성가시게 하고,
또 다른 이는 다리를 절며, 날아다녔던 불구자 흉내를 내는구나!
시인은 폭풍우를 누비고, 사수를 비웃는
이 구름의 왕자와도 같다;
야유 소리 가운데 지상으로 추방되었기에,
그의 커다란 날개는 걷는 데 방해만 되는구나.
---「알바트로스(L’ALBATROS)」중에서
나는 네 동정심에 애원한다, 내 마음이 추락한 깊은 어둠 속에서,
내가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 그대여.
그곳은 밤이면 공포와 신성모독이 떠도는,
납빛 수평선에 둘러싸인 음울한 세계다;
열기 없는 태양이 여섯 달 그 위에 뜨고,
나머지 여섯 달은 밤이 땅을 덮는다;
이곳은 극지보다 더 벌거벗은 나라다;
-짐승도, 개울도, 녹음도, 숲도 없는!
그런데 얼음 태양의 차가운 잔혹함과
그 옛날 혼돈과도 같은 이 무한한 밤보다
더한 공포는 세상에 없다;
어리석은 잠에 빠질 수 있는,
가장 천한 동물들의 운명을 나는 시기한다,
그만큼 시간의 실타래는 천천히 감긴다!
---「심연에서 부르짖었다(DE PROFONDIS CLAMAVI)」중에서
내 옆구리에서 끊임없이 악마가 들썩거린다;
그는 내 주위에서 만져지지 않는 공기처럼 떠돈다;
그를 삼키면 내 폐는 불타올라
영원한 죄악의 욕망으로 가득 차는 듯하다.
이따금 그는 예술에 대한 나의 큰 사랑을 알기에,
여인들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여인의 모습을 취한다,
그리고, 독실한 신자인 척하는 허울 좋은 핑계로,
내 입술을 비열한 약에 익숙해지게 한다.
그는 이렇게 신의 시선에서 멀리,
깊고 황량한 권태의 벌판 한가운데로
지치고 깨져서 헐떡이는 나를 데리고 간다,
그리고 혼란스러운 내 눈 속에
땀에 젖은 옷가지와 벌어진 상처,
피로 물든 파괴의 도구를 던진다
---「파괴(LA DESTRUCTION)」중에서
시인은 자신의 작품이 풍기문란을 유발한다는 죄목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을 때, 그에 반박하기 위해 ‘전체로 읽어달라’고 간청한다. 그랬을 때 오히려 ‘끔찍한 도덕성이 드러날 것’이라고 말이다. 그뿐 아니라 ‘작품을 잘 쓰기 위해서는 자신이 쓰려는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 인물처럼 생각하고 말해야 그 인물과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마찬가지로 작품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도 작품 속의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자 또한 시인의 시들을 그의 주장에 따라 읽으려고 노력했기에 다른 독자들과 다른 결론을 얻을 수 있었던 만큼 이 책의 독자 여러분들도 시인의 주장대로 그의 작품을 읽어주기를 권하는 바이다.
시인은 전 작품을 통해서 그가 사랑하는 여인이 지닌 절대적인 아름다움과 그 특성들을 묘사하면서 그녀에 대한 예찬과 예찬을 넘어 경배에 이르기까지 그녀를 우상으로 삼아 사랑을 표현했다. 반면 전혀 다른 상반된 이미지로 물질적으로나 사랑에 있어서 부패한 여인의 모습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렇게 시인의 작품은 시인의 실제 삶 속에서 만났던 여인들, 잔 뒤발, 마리 도브렁, 마담 사바티에 등등의 여인들과의 관계에서 나온 것이지만, 작품만 보면 도저히 풀리지 않는 문제들에 봉착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시인에게 작품을 쓰는 동기, 이미지만을 제공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시를 읽다 보면 시인이 영혼의 문제를 다루고 있음을 곧 알게 된다. 그러니 역자는 시인의 머릿속의 완벽한 그녀를 그리기 위해 자신이 만났던 여인들로부터 다양한 특성들을 뽑아서 자신이 절대적으로 사랑하는 정신적인 여인의 모습을 그려냈다고 생각한다.(중략)
보들레르에게 천재적 재능이란 ‘평범한 것을 창조’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시인이란 ‘자신이 그리려고 하는 것을 정확히 그리는 사람’이라고 한 만큼 그는 오늘날까지도 우리 인간의 삶과 밀착된 평범한 문제들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그의 시는 외설적일 뿐 아니라 종교적인 문제와도 연관을 가지고 있다. ‘시의 종교’라고도 불리는 보들레르의 시들은 풍부한 성경적인 내용을 전체적으로 그리면서 가톨릭 국가인 프랑스에서 기독교의 오래된 문제를 파헤치고 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옮긴이의 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