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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그 한 마디

미안해, 그 한 마디

양윤덕 | 청어 | 2022년 09월 1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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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9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120쪽 | 246g | 152*225*20mm
ISBN13 9791168550612
ISBN10 116855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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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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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에 서재에서 글을 쓰다가 문득 미안한 생각이 스쳐 안방 침대에서 잠든 남편을 보러 갔다. 등을 켠 채 내 빈자리를 향해 새우처럼 움츠리고 홀로 잠든 남편을 보았다. 왠지 쓸쓸해 보였다. 흐트러진 이불을 보는 순간 엎치락뒤치락 나를 기다리다 홀로 잠이 들었구나, 생각을 하며 잠에서 깨지 않도록 살포시 그의 팔을 베고 누웠다.
내가 글을 쓴다고 남편과 함께 잠자리에 드는 걸 소홀히 했구나, 잠든 남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안쓰럽고 짠한 마음에 손을 가만히 잡았다. 잠결에 그도 내 손을 꼬옥 잡았다. 괜히 눈물이 났다. 글 쓰는 일이 뭐라고, 흐르는 눈물이 그의 팔을 적셨다. 그때 훌쩍이는 소리를 남편이 들었나 보다.

“여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니야, 아무것도. 빨리 자요. 앞으로 함께 잘게. 미안해요.”
“괜찮아. 당신은 잠을 너무 늦게 자. 건강 해치니 제때 자.”
남편이 나를 끌어당기며 등을 토닥였다. 서로의 가슴에서 연하디연한 말이 한동안 달빛처럼 부드럽게 풀려 나왔다.
남편의 팔을 베고 누워 ‘우리 부부’를 생각해보았다. 사소한 의견 충돌로 티격태격 다투는 날들이 많았다. 좋지 않은 감정은 그때마다 하루살이가 되어 다음날이면 사라졌다가 또다시 다투고… 하지만 다투고 난 다음에는 늘 더 애틋한 사랑의 감정이 되었다. 그래서 간혹 큰 충돌에도 이혼까지 가지 않는 걸 보면 그런 날들이 쌓여 두터운 정이 되었나 싶다.
이런저런 생각 속으로 점점 깊이 빠져드는 순간 문득 지난날이 스쳤다. 내가 한때 암 수술 날짜를 받아둔 때였다. 다시는 집에 못 올 것만 같아 펑펑 울다가 날을 꼬박 새운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 평소처럼 남편에게 물을 주려고 주방에서 컵에 물을 따라 안방으로 들어서려는데, 근심 가득한 얼굴로 침대에 홀로 덩그러니 누워 있는 남편의 모습이 보였다. 너무 쓸쓸해 보여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와락! 터져 나왔다. 애써 울음을 참으려 해도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이 일도 마지막이 될 것만 같아 자꾸만 눈물이 났다. 애써 눈물을 참으며 남편에게 물을 건넸다.
다시 남편의 팔을 베고 누워 소원을 빌었다.
‘이 남자 곁에 오랫동안 머물게 해주세요. 수술 잘 마치고 살아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해주세요.’
간절히 정말 간절히 신께 빌었다. 나 없는 세상에서 홀로 외롭게 잠자리에 들 남편을 생각하니 자꾸만 애처롭게 느껴졌다. 그래서 망설이고 망설이다 진심으로 말했다.
“여보, 혹시 내가 다시 집에 못 오면 혼자 살지 말고….”
말하고 나서 펑펑 울었다. 내가 건강할 때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만 혼자서 외롭게 평생을 쓸쓸히 살아갈 남편을 생각하니 그 마음이 앞섰다.
“당신은 당연히 건강해져 올 거야.”
남편이 자꾸만 절망으로 치닫는 나에게 희망을 버리지 않도록 위로해 주었다.

그 후 우리 부부의 간절한 바람을 하늘이 들어주었는지, 수술도 잘 마치고, 36회 항암치료까지 잘 넘기고 건강도 예전 상태로 회복이 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남편하고 함께 하는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감사할 뿐이다.
나는 침대에 남편과 나란히 누울 때면 연애 시절처럼 아직도 설렌다. 조금 과장을 하자면 처음 남편을 만났을 때 첫날 같은 사랑의 감정이 그대로 되살아난다. 그래서 우리 둘만의 침실은 집 안에서 가장 중요한 둘만의 자리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가장 행복한 시간을 갖는다. 함께 꿈을 꾸는 곳이고, 사이가 벌어졌던 마음을 한마음 한뜻으로 제일 쉽게 만들어 가는 곳이다. 그야말로 사랑과 희망의 보금자리다. 그가 없을 때는 그 자리가 유달리 공허해 엎치락뒤치락하다 뜬눈으로 날을 지새울 때가 많다.
한번은 다투고 나서 남편이 침대 내 자리에 독서대를 갖다 놓았다. 내가 가장 아끼는 소중한 그 자리에 내가 아닌 딴 물건을 놓다니, 순간 섭섭한 마음이 불같이 일어났다.
“당장 집어치워!”
아이처럼 울며불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지금도 남편은 침대에 누울 때면 곁에 내 베개를 가지런히 챙겨 놓는다. 그리고 내가 와서 눕기를 바란다. 어느 때는 내가 올 때까지 밤늦도록 기다린다. 그래서 하던 일을 다음 날로 미루고 잠자리에 든다.
‘부부의 침실만큼은 하느님도 침범할 수 없는 성스러운 곳이어야 하리. 함께 잠자고 일어나 함께 밥 먹으러 가는 곳이고, 다투고 둘로 갈라졌던 마음이 하나가 되는 곳이며, 함께 누워 박꽃 같은 둘만의 이야기를 하얗게 피워내는 곳이다. 그리고 밖에서 상처받고 오는 날엔 서로의 위로가 있는 곳이기에 우리 둘이 아니면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둘을 위한 명당자리이다.’
평소 내 생각이 점점 뚜렷해진다. 나는 지금 나의 베개가 가지런히 놓여있는 그의 곁으로 간다. 새벽 3시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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