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식당이 있다.
붐비지도, 그렇다고 한적하지도 않은 어느 골목길,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지나쳐갈 만한 그런 평범한 모습으로. 마천루가 즐비한 국제도시이든 중세시대를 연상케 하는 유럽의 어느 고도(古都)이든 이런 골목길 하나쯤은 있는 법이고, 이런 골목길에는 역시 이런 평범한 식당 하나쯤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길가의 가로수에 눈길을 주는 이들이 드물듯, 이런 식당에 관심을 갖는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 「프롤로그」 중에서
“만든 지 3일이 안 된 무덤에서 퍼온 흙 한 줌, 엄마 배 속에서 나온 아기의 첫 울음소리, 사형당한 죄수의 시체에서 얻은 머리털 몇 가닥, 기원전 백 년경, 아니 천 년인가? 아무튼 오래 되기만 했지 맛대가리라고는 고양이 눈물만큼도 없는 와인 세 방울.”
솥에는 이런 재료들이, 한 번 빠지면 빠져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늪의 색을 띠며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덩달아 진의 속도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난 이것들이 뭔지 알고 싶지도 않다고!’
--- 「마녀식당 비긴즈」 중에서
여자는 아무 말 없이 진을 빤히 바라보았다. 왠지 어색한 상황이 연출됐다. 여자의 눈동자는 새까맸는데, 갈색빛이 섞여 있는 보통 동양인의 눈과 달리 오로지 검기만 한 눈이었다. 여자가 그 눈으로 바라보자 진은 마치 덫에 걸린 것처럼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몇 초, 혹은 몇 분, 아무튼 길게는 느껴졌으나 대강의 시간도 가늠되지 않은 시간이 흐른 후 마침내 여자가 입을 열었다.
“저는 돈이 없어요.”
--- 「마녀식당 비긴즈」 중에서
한 입씩 한 입씩, 줄어드는 양을 아쉬워하며 핫초콜릿을 입에 넣던 선미는 갑자기 혀끝에 머물러 있던 알싸함이 입 안 전체로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혀가 마비되는 것만 같았다. 이제 매운 느낌은 더 이상 ‘맛’이 아니었다. ‘통증’이었다. 순식간에 달콤함은 사라지고 오로지 맵고 고통스러운 맛만 입 안에 가득 찼다.
혀와 입술이 아리고 콧물이 줄줄 흘렀다. 아저씨가 뜨끈한 해장국을 들이마실 때처럼 땀도 비 오듯 쏟아졌다. 그럼에도 멈출 수가 없었다. 핫초콜릿에 중독된 것이었다.
이제 핫초콜릿은 마지막 한 스푼만 남았다. 그것을 입에 넣자 불에 데는 듯한 통증이 입 안을 넘어 몸 전체로 번져 나갔다.
“무, 물, 물!”
다급히 물을 찾았다. 여자가 가져다 준 물을 벌컥벌컥 마셨지만 매운맛으로 인한 고통은 사그라지기는커녕 더 무서운 기세로 선미를 괴롭혔다. 그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몸부림을 쳤다. 의자가 바닥에 넘어지고 선미 자신도 바닥에 나뒹굴었다.
“사랑이란 게 원래 그래. 첫맛은 달콤하지만 끝을 향해 갈수록 알싸한 고통이 심해지지.”
--- 「핫, 핫초콜릿」 중에서
“꼬마, 그런데 왜 하필 진 곁에 있고 싶다는 소원을 비는 거지? 원한다면 진이 너와 사랑에 빠지게 해줄 수도 있는데.”
길용은 가만히 생각하다 대답했다.
“그런 식으로 누나의 사랑을 얻고 싶진 않아요. 그건 가짜 사랑이니까요. 저는 정정당당하게 누나의 마음을 얻을 거예요. 시간은 걸리겠지만 저는 겨우 열일곱이잖아요? 기다릴 시간은 충분해요.”
마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래, 그게 바로 진짜 사랑이지.”
마녀가 손을 내밀었다.
“이걸로 계약은 성립된 거다.”
--- 「네 영혼을 위한 토마토 수프」 중에서
이제 윤기는 출근할 회사가 있고, 돌아갈 집이 있고, 손을 잡아줄 사랑스러운 연인이 있는 남자가 되었다. 비록 야근과 회식으로 점철된 ‘월화수목금금금’의 한 주, 한 주를 보내고 있지만, 비록 머리숱이 점점 줄어들고 배가 점점 불러오고 있지만, 불과 몇 달 전 자신이라면 꿈도 꾸지 못했을 모든 것들이 이제 그의 손에 있었다. 손가락 두 개가 사라진 그 두 손에.
--- 「힘을 내요, 영계백숙」 중에서
“할머니의 기억을 주세요.”
할머니는 황당함을 숨기지 않았다. 너희가 대신 설명 좀 해 봐라, 하는 눈빛으로 길용과 진을 바라보았으나 여기에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마녀뿐이었다.
“슬픔, 기쁨, 분노, 행복, 고통…… 인간이 살면서 겪는 모든 경험과 감정의 흔적들, 그 흔적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기억을 내게 주세요. 지금까지의 당신 인생이 차곡차곡 쌓인 기억은 실로 어마어마하겠지요.”
--- 「연분말이 잔치국수」 중에서
“엄마가 아무리 그래도 난 아빠가 싫어.”
“왜?”
“나, 아빠가 엄마한테 어떻게 했는지 다 기억해. 엄마를 때리고 욕하고…… 게다가 아빠는 엄마한테 여자로서 큰 상처를 줬잖아.”
“상처? 받았지 물론. 온몸을 가르듯 아팠지. 그런데 말이야, 진아.”
엄마는 말을 멈추고 몸을 돌려 진의 머리칼을 쓸어 넘겨주었다.
“세상에 아물지 않는 상처는 없어.”
진은 물끄러미 엄마를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엄마의 미소가 달처럼 빛났다.
“우리 진이가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엄마 말 한마디만 명심해. 살아 있는 한, 세상에 아물지 않는 상처는 없는 거야.”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눈을 감았다. 잠이 올 것 같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잠의 휴식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 「엄마표 김치콩나물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