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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꽃 빌라의 탐식가들

안개꽃 빌라의 탐식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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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꽃 빌라의 탐식가들 (큰글자도서)
[도서] 안개꽃 빌라의 탐식가들 (큰글자도서)
장아결 저 팩토리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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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꽃 빌라의 탐식가들 (큰글자도서)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9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320쪽 | 398g | 134*200*20mm
ISBN13 9791165346287
ISBN10 1165346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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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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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은 앞치마를 입고 부엌에서 요리하는 중이었다. 집 안이 고요해 유정이 나무 도마에 채소 써는 소리가 잘 들렸다. 짧은 간격으로 ‘탕탕탕’이 아니라 간격이 꽤 있는 ‘-탕-탕-탕’ 이었다. 소리로 보아 칼질이 썩 능숙한 것 같지는 않지만, 간헐적으로 들리는 도마 소리가 정감 있었다. 소미는 싱크대에 물을 틀어 수압을 확인하다가 도마 위를 봤다. 부엌에 난 창으로 유정의 인상처럼 따뜻하고 참한 빛이 들어와 나무 도마 위를 비추었다. 큼직큼직하게 썬 시금치와 어슷하게 썬 고추, 반달썰기 한 애호박에서 싱그러운 풋내가 올라왔다. 모란은 소미를 거실로 이끌었다. 냄비에 물 끓는 소리가 나며 구수한 멸칫국물 냄새가 집 안에 퍼졌다. 유정이 된장을 물에 풀자 멸칫국물 냄새는 곧 된장국 냄새로 변했다. 고추장도 조금 넣고 고추도 썰어 넣어, 구수하면서도 칼칼한 냄새였다.
---「시금치 된장국 냄새가 나는 집」중에서

소미가 대학을 졸업한 지는 2년쯤 되었기에 학생은 아니지만, 모란은 소미를 그렇게 불렀고 소미도 그 호칭이 싫지 않았다. 지금까지 본 집 (이랄지 방이랄지) 대여섯 군데를 떠올려봤을 때, 소미의 생각도 모란과 다르지 않았다. 소미는 빌라 3층의 모란의 집으로 올라가서 임대차 계약서를 쓰고 모란이 일러주는 말에 예의 바르게 대답하면서도, 머릿속엔 얼른 저녁 먹을 생각밖에 없었다. 모란 도시락에 취업한 것도, 요리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먹는 걸 좋아한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적어도 매일 편의점 도시락이나 삼각김밥 같은 것만 먹지는 않을 것 같았다. 경찰 시험에 뛰어들 때는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이었다면, 이번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면서는 절대로 하기 싫은 일만 제하고 남은 곳에 모조리 지원했다. 소미는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정의롭고 따뜻한 경찰이 되고 싶었다.
---「시금치 된장국 냄새가 나는 집」중에서

정신을 차려보니 앞선 지원자의 답변이 끝나고 면접관이 유정에게 질문을 던졌다.
“네,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잘 들었습니다. 그러면 기내에서 만약 승객이 난동을 부린다면 어떻게 대처할 겁니까? 취객이 소란을 피우면서, 다른 승객들에게 불편을 줄 때요. 임유정 씨부터 답변해 보세요.”
유정은 “네?” 하고 되물었다. 물론 속으로만. 면접을 준비할때 승객 서비스에 대한 답변 위주로 연습하고 안전은 비중 있게 대비하지 않았다. 승무원 카페에서 면접 후기를 봐도 안전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유정은 숨을 골랐다.
“자기소개서에 적었던 대로, 저는 서비스 정신과 적극성을 가진 것이 가, 강점입니다. …… 항공사의 매뉴얼에 따라 적극적이면서도 친절한 태도로 대처하겠습니다.”
유정은 귀로 가늘게 떨리는 자기 목소리가 들어왔다.
“그래도 그 승객이 따르지 않으면요?”
답변이 불충분했는지 면접관이 추가 질문을 했다. 면접관의 안경 너머로 보이는 날카로운 눈빛에 유정은 움칫했다. (중략)

“저, 저는 승객들이 편안하고 안전한 비행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승무원의 본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난동을 피우는 승객 역시 중요한 고객인 것은 맞지만, 다른 대다수 승객이 불편해하지 않을 수 있도록……” 면접관이 유정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지원자분 지금 시간을 너무 많이 썼어요. 다음 분 질문할 게요.”
유정은 ‘위스키’ 입 모양으로 미소를 박제한 채 다음 지원자의 유창한 언변을 들어야 했다. 그는 유정이 봐도 뽑고 싶게 답변했다. 유정은 정장에 갇힌 온몸으로 땀을 쏟으며 가까스로 앉아 있었다. 비행기를 탄 것처럼 귀가 먹먹해지면서 주변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그 뒤로 유정에겐 다시 질문이 오지 않았다.
---「시작은 양념 반 후라이드 반」중에서

한솔은 바닥에 댄 등이 시렸지만 다리는 보라의 온기로 따뜻했다. 다섯 사람은 서로의 다리를 베고 찌그러진 오각형 모양으로 누워 있었다. 누군가의 다리를 베고 누운 게 참 오랜 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을 안 보는 지금만 할 수 있는 얘기를 꺼냈다.
“얘들아. 너네 고슴도치 딜레마라고 알아?”
“그게 뭔데요?”
“고슴도치들은 춥고 외로워서 다가가면 서로 가시에 찔리고, 가시에 찔리는 게 싫어서 멀리 떨어지면 춥고 외롭대. 그래서 걔네는 가시가 없는 머리를 맞대고 잔대. 고슴도치들 보면 머리에만 가시가 없잖아.”
“아, 우리처럼?”
보라가 한솔의 허벅지에 자기 뒤통수를 문질렀다.
“야야, 간지러워.”
한솔이 몸을 움츠리며 의도치 않게 소미를 간지럽혔다. 도미노처럼 상대의 다리에 머리를 비비고 간지럽혔다. 사람이 없는 공원에서 한바탕 자지러지게 웃었다.
---「표고버섯 미역국, 이별」중에서

내일 또 어떤 일이 닥칠지는 모르겠지만 하우스 메이트들은 웃으며 건배했다. 식탁 위를 가득 채운 접시가 바닥을 드러내고 난 뒤에도 다섯 사람은 오랫동안 식탁을 떠나지 않았다.
---「식칼, 장도리, 레드 와인이 있는 만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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