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달도 버티지 못하고 나는 명칭만 할리 데이비슨 전문점 ‘할리’의 문을 닫아야만 했다. 그동안 할리 데이비슨은커녕 발바리 같은 스쿠터 한 대도 가게를 찾지 않았다. 가게 보증금마저 털리고 완전히 빈털터리가 되어버린 내게 남은 것이라고는, 현실에 굴복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전적으로 현실에 달려 있다는 깨달음뿐이었다. ---「안녕 할리」 중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자 우리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얼마 전만 해도 농사지을 땅이 없는 아이들은 근처에 있는 공단에 가서 취직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공단에 가도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공장에서 우리를 뽑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작년까지 멀쩡하게 돌아가던 공장이 아예 없어져버리기도 했다. 뉴스에서는 미국에서 벌어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부실 사태로 인한 글로벌 경기 침체의 영향 때문이라고 했다. 충격이었다. 전 국민을 상대로 설명하는 그 긴 경기 침체의 이유 중에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단 한마디도 없었다. ---「조공원정대」 중에서
시간이 흘러갈수록 나는 화장실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설사병 환자처럼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다. 약속된 이십오 분 중 벌써 이십일 분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제는 내 옆에 포탄이 터져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도 피자를 먼저 배달해야 될 판이었다. 나는 서서히 민방위 전체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 피자 경쟁력을 위해 박한 시급에도 수시로 목숨을 걸고 도로를 달리는 내게 국가가 이런 식으로 태클을 거는 것은 부당했다. 뭔가 강력한 항의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느 추운 날의 스쿠터」 중에서
처음 철거 용역 제의를 받은 날 나는 헤드기어를 붙들고 펑펑 울었다. 초능력 인간의 맞수인 초능력 악당으로 전락하는 순간을 맛봐야 하는 자괴감 때문이었다. 적어도 자해 공갈을 하는 동안에는 헤드기어를 쓰지 않아도 됐다. 때문에 사람들에게 헤드기어 맨이 나쁜 놈이라는 인상을 심어줄 염려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미 펀치 드렁크에 걸린 나로서는 철거를 할 때 헤드기어를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들은 이제 헤드기어 맨을 나쁜 놈으로 생각하고 손가락질을 할 것임에 틀림없었다. 게다가 나는 철거 때문에 엄마를 잃은 기억까지 있었다. 이래저래 나로서는 이 일이 온당치가 않았다. 하지만 하겠다고 했다. 어떻게든 살아서 내 자식을 키워야 했다. 내가 끝끝내 헤드기어 맨이 되지 못한다고 해도 내 자식을 잘만 키운다면 그 아이는 약한 자들을 위해 그 어떤 초능력 인간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헤드기어 맨」 중에서
저녁 무렵, 드넓은 야동의 바다에서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해주던 이본좌가 경찰에 붙잡혔다는 인터넷 기사를 봤다. 약 이만 개 정도의 주옥같은 파일들을 올리고 난 다음이었다. 아쉬웠다. 여자 친구도 없고 여자 만날 돈도 없는 내게 이본좌의 파일은 여자 친구의 자리를 대신해주었기 때문이다. 국가가 원망스러웠다. 청년들이 변변한 직장 하나 잡지 못하고 판판이 노는 현실을 타개해주지도 못하면서 그나마 돈 없는 청년들의 위로가 되어주었던 저런 사람까지 잡아 가두면 도대체 청년들의 욕구불만은 무엇으로 잠재울 것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이런 물음을 청와대나 경찰청 게시판에 올리지는 않았다. 올려봐야 그들이 대답해줄 것 같지도 않았다. ---「유글레나」 중에서
나는 당신도 사랑하고 당신 어머니도 사랑해요. 그러니까 말예요. 당신 어머니와 자지 않을 때는 당신과 잠자리를 할 수도 있어요. 보노보 원숭이처럼요. 대신 내가 회복해서 일하러 나갈 때까지 당신이 나와 내 딸에게 먹을 것만 조금 벌어다 주는 건 어때요? 여자의 어이없는 제안에 나는 잠깐 멍한 표정이 되었다. 그럼 나도 보노보 원숭인지 뭔지가 되라는 얘기야?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숭이도 그렇게 사는데 우리라고 못할 게 뭐 있어요? 당신이 생각만 바꾼다면 가능해요.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우린 원숭이가 아니라 사람이잖아. 종류가 다르다구! 하지만 그 이상은 어쩌지 못했다. 병실에 들어선 어미가 도끼눈을 뜨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미운 고릴라 새끼」 중에서
구조 요청을 하는 사람들은 넘쳐납니다. 하지만 같은 시간에 모두를 구할 수는 없어요. 자연히 누군가를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전에는 먼저 구조를 요청한 사람 순이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제게 돈을 지불하는 사람을 먼저 구하죠. 돈에 따라 목숨의 가치가 달라진다고 했는데요, 이렇게 질문해봅시다. 그렇다면 부자는 부자라는 이유로 가난한 사람보다 목숨의 가치가 없다는 겁니까? 똑같이 도와달라고 손을 내민다면 부자라는 이유로 외면해야 합니까?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자신의 목숨 값을 내고 그 가격에 맞는 서비스를 받는 것이 합리적이죠. 자신이 받은 것에 대해 대가를 치르는 것. 그것이 정의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돈 없는 분들은 경찰이나 응급구조대에 도움을 요청하세요. 그런 서비스는 공짜잖아요. ---「악당의 탄생」 중에서
나아마와 가정을 이루게 되면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나는 나의 이야기를 시작할 생각이다. 세상을 창조한 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신께 질문을 한 죄로 에덴에서 쫓겨난 부모님, 아담과 하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줄 것이다. 그리하여 그 핏줄을 이어받은 나는 선과 악을 주관하는 내 세상의 주인이 될 것이다. 하지만 배꼽을 가진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는, 나의 자식들에게 절대로 보여주지 않을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