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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년식탐

풍년식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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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11월 08일
쪽수, 무게, 크기 356쪽 | 630g | 150*220*30mm
ISBN13 9788990828668
ISBN10 899082866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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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황풍년
1964년 전남 순천에서 나서 순천과 서울에서 공부를 하고 광주에서 잡지와 책을 펴내는 일로 밥벌이를 한다.
〈전남일보〉 기자와 〈광주드림〉 편집국장으로 일했고 지금은 월간 〈전라도닷컴〉과 도서출판 전라도닷컴의 편집장 겸 발행인을 맡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발 딛고 사는 ‘지금, 여기’의 삶과 문화를 중심에 두는 세상을 꿈꾸며 ‘아름다운 전라도말 자랑대회’, ‘전라도 그림전’, ‘촌스럽네 사진전’, 전라도 답사 같은 다양한 지역 행사를 여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이런저런 해찰을 부리고 있다.
광주방송과 전주방송의 인물다큐 ‘TV에세이 고향사람들’ MC, 광주 MBC 국악프로그램 '新얼씨구학당‘ 패널을 맡기도 했으며 현재는 광주 KBS ‘열린마당’ 패널, 광주 MBC ‘테마기행 길’ MC, 광주방송 라디오칼럼 등을 통해 열심히 지역문화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저서로 《벼꽃 피는 마을은 아름답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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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짐이 토란탕 한 그릇을 떠 주신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토란탕을 한 숟가락 떠서 호호 불다가 입에 넣는다. 고소하고 감미로운 수프처럼 고운 질감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다. 들깨물에서 한 번 더 삶아진 알토란은 더욱 더 보드랍게 으깨어진다. 뜨뜻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지면서 후끈해진다. 아짐은 노인들에게 보양식이라 하지만, 노소를 가릴 것 없이 기력을 북돋아줄 게 틀림없는 들깨죽이요 알토란탕이다. --- p. 71

스물한 살에 신랑 얼굴도 모르고 산골마을에 시집와 5남매를 낳아 길러온 우리네 엄니다. 남편 때문에 폭폭하고 속상한 날들도 많았다.
그러나 아짐은 예나 지금이나 고생한 것이 없다 한다. 큰아들이 목수시켜 튼튼한 두부판을 짜 와서 좋고, 인천 사는 작은 아들이 부뚜막을 함께 만들어줘서 흐뭇하다. 전주 사는 큰딸은 늘 마중을 나와서 편하고, 심지어는 두부 먹으러 온 손님이 콩물 거르는 맞춤한 베를 떠다 줘서 고맙다.
몹쓸 기억일랑 훌훌 털어버리고 선한 얼굴, 착한 마음자리에 좋은 기억만을 쌓아온 아짐이 그 순박한 손으로 두부를 빚는 것이다. 옛날 방식으로….
“고생 아녀. 그냥 재미여. 겁나게 재밌어. 손님들이 맛있다고 헌 게. 고만 흘라고 혔는디. 사람들이 와서 밥통을 내서 묵고 찾아싼게 또 했어. 사람들이 고생흔게 가스로 해라고 하도 해싸서 십만 완을 주고 사서 해본게 요상흐드마. 맛이 없드라고. 그래서 다시 불을 때서 해.” --- p. 90

크~아! 홍애국. 눈, 코, 입은 물론이거니와 여기저기 막힌 감각을 펑펑 요란하게 뚫어댄다. 푸른 기운이 남아 있는 보리순과 냉이는 씹을수록 달큼한 봄나물 맛을 내고, 삭힌 홍어국물을 옴싹 뒤집어쓴 배추시래기가 입 안에서 물큰하다.
애국에 밥을 말아 숟가락에 뜨고, 나물이며 겉절이며 장아찌를 척척 걸쳐 옹골지게 먹는다.
그렇게 밥 한 공기를 뚝딱 말끔하게 비워내면서 애가 닳고 닳도록 아홉 남매를 키우며 발싸심을 해왔을 아짐의 인생을 곱씹는다.
참 기적 같은 삶이요, 놀라운 삭힘의 맛이 아닌가. 심해를 너울대던 생선의 내장이 깊은 산골 아낙의 고단하고 애끓는 삶에 위안이 되었으니 말이다.
--- p. 109

안 그래도 입 안에 침이 괴어 더는 못 참을 지경이다. 부추전, 머위전을 후후 불어가며 지범지범 먹는다. 입 안 가득 자근자근 씹히는 부추가 차지기도 하다. 처음 먹어보는 머위전은 이파리와 줄기 맛이 사뭇 다르다. 식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워 감같이 스러져버린 이파리에 이어지는 줄기는 깨무는 순간 사근사근 쓴맛을 우려낸다. 쌉쌀한 맛이 기름기를 잡아먹어 느끼함도 덜어낸다.
--- p. 161

“이 집이 친정이에요. 돌아온 지 10년 되어갑니다. 제가 산야초 효소를 하게 된 이유가 있어요. 류마티스 관절염이 있어서 병원에만 다니문 약을 묵고 살이 쪘어요. 병원에 한 6개월 입원했었는데 젊은 사람이 챙피허게 지팽이까지 짚고 다녔어요. 근디 우슬, 항가꾸(엉겅퀴) 이런 약초 달여서 물 끓여 먹다가 나름대로 발효를 해서 묵었어요. 그러니까 많이 좋아졌어요. 약을 땡개부렀다니까요.”
사업으로 ‘산야초 효소’를 하지는 않았지만, 입소문을 타고 찾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영윤씨는 부모님 돌아가신 친정집에 찾아와, 도시에서 망가진 몸의 병을 추스르고 기력을 되찾았다. 자연에서 나는 꽃과 풀을 뜯고 또 뜯고, 담그고 또 담그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그서 집 지키고 살아라’던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을 잊지 않은 맏딸 주영윤씨는 지금 백화만초를 효소로 담고 인정 넘치는 텃밭 밥상을 차리느라 행복하다.
--- p.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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