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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시기의 산신 성황신과 지역사회

한국 전통시기의 산신 성황신과 지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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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10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390쪽 | 153*224*30mm
ISBN13 9788968490545
ISBN10 896849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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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변동명
전남대학교 사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하고 한림대학교 대학원을 졸업 했다.(문학박사) 현재 전남대학교 문화전문대학원 교수이다. 저서로는 『고려후기 성리학수용연구』 (일조각, 1995),『한국중세의 지역사회연구』 (학연문화사, 2002),『여수해양사론』 (전남대학교출판부, 2010)『한국 전통시기의 산신 성황신과 지역사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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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산악을 숭배하고 신앙한 것은 오랜 옛적 이래의 일이었다. 옛 사람들은 하늘 높이 솟은 산을 통하여, 인간이 하늘[天] 즉 신神의 세계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말하자면 높은 산을 매개삼아 인간이 신의 세계로 접근할 수가 있으며, 또한 신들이 인간의 세계로 내려올 때에도 마찬가지로 높은 산을 거칠 것이라고 상상하였다. 환인桓因의 아들 환웅桓雄이 처음 내려왔던 곳이 태백산太白山의 신단수神檀樹 아래이었다든지, 혹은 사로斯盧 6촌의 촌장들이 처음 알[卵]에 들어 있는 혁거세赫居世를 발견하였던 곳이 양산楊山 아래의 나정蘿井 곁이었다는 건국신화들은, 모두가 옛 사람들의 산에 대한 그러한 관념을 반영하는 설화였다. 그리하여 그처럼 인간의 세계와 신의 세계를 매개하는 존재라고 믿었던 산을, 옛 사람들은 마치 하늘을 섬기듯이 섬기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옛날 사람들의 산악에 대한 그와 같은 숭배 내지 신앙은, 곧 그 산악의 산신에 대한 숭배와 신앙에 다름이 아니었다. 자연에 존재하는 산악 자체에 대한 그것이라기보다는, 그 산악의 주재자라고 믿었던 산신에 대한 숭배와 신앙이었다. 곳곳의 크고 작은 산마다에는 하나같이 그곳을 지배하는 산신이 존재한다고 믿어 왔으며, 그리하여 사당을 짓거나 단을 쌓으며 그 산신을 모셔 왔다. 이른바 산악신앙이란 본시 그와 같은 산신에 대한 숭배와 신앙에 다름이 아니었다.

한편 성황신앙城隍信仰은 인공 구조물을 그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산악신앙과 차이가 있었다. 여기에서 성城은 성벽城壁을, 황隍은 그 성벽을 둘러싼 공호空濠 즉 물이 담기지 않은 해자垓字를 뜻한다. 이 황隍에 물을 채운 것이 해자垓字 즉 지池인데, 그러므로 성황城隍은 곧 성지城池로서 외부에 의한 침입을 저지하기 위해 구축한 인공적인 방어시설을 가리키는 명칭이라 하여 좋을 것이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러한 방어시설에 그것을 주관하는 신神이 깃들여 고을을 수호해 주는 것으로 믿었다고 한다. 이른바 성황신城隍神과 성황신앙城隍信仰이 등장하게 된 유래이다.

한국의 성황신과 성황신앙은 대체로 중국에서의 그와 같은 습속이 전해져 뿌리를 내린 것으로 알려져 왔다. 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의 즈음에 지방의 유력자인 호족豪族들이 지역 수호신으로서의 성황신에 주목하기 시작하였으며, 늦어도 고려 성종대(981~997) 무렵이면 한국에서도 성황신앙이 자리를 잡을 터전이 마련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후 성황신앙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그 분포 범위를 확대해 갔으며, 고려 중엽의 인종대(1122~1146)와 의종대(1146~1170)를 거치면서는 개경을 비롯하여 널리 전국으로까지 확산되어 뿌리를 내렸다. 그리하여 고려 후기에 들어서면서는 대략 전국의 모든 고을에 성황사城隍祠가 설치되어 그 기능을 발휘하였을 것으로 짐작들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산신과 성황신은 그 개념이라든지 유래 등에서 드러나는 위와 같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대체로 전통시기 지역의 토착세력과 깊은 관련을 맺은 가운데 그 숭배와 신앙이 전승되어 왔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 존재이기도 하였다. 제의祭儀와 같은 산신과 성황신 숭배에 수반되는 각종 의식이나 행사는 으레 저들 토착 유력계층에 의하여 주도되는 게 한국 전통시기의 관습이었다. 따라서 산신과 성황신은 그것이 소재하는 고장의 위상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더욱이 그 숭배와 신앙을 주도하는 해당 지역의 토착세력을 상징하는 사회적이며 문화적인 존재이기도 하였다. 토착세력을 대표하는 유력한 가문의 시조나 이름난 조상이 지역의 산신이나 성황신으로 추앙되는 거와 같은 산신과 성황신의 인격신화人格神化 현상도, 그러한 데에서 말미암은 일이었을 것임은 이를 나위가 없다.

나아가 중앙집권적인 체제가 정비되면서는, 각 지역을 단위로 민간에서 이뤄지던 그러한 산신과 성황신 숭배가 국가적인 차원으로 격상되기도 하였다. 나라에서는 왕경王京을 중심으로 하여 각 지역의 산신과 성황신을 그 비중에 따라 대大ㆍ중中ㆍ소사小祀로 구분해서 국가적인 사전체계祀典體系에 편입시키었다. 그리고는 왕경에서 파견한 관리 내지는 해당 지역의 지방관으로 하여금, 토착 사회세력을 대신하여 산신과 성황신에 관련된 각종 제의와 행사를 주관하도록 제도화하였다. 이로써 해당 지역의 독자성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토착세력을 회유ㆍ포섭하고 국가적인 위협 요소를 억제ㆍ진압하며, 그리하여 국가와 지역사회의 안녕과 발전을 기약하고자 도모하였던 것이다.

이 연구에서는 위와 같은 전개를 보인 한국의 산신과 성황신을 지방 토착세력과의 연관 속에서 살피려 한다. 산신과 성황신의 개념이나 유래由來 내지 관련 의례儀禮나 혹은 산신사山神祠(堂)ㆍ성황사城隍祠(堂)의 위치와 같은 산신ㆍ성황신 내지 그를 향한 신앙 자체에 대한 것보다는, 그와 관련을 맺거나 혹은 그러한 신앙행위를 주도하던 인간들이 그것을 통하여 정치.사회적으로 획득하고자 도모하는 바가 무엇이었던가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고자 한다. 과연 어느 시기에, 어떠한 사람들이, 무슨 연유에서 산신과 성황신을 떠받들며 신앙하였고, 그 후의 추이는 어떠하였으며, 그리하여 그들이 얻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었는지, 말하자면 전통시기의 산신과 성황신 숭배와 신앙이 지니는 정치.사회적인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를 더듬어, 그 역사적 의의를 헤아리려는 게 이 연구의 목표인 것이다.

또한 이 연구에서는 산신과 성황신을 전통시기 한국 지방사회의 내부로 이끌어주는 안내자로 활용하려 한다. 산악신앙과 성황신앙에 나타나는 지역 토착세력의 의지나 관련 활동을 검토함으로써, 지역사회 내부의 움직임을 들여다보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전통시기의 산신과 성황신은 흔히 지역사회의 수호신이자 상징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역의 유력자들이 자신을 중심으로 지역 주민의 결속을 추구하는 등 그 주도권을 공고히 하고자 내세운 것이 곧 산신이고 성황신이었다. 따라서 지역의 주도적인 사회세력과 산신ㆍ성황신에 관한 연구는, 중앙과 지방의 관계나 혹은 지방에서의 주도권을 놓고 지역 간 내지 지역 내의 주도적인 사회세력 사이에 벌어지던 갈등과 같은, 생동하는 지방사회의 모습을 드러내는 데에도 도움을 줄 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말하자면 이 연구를 통해 그동안 전체사全體史에 매몰되어 제대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던 지방사地方史에 대한 시각을 새롭게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중앙에 의해 일방적으로 지배를 받는 대상으로서가 아닌, 그 자체만으로 존재 의의를 지니는 가운데 독자적 단위로 한국 역사의 형성에 참여해 왔던, 지역사회의 역동적인 모습의 한 측면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었으면 하는 바람인 것이다.

이 연구는 총 2부로 구성되었다. 1부에서는 산신을 그리고 2부에서는 성황신을 각각 지역사회와의 연관 속에서 검토하였다. 1부와 2부는 또한 각 4편의 글로 구성되었는데, 대체로 글을 끝마친 시기의 선후를 기준으로 배열하였다. 여러 지역의 산신과 성황신을 다룬 연구의 특성상, 고찰한 시기의 선후를 고려하여 논문을 배열하는 것이 읽는 이에게 한층 편의를 제공할 것으로 판단하였다. 글쓴이가 처음 산신과 성황신에 관심을 보였던 데서 출발하여, 점차 그 대상과 시기를 넓혀가던 경로를 따라 차근차근 논의에 접근함으로써, 더불어 호흡을 같이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1부에서는 먼저 무등산신無等山神을 둘러싼 몇몇 움직임을 살피었다. 주로 고려 후기의 그것을 광주光州 등의 지역사회 움직임과 연결지어 해석해 보았다. 13세기 후반에 8년 간격으로 나타나는 두 기록에 주목한 결과인데, 원종 14년(1273)과 충렬왕 7년(1281)에 광주인光州人들이 잇달아 무등산신앙의 우대를 조정에 요구한 게 그것이었다. 흔치 않은 경우로서 그리 된 배경과 의미가 궁금하거니와, 그것을 전남 지역사회 내에서의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 및 토착 사회세력의 새로운 대두와 그들의 중앙 진출이라고 하는, 당시 지방사회에서 일던 변화의 바람에 초점을 맞추어 풀이하고자 시도하였다.

다음으로, 나주羅州의 금성산신앙錦城山信仰을 검토하였다. 고려시기 이래 금성산 일원에는 산신을 제향하기 위한 사당이 5곳이나 자리하였다고 한다. 왕경王京의 주산主山인 송악松嶽을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힘든 매우 이색적인 사례이다. 나주 고을의 독특한 위상을 반영한 현상이 아닐 수 없거니와, 그리하여 금성산이 처음 국제國祭에 오른 경위를 비롯하여, 나주에서 팔관회八關會가 개최되기에 이른 사정이라든지, 혹은 백제부흥운동 및 삼별초 난의 진압과 관련하여 언급되곤 하였던 금성산신을 둘러싼 논란 등을 하나하나 더듬어가며,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따져 보고자 시도하였다. 고려시기 중앙과 지방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며, 나아가 지역에서의 주도권을 두고 고을 혹은 고을을 대표하는 유력한 사회세력 사이에서 벌어지던 갈등과 같은, 살아 움직이는 지역사회의 모습을 들여다보려는 의도에서였다.

세 번째로, 순천順天의 산신과 성황신을 살피었다. 전통시기 순천지역에서는 3인의 역사상 실존 인물이 산신 혹은 성황신으로 섬겨져 왔다. 박영규朴英規와 김총金? 및 박난봉朴蘭鳳이 그들이었다. 한 고장에서 3명이 그처럼 유사한 성격의 신神으로 떠받들어진 것은 좀처럼 보기 드문 현상이거니와, 저들 3인의 생애를 더듬으며 더불어 언제 그리고 어떠한 과정을 거쳐 저들이 신으로 좌정하기에 이르렀는지를 헤아려, 순천지역의 내부 사정과 함께 지역을 이끌었던 토착세력의 성쇠를 아울러 밝히려는 게 연구의 목적이었다. 그리하여 중앙과 지방의 관계는 물론, 지역 내에서 유력한 사회세력 사이에 벌어지던 주도권 다툼과 같은 생동하는 지방사회의 단면을 파악하고자 노력하였다.

1부의 마지막에서는, 경기도 감악산紺岳山의 산신山神에 얽힌 의문을 해명하려 하였다. 감악산은 한반도 중부의 전통적인 교통요지이던 적성현積城縣의 진산鎭山으로서, 이 고장은 삼국시기 이래 고구려부흥운동이 벌어지던 즈음에 이르도록 치열한 쟁탈의 대상이었다. 한데 그러한 감악산의 산신으로 신라인新羅人들이 당唐의 장수인 설인귀薛仁貴를 떠받들었다고 한다. 쉽사리 믿기지 않는 일로서,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그리하여 설인귀가 본디 적성 출신이었다는 설화가 난무하였다고도 한다. 어찌 된 영문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거니와, 그리하여 통일신라시기에 설인귀가 감악산신으로 추앙된 배경을 더듬는 데서 시작하여, 고려왕조에 들어 감악산신 설인귀가 지역과 국가의 수호신으로 공인되는 경위 및 조선朝鮮 유교사회의 전개 속에서 감악산신 설인귀가 민간신앙의 대상으로 살아남았다가 끝내 잊히기에 이르기까지를 추적하였다. 그로써 한국 고대의 쟁패전에 침략자로서 끼어든 외국인 장수가 산신으로 전화轉化하여 또 다른 모습으로 한국사에 흔적을 남긴 사실이 의미하는 바를 되새기고자 하였다. 아울러 그러는 과정에서, 왕경인과 지방인의 관계라든지 지역사회에 저류하던 삼국유민의식三國遺民意識의 추이, 지방관 및 향촌사족과 전통적인 토착세력 사이의 경쟁과 타협 등이 한층 생생하게 포착되리라는 기대도 또한 없지 않았다.

2부에서는 먼저, 곡성谷城과 그 고을의 성황신인 신숭겸申崇謙을 고찰하였다. 신숭겸은 궁예弓裔의 기장騎將으로 활동하던 중 왕건王建의 정변에 참여하여 고려의 개국공신에 올랐던 인물이다. 한데 황해도 평산平山을 본관으로 하는 그가 사후 언제인가 전라도 곡성의 성황신으로 추앙되었으며, 조선시기에는 다시 같은 고을의 덕양사德陽祠에 배향되었다고 한다. 그리 된 사정이 궁금하거니와, 그의 출신과 생애를 확인하고 더불어 사후에 그가 곡성의 성황신으로 좌정하기에 이른 과정 및 조선왕조에 들어 거듭 새로운 사우祠宇에 배향된 연유 등을 따져, 그 경위라든지 함축된 의미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신숭겸의 출신이나 본관에 얽힌 몇몇 문제를 비롯해서, 곡성의 위상 변화 및 중앙의 지배력 강화에 대한 토착세력의 대응이나, 또는 향촌사족의 성장과 조상숭배의례의 유교화 현상 등을 더듬어, 전통시기의 곡성 지역사회를 들여다보는 기회로 삼고자 하였다.
다음으로, 김인훈金忍訓과 손긍훈孫兢訓을 각각 고을의 성황신으로 추앙한 양산梁山과 밀양密陽의 경우를 살피었다. 신라 말 고려 초의 인물인 두 사람의 출신이나 활동이라든지, 사후 언제인가 그들이 고을의 성황신으로 추앙된 경위 및 조선시기 들어 위상의 하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황신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한 사실이 지닌 의미 등을 헤아리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양산과 밀양 고을의 위상 변화나 혹은 중앙의 지배체제 확립에 대한 지역 유력계층의 대응 양상을 밝혀, 중앙과 지방의 관계는 물론 지방에서의 주도권을 둘러싼 지역 내지 지역 내의 주도적인 사회세력 사이의 경쟁과 같은, 살아 움직이는 지방사회의 모습을 드러내고자 시도하였다.

세 번째로, 의성義城과 그 고을의 성황신으로 기록에 전하는 김홍술金洪術을 검토하였다. 진보성주眞寶城主이던 김홍술이 의성의 호족으로 등장하게 된 경위나 지역 내 다른 유력 호족과의 관계, 그리고 김홍술이 사후에 의성의 성황신으로 추앙되기에 이른 사정 및 조선후기 들어 충렬사忠烈祠에 배향된 의미 등을 밝히려는 게 목적이었다. 그로써 후삼국시기 호족의 존재 양상이라든지, 혹은 중앙의 체제정비에 따른 고을 위상의 변화를 둘러싼 토착세력의 고심과 대응, 유교적 예제의 시행을 두고 벌어진 전통적인 토착세력과 지방관 및 향촌사족 사이의 갈등과 타협, 씨족 내에서의 사회적 분화에 따른 파계별派系別 소장성쇠가 사우의 건립에 미친 영향 등을 파악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였다.

마지막으로, 충청도 대흥현大興縣의 성황신이었다는 소정방蘇定方을 둘러싼 몇몇 의문을 해명하려 하였다. 대흥은 백제의 임존성任存城으로서, 백제부흥군이 처음 일어선 고장이자 또한 마지막까지 저항한 근거지였다. 한데 그러한 고을에서 당唐의 장수인 소정방을 성황신으로 모시었다고 한다. 아울러 대흥현의 대잠도大岑島에는 소정방사蘇定方祠 혹은 소도독사蘇都督祠라고 하여 소정방을 향사하는 사당이 하나 더 위치하였다고도 한다. 쉬이 납득되지 않는 현상이거니와, 소정방과 대흥현 사이의 연고를 더듬는 데서 시작하여 소정방사가 창건된 배경이라든지 혹은 소정방이 대흥현의 성황신으로 추앙되었다가 결국 잊혀가기까지의 경위 등을 검토함으로써, 고대 한반도의 쟁패전에 끼어든 외국의 한 장수가 지방의 자그만 고을에서 신격화되고, 또한 역사의 물결 속에서 전화轉化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지기에 이른 사실이 의미하는 바를 헤아리고자 하였다.
---『서장』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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