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S대가 좋긴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구나. 일생 동안 인정받고 살다가 죽어서 장례식에서도 이야기하는 것 보니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단지 장례식뿐만이 아니더구나. 그분의 아들딸들이, 손자, 손녀들이 장례식 이후에도 계속 그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자랑을 할 때마다 S대 이야기를 할 것 아니니.
그러다 갑자기 생각이 불쌍한 ‘S대생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미치더구나. 이름 없는 ‘비명문대학 출신들이 참 안 됐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야.
‘저는 SKY대 출신보다 머리는 더 좋아요.’
‘고1 때는 그 애들보다 내 성적이 더 좋았었는데.’
‘몇 달만 열심히 했더라면 그 애들보다 내가 더 잘 할 자신 있었어요.’
나중에 아무리 변명하며 외쳐 봐야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는단다. 그리고 명문대학 출신이 아닌 사람들의 괴로움은 영원히 지속되지.
처음 만난 여자친구가 어느 대학교 학생이냐고 물어볼 때, 취직할 때, 장가가려고 여자친구 집안 식구를 만날 때, 결혼해 아이들이 커서 아빠 어느 대학 나왔냐고 물어볼 때, 대화 중에 출신 학교 이야기가 나올 때, 매년 겨울 입시에 관한 보도가 나올 때마다 말이다.
일생 동안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출신 대학이란다. 일생동안, 아니 죽은 후에도 계속되는 거지. 너무나 잔인한 고문 행위지. _ 1장 끔직한 추도사 중에서, 19∼20쪽
“‘네가 뭐가 못나서 10등 안에도 못 드니’라는 말을 듣는 것은 진짜 싫어요. 왜 이렇게 꼭 등수를 매기고 순위를 따져야 하는 거예요?”
인간은 본능적으로 경쟁하고 그 과정을 즐긴단다. 스포츠를 예로 들어 보자. 경기 규칙을 어렵게 만들고 누가 또는 어느 팀이 얼마나 잘 극복하는가를 보면서 즐기는 거야. 룰을 어렵게 만들어 놓고 몇 점이나 득점할까, 어느 팀이 우승할까, 누가 MVP가 될까 등을 겨루어야 경기를 보는 사람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지 않겠니.
친구들과 길거리를 걷다가 펀치볼 기계를 보았다고 가정해 보자. 동전을 집어넣고 있는 힘을 다해 강펀치를 날렸는데 그 기계에서 점수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자. 돈을 집어넣고 해 볼 마음이 나겠니. 인생은 모든 면에서 등수, 성적의 경쟁이다. 우리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관계없이 말이다. 그리고 이것이 없으면 인생 자체가 재미가 없어진다. 아니 재미 문제를 넘어 사는 것 자체의 의미가 없어지는 거다. _1장 시험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중에서, 28~29쪽
학교에서, 학원에서 한 주에 수학 수업이 몇 시간이나 있지? 일주일에 수학 공부만 10시간 정도 한다. 1년에 52주가 있으니까 1년이면 수학 공부를 520시간 하게 되는 꼴이지. 중학교 3년간이면 수학 공부만 1,560시간 하네. 1시간에 한 문제만 풀었어도 수학도사가 됐을 텐데.
수업시간이 적어서 성적이 안 나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럼 어디에 문제가 있을까? 맞아, 바로 집중
력이야. 수업시간이라는 양이 아니고 집중이라는 질이 부족한 거야! 보통 우리는 일생 동안 몇 천에서
몇 만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업시간을 갖게 되지. 그리고 집중력에 문제가 있는 학생은 집중해서 공부하는 학생들에 비해 결국은 몇 천에서 몇 만 시간이라는 차이가 생기게 되는 거야. 한 학기가 지나가고 또 한 학년이 지나감에 따라 실력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한단다. 산술적으로 계산해서 몇 시간 손해 본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경쟁에서 아예 탈락하고 마는 것이 큰 문제인 거지. 더 이상 소중한 수업시간이나 혼자 책상에 앉아 있을 때 멍하니 앉아 시간을 보내는 일이 없어야겠다.
_2장 수학 공부 1,560시간 중에서, 61~62쪽
‘이번 시험에서 수학은 포기할까.’ 시험 직전까지 열심히 놀다가 공부하려고 보니 갑자기 시험 범위는 엄청 넓은데 비해서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시험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시험 기간에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학생들은 몇 달간 계속 놀기만 하다가 단 몇 시간에 엄청난 양의 지식을 머리에 쑤셔 넣으려고 무진 애를 쓴다. 그러나 역시 엄청난 시험 범위에 비해서 시간이 턱없이 부족함을 느끼고, 역부족임을 깨닫는다.
이러한 시험 준비는 마치 한국 축구팀의 후반전 모습과 흡사하게 보인다. 전반전은 못 본 채 TV 화면을 보고 있자니 한국 대표팀이 일방적으로 상대를 몰아붙이고 있다. 그러나 한국이 1-2나 2-3으로 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 팀이 경기를 지고 있는데 남은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 미친 듯이 상대방을 몰아붙였던 것이지. 왜 전반전 처음부터 상대방을 몰아붙이지 못하는 것일까? 왜 질 확률이 높아졌을 때에야 미친 듯이 달려드는 것일까?
수업시간에 집중해서 듣기만 하면 시험 기간에도 느긋하게 잠잘 것 다 자면서 안정된 마음과 맑은 머리로 시험을 즐길 수 있을 텐데 안 해도 될 고생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미련한 일이 아닌가. 전반전에 열심히 뛰자! 그리고 시합에서 이기자! _ 3장 한국 축구 대표팀의 문제점 중에서, 122~123쪽
발걸음을 갑자기 멈추고는 그 거지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아주 조그만 목소리로 거지 아저씨에게 말했다.
“아저씨, 저 버스비가 없는데 200원만 주세요.”
이 말에 계속 엎드려 있던 거지 아저씨가 번쩍 고개를 드는 거야. 이 여학생은 움찔했지. 거지 아저씨가 화가 단단히 났나보다 생각해서 말이야.
‘오늘 그렇지 않아도 수입이 없어 열받고 있는 판에……’라고 하면서 해코지하면 어떻게 하지.
그런데 이 아저씨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 네가 원하는 만큼 가져가거라. 어서 가져가라니까.”
거지 아저씨는 남에게 도움을 받아서 먹고사는 사람이지. 즉 받는 것이 직업인 사람이란다. 너희들도 알겠지만 받는 것이 얼마나 좋으니. 누가 나에게 돈을 주거나 선물을 주면 얼마나 좋으니. 아무튼 받는 것은 좋은 일이지.
그런데 이 거지 아저씨는 어렵게 구걸해 받은 돈을 주면서 왜 그토록 행복해했을까? 받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주는 것이 더욱 기쁜 일이기 때문이란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