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투에는 겸손보다 공허함이 담겨 있었다.
"문제를 만든 사람은 답을 알고 있지. 반드시 답이 있다고 보장된 문제를 푸는 것은, 가이드를 따라 저기 보이는 정상을 향해 그저 등산로를 걸어 올라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수학의 진리는 길 없는 길 끝에,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숨어 있는 법이지. 더구나 그 장소가 정상이란 보장은 없어. 깎아지른 벼랑과 벼랑 사이일 수도 있고, 골짜기일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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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1에서 100 사이에 있는 소수를 써볼까."
연습 문제를 풀고 나자 박사는 루트의 연필을 쥐고 숫자를 죽 써 나갔다.
2,3,5,7,11,13,17,19,23,29,31,27,41,43,47,53,59,61,67,71,73,39,83,39,97
언제 어떤 경우에든 박사의 손가락에서는 숫자가 술술 나왔다. 내게는 정말이지 놀라운 일이었다. 전자레인지의 스위치조차 제대로 돌리지 못하는 늙고 왜소한 손가락이 어떻게 무수한 종류의 숫자들은 이토록 정연하게 통솔할 수 있는지 거의 불가사의할 정도였다.
동시에 나는 박사가 4B 연필로 쓰는 숫자의 모양을 좋아했다. 4는 너무 동글동글해서 리본의 매듭 같고, 5는 앞으로 기울어져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고, 모양은 제각각이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멋이 있었다. 박사가 태어나 처음 숫자를 만난 이후 애지중지 키워온 정이 각각의 모양에 반영돼 있었다.
"그래, 어떻게 생각하니?"
박사는 늘 추상적인 질문으로 말문을 텄다.
"다들 제멋대로예요."
대개는 루트가 먼저 대답했다.
"그리고, 2만 짝수고요."
루트는 소외된 수를 유독 잘 찾아냈다.
"그렇지. 소수 중에서 짝수는 2, 딱 하나뿐이다. 소수 번호 1의 1번 타자, 리드오프맨은 혼자 선두에 서서 무한한 소수를 이끌고 있는 것이란다."
"외롭지 않을까요?"
"아니, 걱정할 것 없다. 외로워지면, 잠시 소수의 세계를 떠나 짝수의 세계에 가면 친구들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17과 19, 41과 43처럼, 이어지는 홀수가 둘 다 소수인 경우도 있네요."
나도 루트에게 지지 않으려고 분발했다.
"음, 아주 좋은 지적이야. 바로 쌍둥이 소수지."
평소 사용하는 언어가 수항에 등장하는 순간 낭만적인 울림을 띠는 것은 어째서일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우애수도 그렇고 쌍둥이 소수도 그렇고, 적확함은 물론 시의 한 구절에서 빠져나온 듯한 수줍음이 느껴진다.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오르면서 그 속에서 숫자들이 서로 포옹하기도 하고, 똑같은 옷을 차려입고 손을 마주 잡은 채 서 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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